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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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이야기]<41> 이현숙/제주장애인문화예술센터
이현숙/제주장애인문화예술센터.<헤드라인제주>

올해 4월, 해남 우슬체육관에서 제4회 전남도지사배 전국보치아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보치아 코치로서 처음 참가한 대회로, 우리 선수들의 실력을 뽐내고, 우승의 영광을 기대하며 참석했다. 하지만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들뜬 마음은 경기장과 숙소를 보고 처참히 무너졌다.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경기장이며, 이미 여러 차례 대회가 개최되었던 경기장인데.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하는 곳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도 없고 문고리도 고장 나 잠글 수도 없는데다 세면대 한쪽 구석은 창고처럼 물건이 적재되어 있어 손도 제대로 씻을 수가 없었다. 신체적인 긴장감 해소뿐만 아니라 경기의 중압감을 해소해줘야 할 화장실이 이러한 것만 봐도 선수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경기장은 숙소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주체 측에서 준비한 숙소는 100% 휠체어를 타야 경기에 참석할 수 있는 중증장애인 대회에서 준비한 숙소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가 사용해야할 숙소는 침대도 없는 온돌방으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로 반만 열리는 문에, 철제 턱으로 가로막힌 화장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입이 불가능한 방은 선수들을 일일이 업거나 안아서 방으로 이동하고, 좌식생활이 불편한 선수는 하루 종일 경기를 하면서 휠체어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서 잠들기 전까지 휠체어를 타고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첫 번째 대회는 실망만을 안겨주고 끝났다.

두 번째 참가한 경기는 서울지역 보치아 연맹에서 주최하는 경기이고 서울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또한 미리 공지된 경기장과 숙소를 보고, 이번에는 지난번 대회와 다르겠거니 생각하며 내 인생의 두 번째 보치아 대회를 위해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선수와 코치 일행을 데리러와 준 특장차(휠체어를 실을 수 있도록 특별 제작된 리프트를 설치한 대형 버스)를 보고, ‘서울지역에서 개최되다 보니 지방대회와는 격이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경기장 시설 규모는 지난 대회보다 작았지만, 짐을 보관할 공간을 별도로 주어서 물품 분실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화장실도 잘 되어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관악대의 화려한 연주로 시작된 개회식이 마무리된 이후 우리는 또 한 번의 절망을 맛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우리 선수들과 코치들을 숙소로 데려다줄 차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팀의 대표코치님은 숙소로 가는 차량을 섭외하러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시고, 대회 관계자에게 전화하기를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개회식 종료 1시간 반 만에 겨우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저녁을 먹고 들어온 숙소는 내가 생각했던, 미리 보고 갔던 사진 속의 숙소가 아니었다. 방안을 가득 채운 침대 매트리스들 사이로 비장애인도 지나다니기가 힘든데 이 공간에서 휠체어는 어찌 다녀야 할지, 휠체어조차 들어갈 수 없는 화장실의 입구와 내부는 어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우리는 숙소에서 씻는 것을 포기하고 경기 기간 내내 에어컨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 땀 흘리며 경기하였지만, 경기장 화장실에서 노숙자처럼 겨우 세수만 하며 지냈다. 또한 경기장에 수백 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지만 곳곳에 설치된 정수기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경기 후 갈증을 해소하기 어려웠고, 정수기 옆에 비치된 컵은 종이컵이 아닌 봉투형 컵만 준비되어 있어 손을 자유자재로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이 대부분인 보치아 선수들은 혼자 물을 마시기에도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

경기 준비 운영위원회 자리에는 경기심판들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물과 음료가 따로 비치되어있는 것을 보고, 갈증을 호소하는 선수들을 대신하여 경기 준비 위원회에 선수들이 마실 물은 언제 준비되는지 여러 차례 문의하였으나 번번이 곧 준비될 거라는 대답뿐 물은 경기가 끝나도록 끝내 준비되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은 아무런 불평이 없는 듯, 경기장 한 구석에서 더위를 이기지 못해 땀을 흘리며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 모습 속에는 이제껏 늘 그래왔다는 느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숙소가 불편하고, 씻고 마실 물과 배설의 자유가 억압되었어도 몸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의사소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주면 주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며, 불만인 사항을 말하지 않고 그저 순종만 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살아온 우리 선수들의 마음속에 쌓인 울분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먹고, 마시고, 자고, 배설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의 기본 권리이다. 불평이나 항의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본권을 빼앗거나 무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인권 침해 행위는 단순히 보치아 경기에서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무관심과 이해 부족에 체육 관계자들의 대회만 치루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규정 및 시스템의 미비함이 더해진 복합적인 결과일 것이다.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은 생각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표현이 서툴 뿐이다. 우리가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지 않는다면 내일도 이런 일은 또 일어날 것이다.<헤드라인제주>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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