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5인방'이 일궈낸 5.18 정치투쟁 '소수정예화'에서 '대중 투쟁'으로
상태바
'언더 5인방'이 일궈낸 5.18 정치투쟁 '소수정예화'에서 '대중 투쟁'으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항쟁 20주년 특별기획-'타는 목마름으로']
[2]1985년 5월 '광주학살 규명시위'와 '횃불시위'

1987년 6월, 최루가스의 따가운 눈물 속에서도 목놓아 외쳤던 '호헌철폐!'와 '독재타도!'.
그 함성은 제주의 여름도 뜨겁게 달궜습니다. 광양로터리에서 중앙로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은 식을 줄 몰랐고, 침묵하던 이들의 박수도 터져나왔습니다.

그 뜨거운 함성이 있었기에,  민주주의의 성과와 보람은 더욱 값지게 다가옵니다. 이제 세월은 흘러, 함성의 울림은 기억의 저편에 머물러 있지만, 6월항쟁의 정신은 오늘에 이어져 제주사회의 새로운 변혁의 동력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헤드라인제주는 6월항쟁 20주년을 기념해 제주민주화 운동사(史)를 재조명해보는 차원에서 <6월항쟁 20주년 특별기획-타는 목마름으로>를 연재 보도합니다. 이 특별기획은 제주지역 민주화운동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85년부터 1987년 6-7월항쟁의 절정기를 시간적 범주로 하여 보도됩니다. 각 연재물은 당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졌던 사건을 중심으로 기획되며, 사건 당사자의 기억을 통하여 당시 사건의 실체를 조명해보고, 현재적 의의를 모색해 보고자 보고자 합니다. <헤드라인제주>
 


▲ <헤드라인제주 DB>
[2] 1985년 5월 '광주학살 규명시위'와 '횃불시위'

1985년 2월9일 장은심, 김옥임, 오옥만 3명의 4학년 여학생들이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제주시 광양초등학교 제12대 총선 합동유세장에서 반정부투쟁을 벌인 사건은 제주대 학생운동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1980년을 전후해 소위 '언더'라는 학습조직을 만들어 물밑에서 활동해오던 학생들이 드디어 수면 위 정치투쟁으로 나서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다. 사실 그 당시 학내에서는 치열한 내부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학습조직에 참여하는 학생들 가운데서도 '이제는 철저히 정치투쟁으로 가서 학생운동을 비약시킬 때가 되었다'라는 그룹과, 다른 한쪽은 '제주도는 4.3후유증이 있기 때문에 정치투쟁은 모험적이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그룹간 논쟁이 일었다. 그러한 가운데 '정치투쟁'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룹을 중심으로 '유세장 시위'를 준비하고 결행한 것이었다.

이 유세장 시위는 학내 운동권 학생들에게 일종의 '모범 선례'로 작용하였다. 제주 학생운동사에서도 '여명'이 비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4학년 여학생 3명의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 결단'은 바로 후배학생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게 했다.

1985년 5월, 제주대학교 학생운동사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기록되는 전경과의 첫 투석전, 첫 최루탄 발사, 그리고 제주시 도심 한복판에서의 '횃불시위'는 바로 이 '유세장 시위'가 있었기에 터져나올 수 있었던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1985년 5월18일 '광주 5.18항쟁일'에 즈음해 이뤄진 5월시위는 유세장시위와 마찬가지로 자기희생을 각오한 5명의 학생이 '학생대중'의 동참을 이끌어내며 만들어낸 정치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제주민주화운동사의 한 획을 긋게 한다.

