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도민 추천철회 보다, '공적조서'가 더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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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도민 추천철회 보다, '공적조서'가 더 민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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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도식적 '공적조서' 작성 관행의 망신살
낯 뜨거운 '칭송' 공적치하...행정 공신력 실추

각종 훈.포장이나 작은 상(賞) 하나를 줄 때에도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필수적 서류 중 하나가 바로 '공적조서'이다.

공직 내부에서는 표창 대상자를 선정하는 일 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공적조서 작성이라고 한다.

을지연습이 끝나면 을지연습 훈련 유공자 선정, 전국단위 체육대회 등이 열리면 또한 수고의 대가로 표창 대상자 추천이 이뤄진다. 정부의 각종 성과평가 후 우수성적을 거둔 해당분야의 공무원을 추천해 시상하는 것도 연례적 행사 중 하나다.

각종 시상 기회가 많아지고, '회전문'식 추천이 이뤄지다 보니 상의 가치도 폄훼되는 경우가 많다. 업무성과 평가에서 실제적 기반을 닦아 온 공직자가 다른 곳으로 전보발령되면, 새롭게 발령받은 후 얼마되지 않은 공직자가 수상의 영예를 안는 경우도 많다.

수상자 추천이 실제적 업무기여도 보다는 '현직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부작용도 적지 않다. 1년이면 두번씩 대규모 정기인사를 하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의 경우 이러한 추천관행이 불만의 요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간부공무원에서는 새로운 직위에 발령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해당업무 유공자로 선정돼 민간단체로부터 표창과 시상금을 받았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마다 돌아오는 연례적 시상에서는 해당 직위에서 정말 '공(功)'이 많았는지, 아닌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여러 명을 복수로 추천해 선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추천된 사람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대부분 그대로 결정해 시상하는 관례가 되고 있다.

단수추천이건, 복수추천이건, 중요한 것은 '공적조서'이다. 수상자로 추천된 사람에 대한 공적요지를 담은 서식이다. 실제적 현장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는 이상, '공적조사'는 수상자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공적조서는 어떻게 작성될까. 대부분 시상이 이뤄지는 관련분야 부서에서 작성하는 것이 관례다. 몇몇 공직내부 특정상훈의 공적조서를 보면 내용은 한결같이 도식적이고 획일적이다.

몇년간 해당분야에 근무하면서 직무와 관련한 분야 발전에 기여했다는 내용은 필수적(?)이고, 예를들어 환경분야 발전 유공자의 경우 클린하우스 점검 0회, 캠페인 전개 0회, 계도활동 0회, 단속적발 0회 등이 기재된다.

해당 수상후보가 실제적으로 모두 한 것인지, 아니면 해당기관에서 했던 것을 몰아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결같이 지표적 성과위주의 공적이다. 여기에 어려운 이웃돕기와 자원봉사 몇회의 내용까지 추가된다.

화려한 실적의 지표는 크게 제시하면서, 정작 해당분야 시상에서 왜 이 사람을 상을 줘야 하는지 이면의 내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공적조사가 오랜 습관처럼 늘 써오던 방식의 '관용적(慣用的)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논란이 벌어졌던 제주특별자치도의 명예도민증 수여대상자 추천 '공로조서'의 내용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수상자를 선정해 '상'을 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명예도민증은 그 이상의 가치와 명예가 있는 사안이었다.

명예도민증은 제주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한 타 지역출신 인사에게 수여하고 있다. 지역사회 발전에 남긴 업적을 오래 기리고 명예도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주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갖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제도다.

지난해 131명에게 수여된 것을 비롯해 올해 36명 등 지금까지 총 1594명이 명예도민으로 위촉됐다.

명예도민이 되면 제주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되고 도세(道勢)가 약한 제주도의 경우 '제주도 지원군'을 한명 더 확보하는 셈이므로, '다다익선'이 아니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명예도민이 많으면 부정적인 것 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 설령 현재까지의 지역에 대한 공적은 미미한 인사라 할지라도, 앞으로 더 많은 도움을 기대해 볼만한 인사가 있다면 명예도민으로 수여하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에 논란을 빚은 해군 준장에 대한 명예도민증 추천 철회 소동은 차원이 다르다.

