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대만, 제주섬 평화운동..."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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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대만, 제주섬 평화운동..."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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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평화캠프 오키나와, 대만, 제주섬의 투쟁 이야기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인권이 보장되는 세상"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는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세계 주요 평화활동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제1회 평화의 바다 국제캠프' 3일째인 5일 강정마을회관에서는 '오키나와와 대만, 그리고 제주섬의 투쟁이야기' 장이 마련됐다.

일본 오키나와 군사기지 반대 활동가에서 출발해 일본 3선의 참의원을 지내면서 '평화의원'으로 불리는 이토카즈 케이코 의원(67. 여. 오키나와), 오키모토 히로시(67)를 비롯한 오키나와 기지반대 활동가들, 그리고 대만에서 인권과 평화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차이쿤링(83)이 이날 투쟁 이야기를 풀어냈다.

제1회 평화의 바다 국제캠프'. <헤드라인제주>
'제1회 평화의 바다 국제캠프'에 참가한 이토카즈 케이코 참의원. <헤드라인제주>

제주에서 군사기지 반대투쟁에 앞장서온 허창옥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과 함께 참석한 케이코 의원은 본 이야기에 앞선 인사말에서 오키나와의 군사기지 반대투쟁의 소식을 전하며 제주 등과 함께 앞으로 평화연대 활동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키모토 히로시가 오키나와 기지 반대 투쟁의 과정을 전했다.

◆ "군사기지와 전쟁없는 평화의 섬 오키나와 되찾을 것"

'류큐왕국'이라는 독립국이던 오키나와가 1879년 '오키나와현'으로 명명되며 일본으로 병합된 역사적 일들을 세세하게 설명한 그는 1941년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오키나와가 마지막 최대 비극지역이 되었음을 전했다.

그는 "1945년 3월 시작된 오키나와 지상전은 6월23일 종전될 때까지 3개월간 미군, 일본군, 오키나와 주민 등 합쳐서 2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 중 주민 희생자는 약 15만명으로, 주민 4명 중 1명 또는 3명 중 1명이 희생됐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일본이 식민지로 지배했던 조선과 대만으로부터도 강제로 동원되 온 사람들도 희생됐는데, 조선인 군속 1만명 이상,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약 1000명이 강제 동원돼 죽은 것으로 돼 있다"며 "그러나 평화기념공원의 '평화의 주춧돌;에 새겨진 전쟁사망자는 대만 34명, 한국 365명, 북한 82명으로 아직도 몇명이 죽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기지 반대 투쟁 상황을 전하는 오키모토 히로시. <헤드라인제주>
제1회 평화의 바다 국제캠프'. <헤드라인제주>

그는 "큰 희생을 당한 오키나와 주민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절실한 마음을 '누치두 타카라(생명이야말로 보배'라는 말에 담았다"며 전쟁의 비극을 전했다.

이어 미군정과 군사기지 건설문제로 이어졌다.

"오키나와 전투가 끝나고 미군의 오키나와 점렴이 시작됐다. 오키나와는 일본본토로부터 떨어져 있어, 미군의 직접 점령 아래에 놓이게 됐다. 강간이나 살인, 교통사고 등 흉악한 미군 범죄, 미군의 총격이나 군용기 추락 등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가 횡행하는 가운데, 오키나와 현민은 권리가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는 "미군의 오키나와 기지 건설은 오키나와 전투가 한창일 때부터 진행됐고, 일본군이 만든 각지의 비행장을 그대로 손에 넣어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지방의 수용소로 격리하고, 학교, 논밭과 함께 주민이 살던 마을을 파괴해 기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지옥같은 오키나와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미군의 혹독한 지배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로부터 분리당한 오키나와 현민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하며 계속 투쟁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그는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될때까지의 미군정 27년은 오키나와 현민의 생명과 생활과 인간의 권리를 지켜내는 투쟁의 27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본과 미국 양국 정부가 오키나와 반환을 진행한 이유는, 미군정을 대신해 일본정부가 오키나와를 지배하고 정치적.재정적으로 오키나와 기지를 유지하려는 계산이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일본이 오키나와 현민 입장에서가 아니라 미국만 바라보며 교섭하려는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경비는 매년 2000억 엔 전후에 육박하는데, 일본정부가 부담하는 대상은 매년 확시켜왔다"며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선심을 잘 쓰는 동맹국인 것"이라고 힐난했다.