당시 제주신문과 제대신문은 1985년 5월 첫 대중적 정치투쟁과 '횃불시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 <제대신문 1985년 5월27일자 1면>
김계환.강수경 구류
-5.18 광주사태진상 요구와 관련

5.18광주사태 진상규명대회가 지난 14일 2백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학생회관 앞에서 열렸다.
"광주사태 책임져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교내행진을 시작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민족.민주화 시국선언문' 등을 낭독한 뒤에 교문밖으로 진출, 대기중인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다 2시간만에 자진해산했으며 지난 18일에는 시내 중앙로에서 "광주사태 진상 규명하라"는 전단을 뿌리며 횃불시위를 하려던 김계완군(회계 4)과 강수경군(행정 4)이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연행됐다.
이들은 지난 20일 제주지방법원에서 경범죄처벌법위반혐의로 즉심에 넘겨져 15일간의 구류처분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3일 탈춤연구회에서 주최한 '푸른제국 통치약풀이' 공연이 끝난 후 본교재학생 2백50여명은 "학원사찰 중지하라", "연행학생 즉각 석발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밖으로 진출해 대기중이던 경찰이 쏘아대는 페퍼포그와 최루탄에 맞서 4차례의 투석전을 벌이다가 8시경에 이날 연행된 학생 석방과 학원사찰문제를 놓고 학생대표와 경찰간부간의 협상이 있었는데, 의견 불일치로 결렬되었으며 이로인해 교문으로부터 1백50여m 떨어진 도로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경찰이 강제해산시키려고 최루탄과 페퍼포그를 쏘아대자 학생들은 교내로 들어와 학생회관 1층에서 1백50여명이 남은 가운데 귀가중 연행된 학생석방, 학원사찰중지, 구류학생 징계금지 등을 요구하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농성을 벌이다 연행학생이 석방되자 자진해산했다.
<제대신문 1985년 5월27일자 1면>

▲ <제주신문 1985년 5월15일자 7면>
제주대생 3백명 시위

14일 하오 제주대학교 학생 3백여명은 스크럼을 짜고 "광주사태 진상을 규명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학생들은 상오 11시부터 학생회관 앞에 모여 '광주사태 진상보고회'를 가진뒤 교문밖 1백m가지 진출, 페퍼포그를 쏘며 제지하는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다 하오 2시50분께 교내로 들어가 자진 해산했다.
<제주신문 1985년 5월15일자 7면>

▲ <제주일보 1985년 5월21일자 7면>
횃불시위 벌이던 대학생 2명 즉심

횃불과 손마이크를 들고 전단을 뿌리며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 2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18일 하오 7시쯤 제주시 중앙로 중앙양과점 4층 옥상에서 "광주사태 규명하라"는 현수막과 횃불을 들고 전단을 뿌리던 김계완 군(22. 제주대 회계학과 4년)과 강수경 군(22. 제주대 행정학과 4년) 등 2명이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20일 이들을 경범죄처벌법위반혐의(유언비어)로 즉심에 넘기기로 했다.
<제주신문 1985년 5월21일자 7면>

▲ <제주신문 1985년 5월25일자 7면>
제대생 1백50명 농성

제주대학생 1백50여명(경찰집계)은 23일 하오 6시부터 제주대 학생회관에 연좌, "구류학생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이날 자정까지 농성을 벌인다음 자진 해산했다.
<제주신문 1985년 5월25일자 7면>


#유세장 시위 이어, '5인방'이 일궈낸 첫 '대중투쟁'

1985년 5월투쟁은 여러가지 이정표를 남긴다. 첫번째는 제주에서 있었던 첫 '격렬시위'라는 점이다. 이전 제주에서는 전경과 무력적으로 충돌하는 시위가 없었다. 1980년대 들어 최루탄 연기가 흩날린 것이 처음있는 일로 전해진다. 물론 육지부 대학에서는 '반독재투쟁'이 강력히 전개되고 있었다.
두번째는 제주에서 5.18 광주학살에 대해 말문을 연 첫 투쟁이었다는 점이고, 세번째는 '소수 결행자'에 의한 싸움이 아니라 '학생대중', 즉 대중과 함께하는 싸움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학생대중'과 함께하는 정치투쟁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근원이 되고 있다. 1985년말 총학생회장 선거전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로 사실상 운동권 진영의 추천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박희수씨(당시 법학 2)를 총학생회장으로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이어 1986년 5.18싸움과 수천명의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낸 학원민주화투쟁, 그리고 현길호씨의 '옥중당선', 무더기 제적사태, 민정당사 화염병 투척사건 등으로 이어지면서 6월항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당시 보도에서는 1985년 5월투쟁의 중심인물로 김계완씨(45. 당시 제주대 회계학과 4)와 강수경씨(45. 제주대 행정학과 4) 2명에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소위 '디머'(주동자)가 2명인 것으로 일부 잘못 알려진 점이 있다.

