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앞두고 작은 섬학교로...교육국장의 '아름다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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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앞두고 작은 섬학교로...교육국장의 '아름다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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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육청 문영택 국장, 고위직 내려놓고 작은학교 지원
"교직 40년, 아이들과 마무리 하고싶어"...잔잔한 감동

"오랜 소망입니다. 40년 교직생활, 우도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꼭 한 달 전이다. 그렇게 교육청 교육국장은 교육감에게 '폭탄선언'을 했더랬다.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던 교육감이었지만 결국 교육국장의 '아름다운 선택'에 힘을 보탰다.

19일 전격 발표된 3월 1일자 제주도교육청 정기인사에서 문영택(62)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의 직함은 도서지역 소규모 학교인 우도초.중학교 교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난 40년 간 평교사와 교육전문직을 넘나들며 쌓아 온 폭 넓은 경험으로 교육청 최고위직 반열에 올랐던 교육국장의 소위 '험지' 발령은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의외의 결과였다.

특히 문 교육국장이 정년 퇴임을 1년 여 남긴 시점에 이번 정기인사를 앞두고 우도초중학교 교장 발령을 직접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교육계의 궁금증이 모아지고 있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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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3월 1일자로 우도초등학교로 자원 발령된 문영택 교육국장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오미란 기자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출신으로 공주사범대학 프랑스어교육과와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문 교육국장은 지난 1977년 교직에 입문,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를 시작으로 제주일고와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에서 20년 동안 평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탐라교육원과 제주도교육과학연구원에서는 파견교사, 제주시교육지원청과 제주도교육청에서는 장학사로, 장장 15년 간 교육전문직으로 활약해 왔다. 제주교육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례적인 경력이다.

2006년에는 다시 평교사로 애월고에 발령되는가 하면, 2009년부터는 제주도교육청 장학사, 중문고 교감, 제주도교육청 장학관, 한림공고 교장 등 일선 학교와 교육청 본청을 바삐 오갔다.

그 가운데서도 중문고에서는 제주 최초의 보건의료계열 특성화고 학과개편을 선도해 오늘날 중문고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한림공고에서는 사제동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수풀 역사순례길'을 기획 개장하는 등의 성과를 일궈냈다.

이후 그는 한림공고 교장 발령 1년 만에 교육국장에 발탁됐다. 이석문 교육감 취임 후 읍면지역 고교 활성화 정책이 본격 추진되면서 전문직 경력과 현장경험, 직무수행 능력이 풍부한 인사로 임용된 것.

그러한 그가 1년 6개월 만에 돌연 우도초중 발령을 자처했다고 하니 참으로 의아한 일이었다.

이에 문 교육국장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생활하다 보니 마무리도 제 나름대로 의미 있게 하고 싶었다"고 웃어 보이며, "학교에 가서 마지막 교육을 펴 보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히 그는 "오래 전 부터 우도초중학교에 가고 싶었다"며, "평교사였을 때도, 교감, 교장이었을 때도 가 보지 못했던 초.중학교에 가게 돼 많이 설렌다"고 전했다.

사실 도서지역 소규모학교의 경우 평교사에게는 인기 있는 근무지다. 도서벽지 근무 점수가 주어지기 때문. 반면 교장.교감급 인사가 해당 지역으로 발령되면 '좌천성 인사'로 인식되곤 한다.

문 교육국장은 앞서 교장.교감 시절에도 우도초중과 추자도에 위치한 추자중 발령까지 자처했었지만, 그 당시에도 '좌천 인식'을 우려한 지인들의 만류로 신청.발령이 무산됐었다.

이에 문 교육국장은 "도서지역에는 열정을 가진, 준비된 교사들이 많이 파견된다"며, "그 가운데 교장은 학교의 방향설정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관심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겸손하면서도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그는 "우도지역에 계신 분들이 '1년 밖에 안 있을 사람이 왜 왔느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긴장되고, 조심스럽다"면서도, "그래도 정년 1년 남은 교육국장이라는 사람이 우도까지 쉬러 가겠느냐.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통할 수 있을 않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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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풀역사순례길. ⓒ헤드라인제주
문 교육국장은 퇴직 후 '향토해설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일찍이 정체성 확립 교육에 눈을 뜬 문 교육국장은 일선 학교에서 제주 최초의 민속놀이인 '원님놀이'를 비롯, 민속가장행렬인 '꼬마신랑 장가가는 날', '탐라의 변천사' 등을 각색.연출하는 한편, 제주의 역사명소를 이어 낸 '한수풀 역사순례길'를 기획 개장하기도 했다.

문 교육국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본질"이라며, "자신이 자고 나란 지역을 알아야 본질을 찾아갈 수 있다. 이에 따른 변화와 성장은 서서히 이뤄진다"고 말했다.

문 교육국장은 "정체성 확립 교육은 아이들이 오감으로 체득할 수 있도록 이뤄져야 한다"며,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역사와 문학, 체험 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문 교육국장은 "교사는 종합예술인"이라며, "만능인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만심인은 될 수 있지 않겠나. 모든 걸 다 잘할 순 없겠지만 모든 것에 관심은 가질 수 있다. 이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의 문제"고 강조키도 했다.

끝으로 문 교육국장은 칼 융(Carl Jung)의 말을 빌려, "하나의 경험만 한 아이는 편식을 하게 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한 아이는 건강해 진다"며, "교사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체득하게끔 안내해 주는 퍼실리레이터(Facilitator)가 아닐까"라고 자신의 교육철학을 전했다.

"교사 초임 당시 저는 시골 출신에 머리도 곱슬이고, 키도 작고, 글씨도 못 쓰고, 말도 어눌했었습니다. 강한 열등감에 매사 자신감이 없었죠. 지금 돌아보면 오직 아이들과 함께 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헤드라인제주>

<오미란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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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2016-02-21 22:27:12 | 110.***.***.46
국장님의 아름다운 선택은 후배 교직자들에게 오래도록 귀감으로 남을 것입니다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