또 "방위청 예산에 따르면 거대한 매립으로 이뤄지는 헤노코 신기지 건설비용은 매립하는데 2300억엔, 총공사비 최저 3500억엔이라고 한다"며 "이것을 일본정부가 모두 부담한다고 한다. 이는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정부의 돈 없이는 미군은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기지와 전쟁없는 평화의 섬, 오키나와를 되찾기 위해 투쟁을 해 나가고 있다"며 "동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연대해 평화롭고 전쟁없는, 인간답게 살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어나가자"고 호소했다.

참의원에 3번 당선된 케이코 의원도 "저의 의석은 '평화의 1석'"이라고 소개하며 기지 반대를 위한 평화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83살 대만 평화활동가가 전한 대만 '백색테러'의 기억

두번째 지역 이야기 연사로 나선 이는 대만의 '걸어다니는 역사'로 불린다는 83살의 차이쿤링.

그는 대만에서 일어난 '백색테러'와 인권실상의 문제를 전하고 평화연대에 동참하기 위해 이번 국제캠프에 참가했다고 전했다.

20여분의 짧은 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 직접 경험했던 가슴아픈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인권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타이완 출신으로 일본이 통치하던 중학교 3학년 때 학도병으로 소집돼 전쟁에 나갔다는 그는 "전쟁에서는 죽지않았으나 그 뒤 무서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신이 아닌 자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며 '비극적 상황'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본의 패배로 전쟁이 끝난 후 중국군이 타이완이 점령한 후, 물가가 폭등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연일 이어졌고, 관리들의 부정부패, 중국 대륙 출신과의 불평등한 처우 등 수많은 문제가 쌓이더니 결국 1947년 2.28사건이 발발해 무고한 시민 3만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듬해 제주에서는 4.3사건으로 수만명에 이르는 도민이 희생되었다."

대만의 '백색테러' 아픈 기억에 대해 전하는 차이쿤링. <헤드라인제주>
제1회 평화의 바다 국제캠프'. <헤드라인제주>

그는 "국민당 군이 들어온 1949년 5월20일부터 1987년 7월까지 38년간 전 세계적으로도 최장의 계엄령이 선포됐다"며 "국민당 정권은 타이완 섬에서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자, 끝내는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언론인이 있으면 체포하고 고문을 한 후 장기간의 징역을 살게 하거나 사형에 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신도 피해자 중 한명이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무원으로 일을 하다가 교원검정시험에 합격해 학교 교원으로 일을 했다는 그는 1950년 가을 혼자 학교에 출근해 잔업을 하고 았을 때 낯선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그 남자는 경찰서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은 후, 경찰서까지 안내해 주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자신을 감옥에 쳐 넣었다고 했다. 뒤늦게 그 남자가 사복차림의 헌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헌병대에서 전기고문 등을 받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의 권유로 독서클럽에 참가한 것이 체포한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서면만 하면 풀어주겠다는 말에 읽은 적 조차 없는 선전유인물을 살포했다는 자백서에 서명한 그는 이후 10년간 징역을 살아야 했다.

당시 감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고, 매일 새벽 4~5시만 되면 그날 처형을 할 수형자의 이름을 부르고 끌고 가는 '죽음의 점호'가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17, 18살에 투옥된 11명의 젊은이들은 수용소에서 연애편지를 보내고, '사회진화론' 노트 등을 증거로 해 금지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죽음에 처해졌다.

스무살에 투옥돼 1960년 9월 석방된 그는 "어떤 반항적인 행동조차 하지 않았던 타이완 청년들의 목숨을 빼앗아 온 국민당 정권 고관들의 죄는 철저하게 규명돼야 할 것"이라며 완전한 인권실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팔순이 넘은 주변 나라를 직접 찾아다니며 진실규명과 인권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이 섬에 갇힌 아이를 위해 긴밤을 울며 지새웠을까."

그는 타이완 남동부의 바다에 있는 인권기념비의 시구를 서면으로 전하며 마무리지었다.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 <헤드라인제주>
   
제1회 평화의 바다 국제캠프'. <헤드라인제주>

마지막으로 제주섬의 투쟁이야기를 전한 고권일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이번 국제캠프가 제주의 평화운동과 동아시아 평화운동이 함께 연대해 나가는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캠프에는 오키나와 대만 뿐만 아니라 미국 하와이, 필리핀, 뉴질랜드, 호주, 스페인, 인도네시아, 태국 등 10개국에서 5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마지막날인 6일 미국 군사주의의 영향으로 재편된 동아시아의 새로운 군사적 지형도를 확인하며, 분쟁지역 섬들의 연대, 그리고 구체적 실천운동 방안을 협의해 선언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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