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어린이의 꿈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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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어린이의 꿈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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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 <42>철부지 꿈

“볼 카운트 투 앤 투 제5구 쳤습니다. 3루 간을 꿰뚫은 안타, 2루 주자 홈인”

야구장에 들어서자, 라디오 중계로 흘러나온 중계 멘트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야구장 현장에선 중계를 들을 수가 없어 소형 라디오를 지참하고 갔다. 그야말로 몸을 아끼지 않고 파이팅 하는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에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이래서 프로인가 보다.

친구의 권유로 야구장을 찾아 TV에서나 볼 수 있는 프로야구 경기를 직접 보니 정말 흥미 그 자체였다. 비록 내가 응원하는 팀은 아니지만 눈앞에서 보니 TV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흥밋거리가 있었다. 바로 응원이었다. 응원단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눠준 막대풍선을 갖고 그야말로 날씬한 치어리더들의 율동에 맞춰 응원하다 보니 나 역시도 모르는 새 그 열기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 관심은 치어리더에게 더 있었던 걸까.

25년 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란 슬로건 아래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그 당시 나 역시도 프로야구 선수가 되리라는 생각으로 꿈을 키웠었다.

80년대 초여서 야구글러브(장갑) 가격이 비쌌지만 나는 부모님을 졸라 야구 글러브 2개와 테니스공을 살 수가 있었다.

스포츠 중에 야구를 제일 좋아하는 나는 학교 수업 중에도 언제면 끝나서 집에 가서 야구를 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숙제를 뒤로하고 야구 글러브와 공을 챙겨 들고는 옥상에 올라가 나 혼자만의 야구를 하였다.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지만 야구가 너무 좋았다.

옥상에는 시멘트로 된 크고 넓은 물탱크가 있었는데, 그 시멘트벽에 공을 튕겨 받아보기도 하고, 스트라이크 존을 그려놓고 던지기 연습을 하였다. 매일 하다 보니 던지는 공마다 스트라이크가 되었고, ‘나도 훌륭한 야구선수가 될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을 갖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구석, 온 동네 골목골목마다 온통 야구 열기가 한창이었다. 나는 주로 혼자일 때는 옥상에서, 친구들과 야구할 때는 집 앞 골목이 주무대였다.

한번은 친구와 골목에서 주고받고 던지기를 하다가 나보고 포수하라고 해서 포수하는데 친구가 던진 공이 바운드가 되면서 글러브를 벗어나 내 눈 바로 밑을 강타해 한 달 동안 고생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꿈을 키워가던 어느 날 방과 후, 반 친구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야구시합을 한다기에 포수만 할 테니 끼워달라고 했더니 친구들의 반응이 없었다.

야구는 투수가 던지면 타자가 공을 쳐서 1루, 2루 누상으로 달려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어서 외면당하고 말았다. 순간 친구들에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며 내 장애를 깨닫고는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어야 했고, 보면서 응원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고 부질없는 꿈을 가진 어린이었나 보다.

어느새 경기는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경기상황은 같이 간 친구가 응원하는 팀이 큰 스코어 차이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구의 표정이 굳어져 있어서 나 역시도 서먹했지만 친구는 이내 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야구경기가 끝날 무렵 제주의 밤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떠 있었고, 더운 낮을 식히는 밤공기가 너무 시원하고 상쾌해 내 안의 스트레스가 싹 풀렸다.

요즘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었다. 개막전 두 경기를 모두 승리했다. ‘올해에는 내가 응원하는 팀이 좋은 성적과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 수필가 겸 헤드라인제주 객원필진.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성복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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