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강정마을회장 담화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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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 강정마을회장 담화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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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강정마을회장 조경철입니다.

이틀 밤을 제주시 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기껏해야 시골 촌구석 마을회장 주제에 무슨 담화문을 발표 할 주제나 되겠습니까.

다만 저의 처지가 공권력에 의해 내몰리는 것이 단순히 제 몸뚱이 하나만의 문제로 처한 것이 아니며, 또한 강정마을만의 문제로 기인한 것도 아니기에 이렇게 글로나마 시민 여러분들에게 마음에 담아둔 말이라도 꺼내놔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남에게 피해만 안줄 수 있다면 그렇게만 살 수 있는 것도 좋은 삶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남에게 피해를 안주면서 사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제가 가장 분노했던 것도 찬성 측 주민과 제주도정 그리고 해군들이 다른 대다수의 다른 강정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이권을 생각하지 않고 국가에 대한 사명감으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이권이든 사명감이든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 결정은 다른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선택이었던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해군기지 건설 기간을 통틀어 해군이 보여준 자세는 오직 한 가지, 불통과 강제였습니다. 우리를 협상의 대상으로 보질 않고 통제하여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군인정신 또는 애국정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통과 강압으로 일관된 정부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비리가 연속 터져 나와도 비호하는 청와대 측근에 음주뺑소니 경력의 경찰청장 임명까지 보면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 스스로를 여전히 삼일에 한 번은 패줘야 말을 듣는 미개인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철권통치가 들어서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말도 합니다. 아마도 군사독재시절에 가장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제성장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 스스로의 정열적 노력과 창의력은 없었던 것일까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렇게 미개한 국민들이었다면 오천년 역사의 찬란한 유물들과 문화적 결과들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문자인 한글과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는 어떻게 만들 수 있었던 걸까요. 명나라가 아무리 국가비밀로 해도 우리 스스로 천문을 밝혀서 독자적인 달력을 만들어내어 농업과 일상에 적용시킨 업적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은 이러한 우리 스스로의 진취적 기상과는 무관했던 것일까요?

저는 우리 민족이야말로 공동체로서 단결하고 소명의식이 충만할 때 그 어떤 민족보다도 뛰어난 성취를 이루어내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 역시 이러한 단결된 공동체적 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공동체적 일체감이 있었던 시기와 지금의 사회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상입니다. 모두가 생업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고, 살아남기기 위해서라면 남을 해치거나 짓밟아야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개인끼리 집단끼리 지역끼리 분열되고 전쟁을 치르듯 이권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제아무리 철권통치를 한다한들 무엇이 바뀌겠습니까. 기본적인 상호신뢰가 무너져 있는데 강제한다고 통합이 될까요? 고위층들과 가진 자들은 제 주머니만 채우기 바쁜데 국민들이 믿고 따르겠습니까? 오히려 독재권력 비호 하에 비리 형 중간관리자들이 더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말뿐입니다.

신분보다 재능을 귀하게 여기고, 재화보다 사람을 중히 여기며, 가장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을 가장 존귀하게 받들며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올바르게 정비하고 제대로 작동시킨다면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 한 예를 조선시대의 성군 세종대왕이 실증하지 않았습니까.

그 중에서도 핵심이 공동체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공동체, 지역공동체, 조직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가 마을공동체입니다. 마을공동체가 건강해야 지역도 조직단위도 국가도 건강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마을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해군기지 사업은 강정의 마을공동체를 산산조각 내버린 사업입니다. 나아가 준공이 되고 난 후에도 마을공동체 파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편 가르기와 분열을 획책하고, 구상권을 청구하여 마을회를 붕괴시키려는 이런 조직이 어떻게 국가를 위한 조직이 될 수 있겠습니까?

특히, 마을 안에 무장병력을 투입하여 주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훈련을 하는 행위는 무력으로 마을을 제압하려는 의도라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전시라고 할지라도, 기지방어를 위해 기지주변에 무장병력을 배치하는 이외에 민간인들이 사는 주변마을에 무장병력으로 총을 겨누는 훈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평시에 그러한 훈련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주경계는 훈련예규 상 당연하다는 부대장의 발언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민간인 거주지역에 들어와서 총을 겨눈 예는 저는 4·3과 광주와 같은 계엄지역 이외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해군은 강정마을을 계엄지역과 동일한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며, 여차하면 총을 발포해서라도 제압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전에 훈련에 대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이에 항의했다고 하여 형사고발 조치를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는 2009년 해군과 국정원이 주도하고 제주도정과 검찰과 경찰이 참여한 유관기관회의 결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세력에 대한 총체적인 탄압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사법처리를 극대화시켜 무력으로 반대의견을 묵살하려 했던 그 잔악한 시도가 여전히 현재시점에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라면 정녕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침몰할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위에서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인들 스스로 바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난 정치인들이 알아서 좋게 만들어 줄 것이란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래에서부터 변화와 변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뀐 생각을 가지고 뭉쳐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한 그 시민들이 직접 정치를 이끌어야 합니다. 비록 그 변화가 내 자신에게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내 자식과 후손들을 위한 길이므로 기꺼이 감내 할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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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철 서귀포시 강정마을회장.ⓒ헤드라인제주
지금, 대한민국 전체가 강정마을이고, 세월호이며, 성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남의 일이 아닙니다. 곳곳이 구멍이 나고 물이 새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탈출할 길이 없습니다. 탈출 한다 한들 그 어떤 세상이 이만하겠습니까.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문화를 나누며 웃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은 오로지 이 곳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 대한민국이 침몰하도록 놔두겠습니까? 우리 후손들에게 이 지옥을 그대로 물려주시겠습니까?

함께 해주십시오.

그래서 물이 새는 곳을 막아주십시오. 나아가 대한민국을 굳건한 평등과 안전한 자유가 넘치는 민주공화국으로 만들어주십시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로 만들어 나갑시다.

2016년 추석을 앞둔 가을, 강정에서

강정마을회장 조경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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