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결국 '부결'...왜 이런 파국 초래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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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 결국 '부결'...왜 이런 파국 초래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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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예산안 '부결' 사태 문제본질과 향후 전망
계수조정 '선심성 증액잔치'→'동의권' 문제로 확산

원희룡 민선 6기 제주도정 출범 후 처음 편성된 새해 예산안이 15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 부결처리되면서, 연말 지방정가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15일 제주도의회 정례회 마지막 본회의가 파장으로 끝나면서, 제주도당국과 의회는 서로 우회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며 '자존심'을 건 듯한 극한 대치를 하고 있다.

연말 제주정가는 그야말로 '파국'을 맞고 있다. 왜 이런 파국이 초래됐을까.

◆ 민선 5기 첫 부결사태 때와 다른 점은?

이번 부결사태는 민선 5기 제주도정 당시와 비교할 때 차이는 있다. 당시 우근민 도정 출범 첫해에 이뤄진 2011년 예산안은 제주도정이 먼저 '민간보조금 개혁'을 내세우면서 촉발됐다.

취임 후 민간보조금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천명한 우 전 지사는 예산편성 당시부터 민간보조금을 대거 감액 손질하는 방식으로 해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수많은 민간단체가 의회에서 '로비'를 통해 예산 증액을 시도했고, 의회가 민간보조금을 다시 증액하는 방법으로 수정을 가하자 '부동의'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결국 그 해 예산안은 부결처리됐다. 고위공직자의 '삭발항거'도 이때 나타났다. 치열한 대립각은 예산재편성 과정에서 제주도정이 '백기투항'을 하면서 일단락됐다. 연말 임시회에서 종전 의회 계수조정 내용대로 수정한 안이 상정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번 원희룡 도정 예산안은 사실 '혁신' 내지 '개혁'이란 타이틀이 붙을만한 예산은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의회에서 지적한대로 특정 민간단체에 편향적으로 편성된 예산 사례도 대거 있었고, 전체적으로 볼 때 '혁신예산'이라고 칭할만한 부분은 약했다.

대신 원 도정은 '삭감명분'은 인정하면서도, 지방자치법 규정의 절차를 들어 '증액명분'에 태클을 거는 방법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지방자치법 제127조 3항에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동의없이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로운 비용항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제주도정은 "증액사유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동의여부 결정이 가능하다"는 절차적 논리로 해 '동의권' 행사에 나섰다.

본회의 하루 전에 의회에 예산증액 사유를 통보해달라는 요청공문을 보내며 압박을 가했고, 예결위에서 발언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을 동의권 훼손내지 지방자치법 위반이란 해석까지 내놓으며 이례적으로 공개질의에 나서기도 했다.

이 '동의권' 카드의 이면에는 이미 증액예산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절차적 명분으로 '역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선심성 증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원 도정 예산편성 과정의 문제는?

사실 이번 '예산갈등'은 지난 10월 말 구성지 의장이 '예산편성 사전협의'를 제안한 것에 대해 제주도정이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물론 제안의 이면에는 의원들의 '재량사업비(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 배정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란 할지라도 '사전 협의' 자체를 거부할 일은 아니었다. 역으로 사전협의 속에서 예산편성의 원칙과 기준을 공개화하고, 투명한 편성을 위해 의회와 도정이 '큰 원칙'을 합의할 수도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물밑에서는 실제적인 사전협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나,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을 거부한 것과는 차원이 엄연히 다르다. 사실 이때부터 갈등관계는 묘하게 꼬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제주도정이 편성한 예산안이 개혁적이라거나 혁신적이라는 강한 기조조차 없었다는 점이 초반 예산심의 논쟁에서 의회 '강세'의 명분을 내줬다. 편법적으로 운영돼 온 협치위원회 준비위원 소속 단체 예산이 편성됐는가 하면, 선심성으로 비춰질 소지가 있는 민간보조금 등, 이러한 모순은 실제 의회 예산심의에서 적지않은 논란으로 이어졌다.

◆ 도의회 '삭감명분'과 '증액명분'은 제대로 확보됐나?

문제는 의회가 '삭감명분'은 상당부분 틀어쥐고도 '증액명분'에 실책하면서 빌미를 제공했다는데 있다.