위에 보도된 5월14일 광주사태 진상요구 첫 시위는 김계완 강수경 2명 뿐만 아니라, 한연희(45. 당시 가정교육과 4, 현 중등교사), 강양희(45. 당시 사회교육과 4, 현 중등교사), 강정희(45. 당시 국교 4, 현 중등교사) 3명이 더 있었다. 5명이서 5월싸움을 준비해왔던 것이다.

이들 5명은 2월 장은심씨 등이 유세장 시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학내에는 학습조직인 소그룹들이 계속해서 '재생산'(확대)되면서 다소 활발하게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소그룹에 참여했던 모인사는 이렇게 회상한다.
"장은심 김옥임 오옥만의 유세장 시위로 인해 학생운동에는 여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싸움이  끝나자마자 바로 5월싸움 준비가 시작됐다. 학내에서는 치열한 내부논쟁이 있었다. 한 그룹은 철저히 정치투쟁으로 가서 학생운동이 비약을 한다. 다른 한쪽은 제주도는 4.3후유증이 있기 때문에 정치투쟁은 모험적이고 불가능하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전자의 입장을 가진 소그룹진영이 중심이 되어 5월싸움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5월싸움은 5월14일 광주학살 진상규명 시위, 5월18일 중앙로 횃불시위, 5월23일 구류학생 석방촉구 연좌농성 등 3차례로 기록되고 있다. 그 중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사건은 '횃불시위'이나 이는 싸움형태에서 주는 상징적 의미가 많이 작용한 듯 하다. 어쨌든 메인싸움은 5월14일 시위였다.

▲ 1985년 5월, 소위 '5인방'이라 불리우는 제주대생 5명이 주도한 첫 대중정치투쟁. 그 중 한명인 김계완씨가 헤드라인제주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당사자인 김계완도 이 부분에 대해 같은 내용을 진술한다.
"5월14일 광주학살 진상규명 시위를 전개한 후, 마지막 '정리싸움' 차원에서 경찰 수배를 받은 주동자 중심으로 '횃불시위'를 했던 겁니다. 만약 5월14일 시위에서 주동자들이 모두 잡혀갔더라면 어쩌면 '횃불시위'는 없었을지도 모르죠."

김계완 강수경 한연희 강양희 강정희 소위 '5인방'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결행한 5월14일 집회를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김계완씨를 만나 들어봤다.

"유세장 시위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며 잘 마무리되자 그 다음 4학년생들도 뭔가 결의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분위기가 학내에서 강하게 형성되었어요. 그래서 극비리에 팀을 짜게 되었고, 한번 해보겠다는 사람을 모았는데 그게 소위 '5인방'이라 불리우는 팀이 짜여진 것이죠."

2학년때인 1983년, 김계완은 감리대를 다니다 시국문제로 휴학을 하고 제주에 내려온 친구인 송상용씨(현재 느영나영영농조합법인 근무)의 영향을 받아 정치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던 찰나 이미 소그룹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었던 선배의 권유로 '언더' 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소그룹 학습조직 역시 사회과학서적을 통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사회과학서적이라 해봐야 다양하지는 못했다. 1980년 초반에 주로 대학가에서 읽혔던 <전환시대의 논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철학에세이> <변증법적 유물론> 등이 전부라 할 수 있다.

