“무작정 과태료를 끊기만 할 게 아니라 주차할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할 것 아냐?”
“내 차를 단속한 놈이 누구야. 지금 당장 같이 가보자, 천지 곳곳이 불법 주정찬데, 왜 나만 끊었냐고......”
“하루 벌기도 막막한데, 상가 앞에 차를 세우지 못해 지역상권 다 죽이는 행정이 도민 위한 행정이냐?”
지난 상반기 정기인사를 통해 그동안 자치경찰에서 운영하던 주정차단속 사무가 행정시로 이관되면서 이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단속에 불만을 품은 어느 민원인은 경운기를 끌고 와 도로 한 복판에 주차 시위를 벌인 적도 있고, 타 지역에선 굴삭기로 경찰서를 부순 적도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불법주정차 단속은 단속차량을 끌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수기로 스티커를 발부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민원이 발생했으나 이제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자연스럽게 민원은 내부로 옮겨지고 있다.
도내에서 이뤄지는 단속시스템은 주요도로변에 설치된 고정식카메라에 의한 단속, 버스에 탑재된 버스탑재형 단속, 단속차량에 매달린 이동식카메라 단속이 대표적이다. 모두 일정 유예시간(로터리, 모서리 등은 즉시 단속, 동은 10분, 읍면은 20분)이 지나면 자동 관제실로 전송되어 지고, 확정단계를 거쳐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속원들과 민원인이 부딪히던 시대는 지났지만, 문제는 적발사실을 과태료를 받아본 후에 인지된 민원인들의 전화가 사무실로 빗발치고 있다. 그 시간 단속원들은 또 다른 현장으로 출동이 대부분이고, 애꿎은 항의민원에 애를 먹는 사람은 사무실 내근자이다.
“이 여자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남자 바꿔 이 ×아!”는 그나마 애교 수준이다.
지난 2월, 제주시 모처에서 43명의 읍면동장이 모인 가운데 도정에서는 “3대 교통정책을 조기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주정차단속이 필요하며, 연내 단속카메라 1천대를 설치할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추경 편성이 완료된 작금, 그 공언은 메아리가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단속 장비를 확충하면 할수록 민원은 더 많아질 것이나, 이를 응대할 감정노동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단속 장비들은 24시간 눈을 감지 않는 대표적인 로봇일 뿐, 그 수만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민원에 대응해 주는 것은 심장 뛰는 사람의 일이란 사실이다.
불법 주정차과태료는 여느 세금고지서와는 달리 은행으로 바로 가는 사람은 아마 1백 명에 한 명꼴밖에 없고 어디서 어떻게 단속되었는지를 꼭 따지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손쉽게 전화를 걸면서 심야 민원도 늘었다.
주민 입장에선 카메라 때문에 단속을 피하려 이면으로 들어갔는데, 아침에 눈을 뜨고 보니 어느 날 여기까지 카메라가 떡 하니 버티고 있어 ‘이제 내 차는 어디다 세우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던지 대책을 세워놓고 단속을 해야 할 게 아닌가?’, ‘과태료 뜯어서 어디다 쓰려고 하지?’라는 지극히 앵무새 같은 민원 쏟아내기에는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어느 민원은 국민신문고와 인터넷신문고를 통해 ‘골목까지 카메라가 설치되었는데, 그럼 내 차는 어디다 세울 것인지를 콕 집어 알려 달라’는 질문에 ‘당신 차를 왜 내가 세울 곳을 알려줘야 하죠’라며 같이 격분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 없어 ‘자고 나면 하루 80대의 차량이 늘어나는 이 조그만 섬에 이제 시민의식개혁으로 주정차문제를 풀어야 하며,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교통정책을 펼쳐야할 때’라고 나름대로의 고상한 품격(?)으로 회신했다.
특히 불법 주정차 업무 담당자와 단속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 중의 하나가 시민들의 이중성이다.
“당신들, 지금 시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또박또박 받아먹으면서 주차단속 안 하고 뭐하고 있느냐? 불법 주정차 때문에 중앙선을 넘나드는데 어디 위험해서 살겠는가 말이야”
“지역 상권 다 죽이려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주차장을 만들던지 대책을 수립해 놓고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똑같은 장소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관점, 나와의 관계성에서는 완전히 뒤바뀐다.
한편, 불법 주정차 현장에서는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버젓이 단속카메라가 돌아가고 푯말이 부착되어 있음에도 과태료쯤이야 비웃으면서 고급차를 도로에 주차한다. 문제는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앞뒤로 연이어 불법 주정차가 꼬리를 물며, 과태료 역시 꼬리를 물고 뒤따른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저차도 세웠는데, 나도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일랑 앞으로는 지워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잠시 화제에서 비켜갔지만 단속카메라 1천대가 미치는 영향은 상상초월이다.
도정에서야 대중교통 체계개편, 공영주차장 확충, 차고지증명제 등 3대 정책을 빠르게 안착시키려면 강력한 주정차단속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만, 24시간 눈을 감지 않는 로봇이 쏟아내는 민원을 응대할 자는 한 번도 현장을 찾아오지 않는 도정이 할 일도 아니고, 시정의 고위직도 아니고 바로 비정규직 단속원들의 몫임을 알아주기 바란다.방문 민원보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 단속원들의 감정노동자 또한, 과거의 단순한 현장 단속업무 타성을 버리고 엄청난 내공을 쌓아야 한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대방을 읽어야 하는 내공, 때로는 쌍소리를 허공에다 털어내야 하는 내공, 끝까지 격한 감정을 다 들어줄 줄 아는 내공과 더불어 별의별 법령의 요구에도 답해 줄 수 있는 내공은 하루 이틀에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노동자로서 견디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내공쌓기에 여념이 없어야 한다.
제주도가 한동안 쓰레기 문제로 골몰을 앓았지만, 그와는 견줄 수 없는 교통민원의 중심에 서 있는 단속원들의 눈물, 특단의 사기앙양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는다면 마를 날이 없을 것 같다.<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장>
*외부 칼럼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문상 필자는...
강문상 필자는 현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제주지역본부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공직업무는 서귀포시 주차지도담당 직책을 맡고 있다. 이 글은 필자가 공직 현장에서 주정차 업무 등 교통민원을 접하면서 느끼는 소회로, 주정차 문제 등에 대하여 앞으로 연재 형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제주도의 주정차 문제 해결방안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필자의 저서로는 <그 섬은 말모래기>(2008. 남도), <공무원의 혼>(2013. 남도), <기가 막히게 좋은 인생(공저, 2009. 엠아이지), <이렇게 좋은 날도 있어야지 Ⅰ·Ⅱ>(공저, 2010~20113. 엠아이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