이번 도의회 예산심의는 일정부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부 상임위원회에서 신규 증액편성을 전면 자제한 점은 예년과는 달라진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삭감 명분'과 '증액 명분'을 제대로 확보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큰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예산 총 삭감규모는 상임위원회에서 이뤄진 347억원에 예결위 60억원을 합해 총 408억원에 이른다. 삭감규모로만 치면 역대 도의회 중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선심성 잔치'가 벌어졌던 2014년 예산안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액수다.

삭감내역에서 '협치' 관련 예산에서 대거 삭감한 부분이나, 각종 신규 민간보조금 등을 감액하면서 나름대로의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증액예산 확보를 위한 삭감'이라는 의구심을 받는 항목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버스업체유류세 연동보조금 60억원 중 10억원, 택시업계 유류세 보조 87억원 중 18억원, 화물운수업계 유류세 보조금 98억원 중 21억원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삭감하더라도 내년 추경안에서는 반드시 편성해야 할 항목들인데 의회는 이 사업비들까지 조정했다.

문제가 있어서 삭감했다기 보다는 의원들이 '희망하는 증액예산' 재원 확보를 위한 차원의 성격이 짙다.

증액예산은 더더욱  명분이 약했다.

구성지 의장은 '손톱 밑 가시 제거 민원 사업'에 증액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소중한 도민 혈세인 예산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쓰여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할 때 '원칙과 기준'이 무너진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

증액예산 내역을 보면 대부분 소모성 사업비로 분류되는 민간단체 보조금 또는 특정지역 지원 예산이 대부분이으로 나타났다. 삭감명분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국비사업 삭감분까지 모두 민간지원 예산으로 재편성됐다.

최소 국비사업 삭감분과 같은 재원은 예비비로 편성해서 차후에 재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증액조정에서 '예비비'로의 편성은 단 한푼도 이뤄지지 않았다.

스포츠관련 행사 등 특정단체나 특정지역 행사에 조금씩 더 얹혀주는 방식의 증액은 물론, 아예 신규로 항목을 신설해 사업비를 배정한 사례도 대거 눈에 띄었다. 사업계획서 한번 검토없이 사업명칭 하나만 갖고 즉흥적으로 예산을 재편성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큰 덩이리' 예산 264건에서 삭감한 408억원의 재원을 갖고 '쪼개고 쪼개는' 방식으로 무려 1325건에 재배분했다. 삭감예산 항목 1건당 평균 5건으로 쪼개어 사업예산에 배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도 대부분 한번 시행하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소모성 사업비들이란 점에서 우려를 크게 한다.

심의 때에는 '선심성'을 실컷 지적해놓고, 계수조정에서는 정작 '선심성 증액잔치'를 벌인 꼴이다. 이것이 이번 예산안 파장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 '증액사유' 공개와 '동의권 보장' 논란은?

예산 계수조정 막바지에 제주도정은 '증액사유 공개'와 '동의권 보장'으로 의회에 압박을 가했다. 설령 예산안이 부결되더라도, 계수조정 관행에 강한 태클을 걸어 도민들의 뜻을 묻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지방자치법상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비용항목의 사업비를 증액편성할 때에는 반드시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를 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후 이 규정을 활용해 '부동의' 한 사례는 2010년 말과 올해 두차례다.

동의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각 예산의 증액사유를 들어야 하겠다는 제주도정의 논리는 원칙적인 측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로 풀이된다.  

이에대해 구성지 의장은 "물리적으로 도저히 작성할 수 없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요청한 것은 부동의의 새로운 이유로 삼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태"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예산편성 내역에 대해 의회가 심의를 통해 견제하고, 반대로 계수조정의 타당성에 대해 도정이 동의권 행사함으로써 상호견제가 이뤄질 수도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증액사유 공개' 요구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일련의 흐름을 종합해 보면, 이번 부결사태의 근본적 문제는 '증액명분'의 타당성으로 귀결되고 있다. 최초 편성예산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심의과정에서 '삭감'이라는 결과로 걸러졌기 때문이다.

반면 '증액'의 경우 동의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여과없이 '묻지마' 식으로 통과될 수 밖에 없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계수조정 구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증액 예산 또한 최소한의 검토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 재편성 예산안, 연말 처리?...아니면 '준예산' 체제로?

이제 관심은 예산안 부결사태는 제주도정과 의회가 과연 정치적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데로 모아지고 있다.

제주도는 원점에서 예산안을 재편성해 다시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 시점은 서두를 수밖에 없다.

