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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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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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영철 /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팽목항이 전하는 말

1.

친구여,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팽목항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라.
일어나자마자 동 새벽 깨우는 해운대 백사장 썰물처럼 떠날 때 아는
완행버스 앞자리에 앉아 귀신같은 유병언 도피소식에
안 잡는 건지 못 잡는 건지 피시식 웃는 기사에게
진도항이 아직도 멀었느냐 말을 걸며 이름마저 낮선
쌍정리, 염장리, 삼막리, 사령리, 석교리 거쳐
저 봉상리 언덕넘어 살고 있는 우리 어머니의 등허리처럼 꼬부라진
아리랑 고개 백동리 남도진성 그 옆을 끼고
옆 좌석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창밖으로
10분 정도만 더 달려가면 먼 길을 달려온 그리던 팽목항이 달려 나온다

종합운동장 같이 확 펼쳐진 푸른 바다위에
쇠주 잔 엎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크고 작은 섬들이 들쑥날쑥
오가는 텃새들에게 세월을 저당잡아 잔술처럼 팔아먹고 사는 팽목항,
그 바다 한 모퉁이에 돌무지 쌓아 만든 바람막이 진도항 선창가 한 구석 창가
바람 옆에 앉아 귀대고 들어보라, 가만히 살짝 살짝 밀려오고 밀려가며
파도가 물고와 전하는 병풍도 앞바다에 수장당한 세월호의 기막힌 해전사를,
철수 명령만 기다리며 오락가락 검문하는 초병의 감시 눈을 피해가며

팽목항이 전하는 말. <사진=고영철 교수>

2.

맹골군도 거차군도 물수리 괭이갈매기처럼 대마도 관매도 해변을 돌고 돌아
장죽도와 길마도 낮은 경계선을 포복으로 몰래 넘어와
의혹투성이 천안함을 격침시키고 도망친 북조선 잠수함처럼
물속으로 달려온 맹골수도가 구원파처럼 거품물고 일어서 전하는 하늘의 천기를
세월호도 피격당했다네, 구원파가 말했다네, YTN 자막뉴스가 전했다네,
아물지 않은 흔적과 상처들을 꺼내들고 갈때까지 가보자

보일듯 말듯 봉긋봉긋 솟아오르다 사라지는 물안개처럼
배 고동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죽도야 곽도야 병풍도야 거마도야
맹골군도 회오리바람이 전하는 하늘의 소리를 너희들도 들었느냐,
세월호도 천안함처럼 국적불명의 유령선에 의해 피격당했다는 소문을,
저 병풍도 흰 꼬리 물수리가 조도고속훼리를 몰래 타고 와 좌파처럼 전하는 말
세월호도 유령선처럼 사라지기 전에, 세월호가 유령선처럼 또 산산조각 나기 전에,
한강 백사장에 잡아다 놓고 회오리바람, 흰 파도, 물수리와 갈매기들이 보는 앞에서
그동안 그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죽은 자들은 산자들에게 산자들은 죽은 자들에게 묻고 또 묻고 답하게 하라,

3.

저 검푸른 바다 너머 월드컵 경기장 뒤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환호 소리가 진열을 재정비한 후
세월호의 진상을 파묻기 위해 승리의 말 발굽소리 앞세워 총 공격해오기 전에
저들이 만든 어둠의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전기고문으로 물고문으로 주리 틀고 사지를 찢어가며
저 팽목항 무변대를 오고 가는 저 흰 바람을 잡아다
하늘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저 맹골수도가 닭모가지 잡아 비틀어도 온다는 새벽처럼
4월16일 동 새벽녘부터 캄캄한 어둠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출입 허가받은 물개들만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저 깊은 바다 속 구름처럼 오고가는 저 흰파도가
팽목항 앞바다에 머리 처박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대흑산도 맹골군도 거차군도 관매도 오고가는 저 흰 물수리와 검은 갈매기에게도
세월호가 어디서부터 천명을 어기고 어물쩡거리며 항해했는지 본 대로 실토케 하라
언제든지 국민을 배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저들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팽목항이 전하는 말. <사진=고영철 교수>

4.

함성을 찌르며, 배 위아래로 머리 위까지 죽음의 공포를 몰고 오는 물에 맞서,
물에 밀려 미끄러져 쓰러지면 또 일어나 부하들에게 구명조끼를 벗어 입혀 주며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는 대장 선생님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처럼 의연하게 온갖 위협을 무릅쓰고 청와대 게시판에‘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선생님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라, 위장한 사람의 탈을 벗고‘대통령의 하야’ 여부를 떠나 세월호의 진상 규명을 위한 그들의 외침과 피맺힌 울부짖음이 정의가 되도록,
너희들은 ‘그대로 가만 있으라’는 저들의 압제에 맞서 당당히 싸워야 한다며
이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새로운 어린 전사들의 피발선 외침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가질 수 있다는 대한민국 그 아름다운 강산 지천에 흐트러지게 핀 저 봄꽃들처럼
가슴 쫘악 열고 향긋하게 막 피어오르려는 붉은 홍매화 꽃봉오리 같은 내 조국의 아들딸들을
내 눈앞에서 생매장시킨 마지막 남은 의혹의 한 점까지 철저히 규명되는 그날까지

저 맹골수도를 돌고 도는 흰 파도처럼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의혹 투성이 해전사 진상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승리를 훔칠 궁리만 하는 괭이 갈매기들처럼 다듬어진 슬픈 울음은 울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눈물처럼, 내 조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면 더 이상 그들의 죽엄을 슬퍼하지 말라.

304명이 여기와 모든 진상을 하나하나 바로 세우며 비석에 새기는 그날까지.

- 5월 31일 오후 팽목항에서 받아 적다. <고영철 /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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