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학살에 대한 간접 트라우마가 있다.
오랫동안 제주4·3 문제에 천착해온 아버지의 시로 4·3을 접하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평화와 상생을 기원하는 소재로 쓰이고 있으나 나에게 4·3은 그냥 끔찍한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생 때 접한 아버지의 시 가운데는 이런 장면이 있었다. 엄마가 서북청년단에게 갖은 방법으로 유린당하는 동안 장롱 속에 숨어 그것을 지켜보면서 오줌을 싸는 어린 아들. 그것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아, 다른 전쟁이나 학살 사례를 접하면 으레 그 학살과 고문 장면부터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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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는 1930년대 말 파시즘이 당대를 지배하던 이탈리아에서 유태인에게 자행되던 강제노역과 학살 상황을 그린 영화이다. 막상 영화 안에 끔찍한 장면은 잘 나오지 않는데, 낙천적인 성격의 주인공 귀도는 자신과 함께 끌려온 아들 조슈아를 위해 이 상황을 철저히 게임인 것처럼 속이고, 아들의 초점에 맞춰 영화는 잔인한 장면을 최대한 배제한 채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고서 단순히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만 기억되지 않았다. 귀도가 희극적으로 연출하는 상황 속에서 그림자처럼 전쟁의 비극은 따라다닌다. 조슈아가 자는 동안 귀도가 목격한 풍경은 가스에 질식하여 죽임을 당한 시신 무더기였다. 그 안에는 아마 귀도의 숙부도 있었을 것이다. 귀도는 절대 그것을 아들에게 보여주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독일군에 의해 죽으러 가는 상황조차 아들에게는 게임으로 보이게끔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를 선보인다. 마지막에 조슈아는 귀도가 이 게임의 선물이라고 속인 진짜 탱크(사실은 연합군의 탱크)를 만나고 어머니 도라와 재회한다. 영화 장면만 보았을 때 조슈아는 이 상황을 끝내 게임으로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 전체를 들려주는 화자는 다름 아닌 조슈아다. 영화는 ‘이것은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끝난다. 귀도 역을 연기한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영화의 감독이면서 아버지 귀도 역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야기를 들려준 아들 조슈아이기도 하다. 결국 <인생은 아름다워>는 베니니가 겪은 체험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물려받은 기억의 산물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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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였으면서 다시 아들이 되어 그것을 돌이켜보며 그가 느꼈을 심경을 떠올려 보았다. 내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제주4·3의 잔인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죽이는 이야기’라는 제목의 시리즈 연작시는 제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고문 장면들을 그렸다. 4·3을 소재로 한 마당극에서는 제주 사람들을 괴롭히는 서북청년단 앞잡이 역을 맡아 연기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귀도가 조슈아에게 심어준 상황은 왜곡된 것이었지만, 훗날 아들에게 그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베니니가 우리에게 보여준 장면은 우스웠지만, 그로부터 극대화된 비극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대인 학살 문제를 뇌리에서 씻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세상에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잊어도, 누군가는 기억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를 물을 때, 무엇 하나가 절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억되어야 할 일을 기억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리고 전승받은 그 기억을 다시 후대에 전승하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학살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되며, 그 참상과 인간의 도리를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기억시키는 것은 이제 그것을 물려받은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로부터 배웠다.<김소영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