당장 차기 임시회가 오는 18일부터 24일까지 예정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긴급 부의 안건으로 제출하든지, 혹은 차기 임시회가 끝난 후 연말에 '원포인트 임시회'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정은 당장에 수정예산을 어떻게 짤지, 또 의회는 '선심성 증액예산'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제주에서 사상 처음으로 연내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자칫 제주 사상 첫  '준예산 체제 '의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의회 심의권과 더불어 증액예산에 대한 동의권은 올 연말 지방정가의 최대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예산 재편성을 하는 제주도정은 '삭감결과'에 대해 겸허한 평가가, 의회는 '예산 증액'의 원칙과 기준을 바로 세우려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헤드라인제주>

260건 삭감해 1320건에 배분...계수조정 '408억원' 증액 내역은?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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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정패 2014-12-16 14:17:43 | 121.***.***.148
구성지 의장이 판정패 한거 같네요.
여론이 급속히 의회를 떠나고 있는 중이고 지사에 대한 동정여론 급상승.
논리적으로나 정치적 제스쳐에서나 도지사 하고는 당초에도 게임이 안되지 않았을까?

의견 2014-12-16 13:11:15 | 211.***.***.143
정말 좋은 분석 기사입니다.
도민의 혈세가 도 의원들 표 챙기기 예산으로 낭비되어서는 안됩니다.

한심 2014-12-16 11:15:13 | 221.***.***.148
도민의 알권리 하면서 청문회에서는 폼잡고
예산 문제를 도민사회에 함께 풀어보자고 의회에서 발언하는
도지사 한테 마이크 꺼라 경고한다 퇴장 운운하는 의장이나
도의원들.. 참 한심 합니다. 어제사건은 도의회가 저지른 도민사회에대한
무시의 극치이고 제주 사회의 치욕이었다. 정말 창피하다.

도민 2014-12-16 09:00:01 | 121.***.***.235
스스로 민의의 전당이라고 하는 신성한 곳에서 마이크까지 꺼버렸댄 허는거 보난 진짜 민의를 대변하는ㄴ
낮은 자세로 일하지 않고 특권을 가진것 처럼 행동하는것 같다.. 증액사유 제시하면 될 것을.. 도민들의 눈은 살아 있을 것이다.. 예전에도 도민의 지탄이 된 도의원들은 결과가 인과응보 였다..

논리싸움 2014-12-16 08:33:51 | 175.***.***.22
도정이 측근 예산 챙긴거나 도의회가 지역구 예산 증액한거나 양자 모두 잘못한 건 맞는데 논리싸움에서 도정이 한수 위인것 같음.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건 그 예산이 도민이 낸 세금인데 마치 공돈 생긴것 마냥 떡주무르려고 하니 분노가 치밉니다

이거 참 2014-12-16 07:55:10 | 211.***.***.28
세금으로 식께집 떡반 나누냐??

정론 2014-12-15 23:55:10 | 125.***.***.182
균형 잃지 않고 날카롭게 분석 잘하셨네요. 이참에 예산 구태 청산하고 바로 잡아야지요. 올해 어영부영 타협하며 넘어가면 내년에 또 되풀이할 게 뻔합니다. 도정도 미흡한 부분 솔직히 인정하고 계수조정 잘못에 대해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튼 이번 증액예산이 무산돼 천만다행 입네다

일반서민 2014-12-15 23:40:30 | 112.***.***.182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아무리봐도 이번은 의회가 도민의 대의기관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선거를 도와준 사람들만을 위한 대변기관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지금 도지사는 선거과정에서 아무런 부채를 지지 않았기 때문에 원칙과 소신대로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5년 아마도 준예산 체제로 갈 것 같습니다. 도의회가 굽히지 않는 한은 그렇게 가야합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악의 고리를 끊지 못합니다.

본연 2014-12-15 22:26:08 | 211.***.***.116
완전한 일처리는 없다. 본래 선심성이 있음을 시인하고 의화도 전례에 따른 선심성에서 못 벗어났다. 민의를 외면 못하는 동질성에 공감하고 자기쪽만 의 민의를 고집하면 안된다. 허지만 지금 1차산업이 힘들다고한다. 민생을 제대로 챙기는 기본이 되야 지사.의원들이 밥값하는 거다 또 재주경제를 위한 기업유치와 도만의 삶에 발이 부르트도록 일해야하고 반드시 성과도 내야한다. 그런사람을 도민이 바라고 사랑해줄 수 밖애 없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