사회과학서적을 통해 '자기 무장'을 했다기 보다는, 치열한 고민과 토론이 그를 더욱 강건하게 만들었다. 광주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당사자가 이 나라 대통령이라는 사실도 그렇고, 모순 투성이인 사회구조적 문제들, 그리고 아득하기만 한 '민주주의', 이런 생각들이 그로 하여금 '자기 희생'을 결심하게 만든 것이다.

#"집회 하루전날, 5인방 중 한명이 많이 울었다."

4학년 1학기가 개강되자 마자 학습소그룹에서는 4학년을 중심으로 해 '결의'할 대상자가 극비리에 모집됐다. 그렇게 해서 조직된 것이 김계완 강수경 한연희 강정희 강양희 이들 5명이다. 서로 다른 학습팀이었다가 소수 정예부대식으로 소그룹이 재편성된 것이다.

단 하루 집회를 위해 수개월전부터 소그룹을 재편성하고 준비작업을 해온 것은 자기 개인보다는  사회를 위해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이념적으로 잘 무장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준비하다가는 자칫 조직이 노출될 위험도 있었던 점도 감안된 듯 하다.

"4학년이 결의할 수밖에 없었어요. (5월집회는)아주 중요한 싸움이었다. 투쟁의 물꼬를 트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기로에 있었다. 전국적으로는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분위기가 크게 고조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제주는 그렇지 못했죠. 물론 2월 유세장 시위가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 후속 싸움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유세장 시위의 성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고, 학생운동은 계속 침체될 수밖에 없었어요."

2월 유세장 시위의 성과적 분위기를 계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5월싸움은 그들 말대로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제주시내 모 은신처를 마련해 집중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5월14일 광주학살 진상규명 시위를 한 후, 모두 잡혀가겠다는 각오였다.

▲ 인터뷰 도중 김계완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실 그 당시 학내에는 경찰이 상주해 있었어요.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지금처럼 학내에서 집회를 준비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들이 있었죠. 만약 뭔가 모의되고 있다는 것을 경찰쪽에서 알았다면 가차없이 연행이 시작되고, 그러면 집회는 어려웠겠죠."

사전에 알리바이를 만들고, 유인물 준비 등을 모두 끝낸 이들 5인방은 5월13일 밤 최종 점검회의를 가졌다. 모든 확인작업이 끝나고 전날 밤, 5인방 중 한명이 많이 울었다고 한다.

"다섯명이 디머(주동자)를 서게 되었는데, 모두 마음의 준비가 잘 되어있다 해도 개인적으로는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잖아요? 내일 날이 밝아 학교에 가면 경찰에 잡혀가 어떤 고초를 당할지 모르는데 왜 두려움이 없겠어요. 더욱이 그 때는 '경찰'에 잡혀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두려움이고 공포였어요."

#"공포감과 두려움 때문에 아무나 쉽게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전날 밤 그 자리에 있었다는 모선배도 이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디머로 나서는 5명 중 한 학생이 정말 많이 울었다. 당시 정치투쟁을 할 때에는 자신을 포기해야 하고, 인생을 포기해야만 결행할 수 있는 매우 높은 결단일 수밖에 없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경찰에 잡혀가 고초를 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 가족들이 자기를 그토록 믿었는데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할 가족들을 떠올리며 많이 울었다. 사실 이러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상한 것이다. 제주에는 4.3의 후유증이 크게 남아 있어서, 그러한 정치투쟁에 대해서는 공포감과 두려움이 많았다. 그 때문에 그동안 아무나 쉽게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5인방'은 5월14일을 맞이했다. 이미 소그룹 내부에서는 이 계획이 모두 내려가 있었다. 그러나 학내 상주하는 경찰 때문에 집회 당일에도 공개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날 집회가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내용의 홍보물이 교내 곳곳에 부착됐다.

김계완씨는 "오전부터 각 단과대학 건물에 홍보물을 부착했다. '하얀종이에 빨간 글씨' 모양이라고 생각하는데, 직접 글을 쓴 것은 아니었고 판화로 찍어서 만든 것인데, 이 홍보물에서는 5월14일이 되면 뭔가 있을 것이다하는 암시가 담겨져 있었다"고 말했다.

