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이사야 53장 5절 -
위 성경 구절을 묵상하다 보니 강정이 떠오른다. 2007년 5월경 기망과 편법에 의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기로 결정된 이래 마을공동체는 파괴되었고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권력의 폭압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강정은 찔림과 상함으로 눈물 흘리며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강정의 찔림은, 강정의 상함은 강정의 허물이나 잘못 때문이 아니다.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그래서 물화되어 타락된 세상이 강정을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부조리에 무감각해진 채 자기 욕심 채우는데 급급하며 일상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 강정이 찔리고 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정의 수난은 오히려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고 있다. 강정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고 강정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고 있다.
강정주민들과 강정지킴이들은 그동안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모진 시련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잡초처럼 끈질기게 싸워 왔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해군기지 반대를 뛰어넘어 전국의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모두가 하늘이다”를 외치며 생명평화의 새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 강정마을회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한창 진행 중인 「2012 생명평화대행진」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강동균 회장을 비롯한 강정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전국을 누비며 곳곳에서 억압받고 신음하는 하늘님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연대의 몸짓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의 변방 제주도 남쪽 끝의 작은 마을에서 비롯된 생명평화의 울림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는 강정으로 인해 모두가 하늘이 되는 생명평화의 새 세상의 싹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난 제주 역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강정의 경우처럼 제주에서 시작된 저항의 물결이 숭고한 가치로 승화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간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제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 셈이다. 강정은 제주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제주가 온누리를 비추는 등불이 되어가는 장엄한 신화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확신컨대, 강정해군기지 싸움은 제주민중의 가장 위대한 항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수난을 통해 오히려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는 강정의 모습은 우리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잠들었던 양심을 일깨우고 타락한 영혼을 정화시켜준다. 권력과 자본에 무력하게 순응하며 살아가던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보다 큰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준다.
그래서 강정이 지고 가는 십자가를 우리도 기꺼이 함께 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
요즘에야 강우일 주교님의 다음과 같은 예언의 심오한 뜻을 조금씩 깨우쳐 간다.
“강정아, 너는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너로부터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헤드라인제주>
<신용인 /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