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 가시' 민원해결, 결국 말의 성찬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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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 가시' 민원해결, 결국 말의 성찬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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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손톱 밑 가시' 제거 약속에 붙은 수많은 '전제'
'사소한 민원' 묵살 일쑤..."예산없다, 규정없다, 전례없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 자주 표현되는 것 중의 하나가 '손톱 밑 가시' 제거라는 말이다.

요즘들어 지자체에서도 민생현장의 사소한 민원까지 척척 해결하겠다는 의미로 이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민생시책추진단을 운영하면서 내놓은 핵심시책 대부분도 이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것이다.

읍.면 지역별 민원책임관제 운영이나, 제주도청 민원실을 통한 '손톱 밑 가시' 민원 실무책임자 배치 등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과 맞물려 선심성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일부 있으나, 시행취지는 매우 의미있고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시민의 목소리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요즘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면, '손톱 밑 가시 민원' 해결은 공허한 구호로 다가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소한 민원'은 말 그대로 '사소한 일'로 치부되어 종결되어 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운 좋게' 도지사에게 바로 들어간 민원이나 민생시책 핵심 고위공직자의 귀에 들어간 민원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묵살' 당하기 일쑤다. 묵살하면서 제시하는 명분은 공직사회가 늘상 꿰고 앉아있는 '예산', '전례', '규정'.

"예산이 없다", "전례가 없다", "규정이 없다"는 이 3가지 명분 중 하나에만 해당되더라도 사소한 민원은 가차없이 묵살되는 것이 현실이다.

◇ 공공기관 영수증 카드번호 16자리 표기..."뭐가 문제?"

며칠전 제주시 모 동사무소를 찾았던 민원이 제주도청에 제안했던 신용카드 영수증의 카드번호 노출 보안 문제가 묵살당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 민원인은 공공기관에서 발급되는 신용카드 영수증에서 카드번호 16자리 중 마지막 4자리가 별표(*)로 표시되지 않고 모두 표기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는 카드업계와 여신금융협회 등에서 권고하는 사항과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전화나 인터넷 쇼핑의 경우 카드번호 16자리와 유효기간만 알면 결제가 가능해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를 적극 권고하고 있다.

일반 업체의 경우에도 대부분 끝의 4자리는 별표로 마스킹 되고 있는데, 하물며 공공기관에서 16자리 번호를 모두 표기하면서 자칫 영수증을 분실할 경우 범죄노출의 우려가 크다는 민원인의 제안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민원인이 제안한 내용에 대해 '전화 불친절'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민원 수용과정은 매우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첫째, 이 민원을 담당할 부서가 없다는 답변의 문제이다. 물론 이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민원을 전담해 처리하겠다는 제주도정이 일상적 민원을 상담할 직원 한명 없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째, 민원인과의 한참동안의 실랑이 끝에 나온 답변 또한 기가 막히다. "다른 동사무소에서도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다른 동사무소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우리 동사무소 문제가 아니다는 식으로 해서 민원을 회피하려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례', '규정'이라는 명분으로 한 민원묵살의 고질적 관행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민원인이 제기하고자 했던 것은 해당 동사무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행정 민원실 전반의 문제라면 민원을 접수받은 공무원은 응당 최소 '사소한 민원'이라 하더라도 이를 접수받고 검토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였어야 했다.
 
◇ 시민안전 CCTV 요청민원에, "경찰에 말해라"

이 사례 외에도 행정시에서 '인터넷신문고'를 통해 접수받는 공식 민원의 경우에도 '규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올라온 민원 중 제주시의 한 사례를 보자.

지난 5월 제주시청 대학로에서 폭행사건에 휘말렸던 20대 청년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사건이었음에도 '억울하게' 쌍방 폭행으로 몰렸다며, 대학로 거리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만큼 CCTV라도 설치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제주에 CCTV 통합관제센터가 개소했다고 하나, 효과적인 시민안전지킴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로와 같은 곳에 CCTV 설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답변은 "방범용 CCTV 설치 관련 사항은 제주지방경찰청으로 문의를 하셔야 할 사항으로써 저희 시에서는 처리에 어려움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민원인은 주요 밀집지역에 CCTV 설치를 통해 '안전도시' 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우리 소관 아니다"라는 허무한 답변만 돌아왔다.

그것도 '방범용'이란 수식어를 붙여서, 아예 검토조차 할 사안이 아니라는 방어벽까지 치고 있다.

현장에 한번 가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책상에 앉아 즉석 답변 글을 올렸음을 느끼게 한다. 이는 '손톱밑 가시 민원' 해결을 약속했던 모습이 결코 아니다.

◇ 수학여행단 민원 '답변', 그나마 공감받은 이유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달 서귀포시 인터넷신문고에 올라왔던 수학여행을 왔던 한 고교생이 제기한 모 지역 식당의 '불쾌감'과 식재료 부실 의심 민원.

이 민원이 접수되자, 서귀포시의 한 공무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확인된 내용을 매우 촘촘하게 기록한 후 답변글을 올렸다.

현장 확인내용이 실제 고교생이 겪었던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답변글을 통해 민원인이 궁금해 하는 내용에 대해 빠짐없이 모두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해당 업주의 입장까지 곁들었다.

앞선 'CCTV' 답변 글과는 상당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손톱 밑 가시'란 말이 한낱 구호성이나 전시성 표방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사소한 민원을 모두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예산이 수반되어서도 안되고, 업무분장이 돼 있는 범위내에서 행해지는 사안이어야 하고, 규정에 명시돼 있어야 하고, 전례 없는 일은 안되고 등등의 전제가 수없이 붙는다면 그게 무슨 '손톱밑 가시' 제거라 할 수 있겠나.

'손톱 밑 가시' 민원해결 시책을 왜 제시했는지, 지금이라도 공직사회가 여러 사례들을 공유하며 한번 깊이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헤드라인제주>

제주시 'CCTV 설치 민원' 답변 글. <헤드라인제주>
서귀포시 '음식점 민원' 답변 글.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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