수여 대상자로 추천됐던 그는 지난해 12월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항) 완공에 즈음해 제주로 부대를 이전한 해군 제7기동전단의 전단장으로 5개월여간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하지만 과연 명예도민으로 위촉하는 것이 시의적절한 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제주자치도는 그를 추천했다. 5개월간 제주기지에 근무하면서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제주자치도 관계자는 "그동안 주요 기관장에 대해서는 제주를 홍보해주고 아껴달라는 의미에서 추천해 왔다"고 추천배경을 밝혔으나, 납득하기 매우 어렵다.

그가 제주에 근무하던 시점에서 정부와 해군은 강정주민들을 상대로 34억원의 거액의 공사지연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강정마을 갈등문제를 더 악화시킨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그리고 여야 지역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구상권 청구철회를 촉구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제2차 구상권청구소송 진행의지를 밝혔던 것이 바로 해군이다. 심지어 국회차원에서도 구상권 청구 철회 촉구가 이어졌으나 이를 수용하지 않아 공분을 사고 있다.

결국 논란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제주자치도는 제345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개회 전날인 31일 '명예도민증 수여대상자 동의안'에서 그의 추천을 전격 철회했다.

명예도민 추천 동의안을 의회로 제출했다가 철회한 것도 공공기관의 공신력을 실추시키는 민망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도 뒤늦게 공개된 '공로조서'의 내용은 더욱 민망스럽게 했다.

관용적 표현 차원을 넘어, 시종 낯 뜨거운 칭송 일색이었다.

"강정마을 단체와 소통하고 주민들에게 혜택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부대를 이전한 후 강정주민들과의 소통을 확대하고 제주민군복합항 건설 및 준공의 당위성을 적극 홍보했다."

"도민들에게 제주민군복합항의 가치와 역할을 체감할 수 있도록, 도민들을 위해 무료 법률상담, 무료 진료 지원 등을 적극 추진했고, 감귤 수확 돕기 및 냉해 피해복구 지원, 해안정화 활동, 마을 청소, 독거노인 돕기 등 공익적 봉사활동을 전개해 제주도민들에게 진정어린 감동을 주었다."

"제주민군복합항 문화센터 내에 수영장, 도서관, 각종 업체 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업체 입찰 및 근로자 고용시 제주도민을 100% 채용해 지역주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종교단지 건립과 인근 학교에 대한 안보교육 지원 등으로 지역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명품 미항 제주민군복합항'의 성공적인 준공과 다양한 이벤트 개최 등을 통해 제주도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였으며 하와이, 나폴리 등 세계적 관광명소와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친환경 민군 공동기지 조성을 통해 제주도의 명성을 전 세계에 널리 홍보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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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가 작성한 명예도민증 수여대상자 '공로조서'.
공로조서는 크게 △강정마을 단체와 소통하고 주민들에게 혜택 부여 △제주도민들에 대한 봉사활동 강화 △지역 발전에 기여 △제주도의 브랜드 가치 향상에 기여 등 4가지 측면을 기술하고 있으나 과연 객관적이고 타당하고 적절하게 작성된 것인지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술된 내용 중 객관적 팩트에 부합하는 내용은 '봉사활동 전개' 부분이다. 그것도 말미의 효과성을 언급한 '진정어린 감동을 주었다'는 부분은 주관적 표현의 기술이다.

해군 장병들이 감귤수확돕기, 냉해 피해복구지원, 해안정화 활동 등 봉사활동에 적극 나섰다는 점은 실제 실행한 사실적 내용이라 하더라도, '주민과의 소통' '지역주민과 상생.협력하는 화합활동', '제주도 명성 전 세계 널리 홍보' 등은 현실적 상황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지나친 '미화'에 다름 없다.

차라리 공적의 내용은 거두절미 하고 향후 제주도 우호협적 기대효과만 적시했으면 그나마 나왔을법 했다.

제주자치도 관계자는 "지역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다"며 "미리 인지하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으나, 제주도의 위신은 크게 구겨졌다.

명예도민증 수여대상자로 추천했다가 황급히 취소한 일 그 자체도 행정의 신뢰성을 실추시킨 중요한 일이지만, 낯뜨거운 칭송일색의 '공적조서' 내용이 공개되면서 더욱 민망스런 상황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 또한 생각없는 공적조서 작성의 '관행'이 불러온 망신살이 아닐까.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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