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하는 세상'에, '낭푼밥 공동체'를 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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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하는 세상'에, '낭푼밥 공동체'를 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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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 세상살이 이야기 '낭푼밥 공동체' 출간
4.3에서 제주해군기지 문제까지, 53편의 시대적 메시지

천만 원짜리 입어도

더 더

영혼마저 탕진하는
꽃무늬 걸레들의

부유방분浮游放糞

만 원짜리 걸쳐도
널 널

마음마저 내려놓는
주럭 허우대의

유사자향有麝自香
-김경훈, <소위 '명품'에 대하여 -이 시대 개털과 뱁새들이여, '명품'이란?> 전문

동문시장에서 산 바지 1만원

오일장에서 산 개량한복 윗도리 1만 2천원
마트에서 산 운동화 1만4천5백원
허리띠 6천원
빤스 3천원
난닝구 2천원
양말 1천원

내 몸을 걸치고 있는 표피의 값은 4만8천5백원이다
그건 나에 의해 규정지어진 외부의 평가 값이다

하지만, 옷을 주워다 입고 기워서 입는
전 선생에 비하면 나는 아직 부르주와지다

유행을 따르면 자만심이 커지고 동료의식은 줄어든다*
나의 값은 더욱 싸져야 하고 내 속은 더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김경훈, <나의 값, 요즘의 소위 명품족들과 비교해서> 전문

김경훈 시인(51)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그동안 <헤드라인제주>에서 장기연재했던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의 53편의 글이 '낭푼밥 공동체'(도서출판 각)라는 산문집으로 출간된 것이다.

김경훈 시인이 시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낭푼밥 공동체'. <헤드라인제주>

김 시인이 풀어내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그의 시집 '우아한 막창'에서 보여준 툴한 모습 그대로, 그의 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끝없는 화두를 던졌다.

첫 포문을 연 '김명식 시인을 아십니까?'에서 그는 전문분야인 제주4.3을 매개로 삼았다. 이후 이따금씩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격정적으로 꺼내들었다.

'이 시대 개털과 뱁새들이여, 명품이란?', '너! 심은하가 따라주는 술 먹어봤어?', '속도의 공포, 조강지차(糟糠之車)를 뒤로하다', '영어공화국...똥개도 한국말로 짓습니다' 등은 깨알 같은 웃음을 주면서도 강렬한 시대적 문제를 제기했다.

그의 이야기 전개법은 20년 전 쯤 제주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았던 '월산식당'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던 이 식당이 '못 먹은 축산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흥미로운 회상에 젖어들게 했다가 '낭푼 밥 공동체'라는 키워드로 귀결되었다. '나눔'과 '통일'을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53편의 그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시대적 메시지였다. 웃음, 분노, 격정 등을 수없이 반복하게 하면서도, 진진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삽질하는 세상'을 거부한 거대한 외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외침의 방향 내지 실체는 바로 마지막회에서 제안한 '사회 부적응자들의 연대'에서 가늠해볼 수 있다. 주눅들거나 구겨지지 않고, 자기 목소리 내고, 평생을 을궈먹을 고운 꿈 하나 간직하기 등 '당당하게 살아가기'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인의 이 외침이 널리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박식한 사람들'이 아닌 민중의 언어로 말을 했던 것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가식없는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기에, 세상살이 이야기는 가슴으로 회자되기에 충분했다.

매편 다른 주제를 가져나가면서도, 각각의 글들은 이 시대 민중의 삶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구체성과 목적성을 분명히 취하고 있다.

그가 던진 메시지는 이 시대의 현실적 고민입니다. 숨결을 느끼게 하는 듯한 거침없이 풀어 쓴 시인의 글은 곧 시대 민중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하는 이들에게 자기성찰과 행동을 요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 시인은 제주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제주4.3추가진상조사단에서 일하고 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삼돌이네집>, <우아한 막창>이 있다. 4.3전문 시집으로는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다. 일본어판 4.3시집으로 <不服從の 漢拏山>이 있다.

마당극 대본집으로 <짜기옵서예>를 집필했으며, 최근 강정의 해군기지 문제를 담은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와 <강정은 4.3이다>를 출간했다.

제주4.3관련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20일 오후 6시, 제주시 신제주 서울식당(제주도청 인근)에서 열린다. 저자 사인회와 강정 주말포차와 같이 진행된다.

도서출판 각, 값 2만원. <헤드라인제주>

김명식 시인을 아십니까?
이 시대 개털과 뱁새들이여, '명품'이란?
20년전 '월산식당'을 기억하십니까?
사회 부적응자들을 규합해 당(黨)을 만듭니다
<낭푼밥 공동체> 추천사
   
김경훈 시인.

"그는 의로움을 좇는 사람이다. 판단은 명료하고 불의에는 단호하다. 어쩌다 그를 만날 때면 움찔해진다. 그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주위의 슬픔을 같이 나누느라 언제나 눈매가 붉어있다. 그는 또 유쾌한 사람이다. 정직하지만 어눌한 사람들을 한바탕 우스개로 만들어 놓는다. 제주식 따스한 쌔타이어(satire, 풍자)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달관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 등에 짊어진 욕망의 바랑은 가벼웁고,어깨에 걸린 끈은 헐렁하다." - 강요배/ 화가

"그의 글들은 삽으로 땅을 파는 것 같다. 그만큼 찐득하다는 말이다. 내면에 설정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흙을 일군다. 거대함에 미혹된 세상은 그의 고결한 노력을 코웃음 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겠는가. 집요한 의지와 정신은, 누가 알아주든 않든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그 점을 우려하리라. 허나, 세상을 왜곡하고 허투루 여기는 부조리들에 대해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그가 대신 간난신고하는 것이다." - 김광렬/ 시인

"제주의 이름다운 자연을 알려면 올레길을 천천히 걸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 속에 묻혀 있는 제주 사람들의 기막힌 사연과 열정과 꿈을 알려면 김경훈 시인의 '낭푼밥 공동체'를 읽어보아야 한다. 김명식, 문형순, 김순철, 김동일, 이복숙, 김철의, 김경률, 이덕구, 양윤모, 양용찬, 진아영, 정공철…. 이들을 모르고 어찌 제주를 안다고 할 것인가. 광대시인이 차려 놓은, 시와 산문과 사진이 어우러진 푸짐한 ‘낭푼밥’이 오감을 자극한다. - 정지창/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이사장, 연극평론가.

<원성심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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