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헤이즐'의 거대한 울림...사랑,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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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의 거대한 울림...사랑,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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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 (5) '안녕, 헤이즐'
영화 '헤이즐' 공식스틸컷. <헤드라인제주>

아픔을 가진 두 청춘남녀의 따뜻한 로맨스를 다룬 영화 '안녕, 헤이즐'.

최근에 상영이 끝난 영화인데 뒤늦게 글을 써 올리는 것은 영화의 잔상이 쉽게 잊혀지지 않아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나의 의미’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울림을 주는 것 같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주인공 헤이즐(쉐일린 우들리)은 폐를 점령한 암세포 때문에 항상 산소통과 호흡기를 몸에 달고 살며, 남주인공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는 한쪽 다리가 없어 의족을 차고 다닌다. 부모님의 권유에 못 이겨 암환자 모임에 참석한 헤이즐은 거기서 어거스터스를 만난다.

하루하루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헤이즐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어거스터스에 처음엔 선을 긋지만, 같은 것을 교감하면서 점차 사랑을 키워 나간다. 둘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때로는 달달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사랑을 나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헤이즐보다는 어거스터스에 공감하면서 영화를 봤다.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상징처럼 입에 물고 다니는 어거스터스는 불편한 자기 몸을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극도의 고통과 불안 속에 끝내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커지는 암덩어리에 삶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고, 자신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져 갈 것임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영화 '헤이즐' 공식스틸컷. <헤드라인제주>
극 후반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내가 영웅이 될 줄 알았어. 내 이야기가 책이나 신문에 실리게 될 줄 알았어.”

사실 내 육체가 죽어 사라져도 내 이름은 오래도록 세상에 남아 있길 바라는 욕망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명예욕이다. 이를 통해 유한한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어거스터스에게는 특히 더 절실한― 동안 내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때로는 몸서리쳐질 만큼 허망해진다. 자신에게는 치열했던 순간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찰나에 불과하단 것, 어떤 이에겐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일 수 있다.

그런 어거스터스에게 헤이즐은 이런 말을 건넨다. “넌 나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함을 줬어.” 적어도 이 말은, ‘자기’ 안에 파묻혀 있기 바빠 ‘내 삶’이라는 범주 안에 타인과의 관계가 포함된다는 것을 종종 잊는 필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헤이즐은, 하나의 삶이 갖는 어떤 의미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음으로써 얻어지는 개인의 위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타인과의 진실된 교감을 통해서도 충분히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말한다.

영화 속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사랑 외에,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은 수많은 사랑들―꼭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이 그냥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져 갔고 또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그들의 삶은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아주 옛날부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같은 마음homoprosyne’을 통해 자신이 누군지를 확인해온 사람들이 있었다(동일한 맥락이라 할 수는 없지만, 고대 희랍의 오뒷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에게 돌아가기 위해 고난의 여정을 기꺼이 감내한 것 역시 자기정체성 찾기의 일환이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삶을 긍정해 주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준다면, 꼭 세상에서 명예를 드높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헤이즐의 말처럼, 유한한 내 삶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타인의 존재가 있다면 그것으로 내 삶은 무한성을 얻은 것이다. 불완전한 둘이 만나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며 죽어간다. 찰나를 영원으로 만들고,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며 죽어서도 서로에게 영원히 기억된다. 관계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란 새삼스럽게 경이롭다. 영웅도 아니며, 위대하지도 않은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사랑은 그래서 너무나 아름다웠다. <헤드라인제주>

영화 '헤이즐' 공식스틸컷. <헤드라인제주>

<김소영 인턴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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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드르 2014-09-18 11:12:00 | 119.***.***.164
정말로 인생에서 서로 공감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었으면....짧은 청춘의 사랑이 아름답고 안타까웠던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