#집회 시작해 스크럼짜고 교내행진하자 순식간에 500명 합류해

드디어 5월14일 오전 11시 제주대 학생회관 앞.

계획대로 김계완이 태극기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사회를 보기로 한 강수경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나타났고, 한연희는 광주영령을 추모하는 위패를 들고 자리했다. 강양희와 강정희도 하얀 광목천을 집회대열 양쪽으로 설치했다.

그 광경을 처음 본 학생들이 속속 집회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5분만에 집결한 학생수는 경찰추산 300명이었으나, 당시 현장을 본 학생들은 적어도 500명은 모였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주대에서 열린 첫 정치집회치고는 '대성공'이었다.

5.18광주사태 진상규명대회라는 명칭으로 열린 집회는 '광주사태 책임져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학생들 모두 스크럼을 짜서 교내행진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처음 극소수로 출발한 이 대열은 학생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면서 대열은 수백명으로 늘어났다.

교내행진을 마친 학생들은 제주대 본관 앞에 집결해 진상규명대회를 시작했다. 강정희가 '민족민주화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고, 김계완이 결의문을 낭독했다. 집회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이런 돌발적 상황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학교측이나 경찰에서는 예상을 못했었던 것 같아요. 당시 학생과 직원 몇명이 나와서 행진하는 것을 제지했으나 참여 학생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나면서 제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죠. 그래서 학생과 직원들도 물러나서 사태를 유심히 지켜보기만 했어요."(김계완)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사상 처음으로 교문 밖으로 진출했다. 교문밖 100m까지 진출하는 동안에도 경찰의 제지는 없었다. 이어 교수아파트 앞까지 대열이 진출하자, 그때서야 진압경찰이 출동해 대치를 이루게 됐다. 경찰은 곧바로 페퍼포그과 최루탄을 마구 쏘아대며 진압에 나섰고, 학생들은 인근 보도블럭 등을 부수어 돌을 잘게 만든 후 이를 집어 던지며 극렬히 대항했다.
 

#"처음 보는 페퍼포그의 등장...'동풍(東風)'이 최루가스 되돌려..."

"이날 최루탄과 페퍼포그 최루탄을 처음 접해본 학생이 대부분이었어요. 제주에서는 최루탄 가스 연기가 어느정도 독한 줄 아예 모르고 덤볐으니까요. 그래서 경찰과 대치를 하면서도 최루탄이 발사되는 것에 대비한 준비도 안했어요. 나중에야 최루탄 발사가 예상될 때면 랩을 얼굴에 감싸거나 치약을 눈과 코 밑에 바르는 준비가 이뤄졌죠."

▲ 1985년 제주대 학생시위에 처음 등장한 페퍼포그. 사진은 헤드라인제주 DB로 1985년 5월투쟁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페퍼포그와 관련하여, 한 학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꼭 장갑차 같은 모형인데 크기는 작은 차가 진압전경 가운데 위치해 서 있기에, 처음에는 학생들이 신기한 듯 쳐다봤죠. 최루탄은 하늘을 향해 쏘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폭파하잖아요. 그러면 학생들은 그 최루탄이 어느지점으로 떨어질 것이다 예상하고 대부분 피하거든요. 그런데 페퍼포그는 그렇지 않았어요. 갑자기 기관총 사격하듯이 연발로 쏘아대는데, 그 최루탄은 연기를 피어오르며 여기저기 제멋대로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우리를 괴롭히더라구요. 그래서 지랄탄이라고들 불렀어요."

이 부분과 관련하여서는 일부 혼동이 있었던 듯 하다. 1985년 등장한 페퍼포그는 단순한 최루연기만 쏘아대는 역할을 했고, 그 이후 등장한 업그레이드된 페퍼포그에서 '지랄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어느 시위때 부터인지에 대해 혼선이 있다.
 

그런데 이날 시위에서 최루탄은 학생들에게 별 위력이 없었다. '동풍(東風)'이 불었기 때문에 최루가스가 시위대쪽 보다는 진압전경 쪽으로 되돌아갔다. 오히려 방독면을 착용하지 않고 진압전경 옆에 도열해 있던 사복경찰들이 곤욕을 치렀다.

2시간여동안 격렬한 투석전을 벌인 시위대는 오후 2시50분께 교문안으로 들어와 자진해산했다. 이날 시위를 주동했던 '5인방'은 모두 무사했다. 시위에 대한 학생들의 '자신감'은 매우 충만되어 있었다.

김계완씨는 "5명 모두 잡혀갈 각오로 시위를 주도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학생들의 참여가 너무 좋았다. 처음으로 가장 큰 시위를 해낸 것이고, 그 때 참가한 학생들마다 모두 승리감에 도취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싸움이 끝나니 제주에서도 해냈구나. 부끄럽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전에는 육지부에서는 반독재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데, 육지부 대학생들은 제주 학생들은 뭘하고 있나 하며 조소하던 분위기까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날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제주에서도 반정부투쟁의 물꼬가 트였다는 뿌듯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경찰수배 받게된 김계완-강수경, '횃불시위'로 정리싸움 나서

이 사건으로 김계완씨와 강수경씨는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된다. 물론 한연희와 강양희, 강정희 등 3명도 경찰의 지목을 받았으나 공식 수배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이에 김계완씨와 강수경씨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수배를 피해 다니다가 맥없이 붙들려 갈 것인지, 아니면 의미있는 '정리싸움'을 해낼 것인지.

결국 김계완과 강수경씨는 후자쪽을 선택했다. 이왕 경찰에 붙들려 갈 바에는 '반독재투쟁'의 당위성과 '광주학살의 실상'을 한명의 시민에게라도 더 알리고 정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땐 광주항쟁에 대해 제주 사람들은 너무 모르고 있었어요. 학생들과 일부 사회인사들만이 그 내용을 알리고 비밀리에 이 내용을 전파할 생각을 하고 있었죠."

▲ 김계완씨가 1985년 5월투쟁과 관련하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결심한 '정리싸움'은 바로 제주시 중앙로에서의 '횃불시위'였다.
첫 싸움을 하고 난 후인 4일만인 5월18일, 5.18항쟁에 맞춰 그들은 제주시 중앙로에 소재한 중앙양과 건물 4층옥상에 올라갔다. 그때가 오후 7시쯤.

이들은 광주사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내린 후,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핸드마이크를 들어 "광주사태 진상 규명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리 준비해온 유인물을 뿌렸다. 그 유인물은 중앙양과 앞 거리에 흩날렸다.

"유인물이 길거리에 날려 다녔으나, 시민들 몇은 그것을 주워 읽어보는 것 같고, 몇몇은 두려운지 읽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도 무슨 일인가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일단 우리의 입장은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셈이죠."

횃불시위는 30여분간 계속됐다. 첫날 집회와 마찬가지로 경찰은 '이상한 조짐'에 대해서는 감지하면서도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 듯 했다. 경찰이 출동한 것은 횃불시위가 시작된지 30분이 지나서였다. 경찰은 이들 두명을 곧바로 연행했다. 그리고 차에 태워 관덕정 옆 제주도경으로 끌고 갔다.

연행된 후 이들은 이틀간 조사를 받은 후, 5월 20일 즉심에 넘겨져 구류 15일을 받았다. 이들의 죄명은 경범죄처벌법위반혐의(유언비어 유포). 이 부분과 관련해 경찰의 한 관계자는 "당시 적용법률이 없었다. 집시법도 그 이후에 제정되었고, 그 때 마땅히 적용할 법조항이 없었기에 경범죄를 적용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들이 유치장에 수감되자, 제주대에서는 또 한차례 교문앞 투쟁이 벌어진다. 5월 23일 3백여명(경찰추산 250명)이 본관 앞에서 김계완 강수경 학생을 석방할 것과 경찰의 학원사찰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며 교문밖으로 진출해 진압경찰과 투석전을 벌인 것이다. 이들이 요구한 조건 중 학원사찰에 대해 경찰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두환 정권 때까지는 대학내에 정보형사 사무실이 있었다. 매일 학내 사무실에 가면서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고 정보를 수집하곤 했다. 이후 학원사찰 문제가 불거지니까 모두 철수하게 된 것이다."

#김계완씨 등 수감되자, 23일 또다시 격렬시위

5월 23일 시위 역시 대기중이던 진압경찰은 페퍼포그를 동원해 최루탄을 무작위로 쏘아댔고, 학생들은 돌맹이를 던지며 맞섰다. 충돌하다가 잠시 물러나 대열을 정비하고, 그런 방식으로 무려 4차례에 걸친 싸움이 이뤄졌다. 이러한 싸움은 밤까지 계속됐는데, 제대신문은 그날 오후 8시께 학생대표와 경찰간부간 협상이 이뤄졌는데 협상은 결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학생회관 1층에서 1백50여명이 남은 가운데 귀가중 연행된 학생석방, 학원사찰중지, 구류학생 징계금지 등을 요구하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농성을 벌이다 연행학생(23일 시위 중 연행된 학생)이 석방되자 자진해산했다.

3회에 걸친 1985년 5월싸움은 이처럼 격렬하게 이뤄졌다. 이 사건은 소수 정예가 아닌, '학생대중'을 정치투쟁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는데서 제주 민주화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싸움은 11월 제주대 총학생회장 선거로 그 맥이 이어진다.

*** 시위를 주도했던 '5인방' 중 김계완씨는 현재 느영나영영농조합에서 일하고 있고, 강수경씨와 강양희씨는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한연희씨와 강정희씨는 1986년 졸업했으나, 임용보안심사에 걸려 임용을 받지 못하다, 1999년 정부의 민주화운동관련자 임용발령 방침으로 일선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계완씨, '횃불시위' 이후는....>

1985년 5월 첫 대중적 정치투쟁을 벌인 '5인방' 중 한명인 김계완씨는 이듬해 2월 졸업을 하자, 바로 그 다음날 논산훈련소로 입대했다. 그날이 졸업식 다음날이다. 김계완씨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가족들이 입대신청을 해버린 것이다.

"5월 횃불시위로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자 가족들이 면회를 와 '너 죽고 나 죽자'며 저에게 호통을 쳤어요. 경찰은 옆에서 '멀리는 척'하며 오히려 싸움을 더 붙이고..."

아무튼 김계완씨는 가족들을 끝내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야 했고, 군대에서 1987년 6월항쟁의 상황을 간접적으로만 들어야 했다.

1988년 전역해서는 민청(제주민주청년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그리고는 1989년 00식품에 입사했다.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은 '직장인'이 되고자 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노동현장 투신' 성격이 강했다.

입사서류에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쓰고, 대학 졸업 사실은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진정한 노동'과 '노동자의 당당한 권리'를 구현하며 제주에서도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했는데,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5개월만에 잘렸어요. 잘린 이유는 그 당시 친목회를 조직해서 '공돌이'로 일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문제가 꼬이더니만 해고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더라구요."

이후 목수일을 해 오던 그는, 3년전부터는 느영나영 영농조합법인에 들어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가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이 영농조합법인의 대표인 김정열씨 역시 6월항쟁의 주역인데다,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김계완씨는 현재 느영나영영농조합법인에서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다.  
 
그는 "저 나름대로는 세상을 항상 순수하게 살아가려고, 그리고 거짓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너무 못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그와 함께 활동했던 한 선배는 김계완씨에 대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열정적이고 순수한 청년"이라며 "차분하고 내성적 성격이면서도 그가 용기있는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와 사회정의에 대한 가치관이 명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책자 및 기사의 1차적 저작권은 저자인 윤철수, 그리고 기사 및 책 속에 담긴 사진콘텐츠는 서귀포6월항쟁기념사회에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