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습지 먼물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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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습지 먼물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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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탐방 23] 제주포럼C 제주탐방 후기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은 지난 해 3월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곶자왈지대다. 조천-함덕 곶자왈지대의 선흘곶자왈에 포함되는 곳으로 동백나무가 많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백동산에는 암반지대 위에 약 500㎡, 평균 수심이 1~2m인 '먼물깍'이 있다. 동백동산의 대표적인 습지인 먼물깍은 곶자왈 안에서 흘러내린 물이 지대가 낮은 이곳에 고여 연못을 이룬 것이다.

과거 이 일대 주민들이 주변에 담장을 둘러 말이나 소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람사르습지로 등록돼 습지보전법에 따라 보호되고 있다. 동백동산 습지는 멸종위기종 1급인 매와 멸종위기종 2급인 순채, 팔색조, 비바리뱀, 삼광조, 벌매를 비롯해 원앙, 물장군, 물부추 등 멸종위기종들이 서식하고 있다.

동백동산의 상징인 습지 '먼물깍'. 꽃을 피운 순채가 가득 덮여있다.

먼물깍에는 택사, 실말, 마름, 송이고랭이, 좁은잎미꾸라지낚시, 물꼬리풀 등 수생식물들이 있고, 쇠백로, 해오라기, 유혈목이, 누룩뱀, 참개구리, 제주도롱뇽 등의 동물과, 소금쟁이, 장구애비, 물방개류와 물땡땡이류 등이 출현한다. 얼마 전까지 어리연꽃이 먼물깍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나 지금은 순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연의 치열한 경쟁과 공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채가 앞으로 어떤 식물에게 자리를 내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먼물깍을 가득 채운 순채가 꽃을 피웠다. 다양한 요리의 재료가 돼온 순채는 멸종위기종이다.

'즐거워라 반궁의 물가에서 순채를 캐네. 노나라 임금이 오시어 술을 드시네.' 순채는 시경(詩經)에도 등장할 만큼 고급 채소였던 모양이다. 국으로 끓인 순채탕, 오미자를 끓인 물에 순채와 꿀을 넣은 순채차, 어린 순을 데쳐 초장에 무친 순채회 외에도 순채죽, 순채화채 등 식용으로 사랑을 받았으나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동백동산은 먼물깍 외에도 크고 작은 습지가 많다. 선흘리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판형으로 굳어진 파호이호이, 그러니까 점성이 강한 빌레용암이 덮인 뒤 그 위에 물이 고인 곳이 많이 분포돼 있다. 빌레용암 아래에는 굴이 생기고 위에는 연못이 있는 특색을 보여준다.

동백동산에는 크고 작은 습지가 많다.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거나 마소를 먹이기도 했다.

'습지'는 민물이나 바닷물이 고여있거나 흐르는 지역을 말한다. 밀물 때 수심이 6m를 넘지 않는 해안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갯벌, 호수, 하천, 연못, 저수지, 늪, 오름 분화구 내 호수, 해안 조간대는 물론 염전과 논도 습지에 포함된다. 특히 한국의 서남해안은 지구상에서 5대 갯벌 중의 하나로 손꼽힐 만큼 규모가 큰 갯벌을 갖고 있지만 간척을 하거나 매립해 농경지와 주거지, 공단, 항만 배후지, 심지어 쓰레기 매립장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지금은 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동안 습지는 쓸모없는 땅, 지저분한 곳, 병원균의 온상 정도로 인식돼온 탓이다. 습지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습지를 어떤 용도로 활용할 것인가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습지는 생산력이 뛰어나 갯벌의 경우 1ha 당 9990달러로 농경지의 1백배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생물종 다양성이 매우 높은 서식처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습지는 생물에게 다양한 서식환경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유해물질을 흡수분해하고 정화하는 기능을 한다. 환경보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습지는 그래서 '지구의 콩팥'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습지가 훼손될 경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습지의 중요성은 1971년 이란의 작은 마을 람사르에서 물새와 습지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려 '람사르협약'이 채택되면서 국제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새만금 간척사업 논란을 거치면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게 됐다. 우리나라는 1997년 람사르협약에 가입해 강원도 인제군의 대암산 용늪을 시작으로, 경남 창녕의 우포늪 등 전국 17곳이 람사르습지로 등재됐다. 제주도에서는 물영아리, 물장오리, 1100고지에 이어 동백동산이 등록됐다.

동백동산은 습지보다는 희귀식물이 훨씬 일찍 인정받았다. 육박나무와 백서향을 비롯해 변산일엽, 골고사리, 새우란, 사철란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1971년 제주도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됐다. 이곳은 제주도에서 평지에 남아있는 가장 면적이 넓은 난대성 상록활엽수 천연림으로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빗죽이나무, 동백나무 등이 자생한다.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동산이란 이름이 붙었으나 지금은 그렇지만도 않다. 해설하는 정상배 박사.

몇년 전부터 이곳이 잘 알려지면서 탐방로가 만들어져 숲 탐사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울창한 천연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가노라면 동백동산의 식생은 물론 곶자왈의 다양한 특성들을 잘 볼 수 있다. 이날 해설을 맡은 정상배 박사는 동백동산 일대가 곶자왈과 숲, 동굴, 습지 등 다양한 자연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자연생태계 관찰과 환경교육, 휴양에도 최적지라고 강조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탐방로는 곶자왈의 다양한 자연조건들을 만나볼 수 있게 조성돼 있다.
바위 투성이 곶자왈에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한 나무들이 얼마쯤 자란 뒤에는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바위 틈으로 뿌리를 길게 내린 나무들은 열대우림의 나무뿌리 처럼 기괴한 모양을 한다.
일색고사리(위)와 콩짜개(아래). 동백동산의 식생은 다양하다.
용암이 깨지면서 만들어낸 숨골. 지하의 열과 습도를 내뿜어 곶자왈이 남방한계식물과 북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숨골을 타고 흘러든 빗물은 제주를 지하수의 보고로 만들었다.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지하의 공간은 굴이 된다. 이곳은 지상부가 무너져 내린 함몰지역.

동백동산 일대 선흘곶자왈에는 빌레용암이 흐르면서 곳곳에 동굴을 만들어냈다. 4·3 당시 선흘리 주민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가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된 뒤 주민들은 토벌대의 명령에 의해 해안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기르던 가축과 갓 추수한 곡식을 버려두고 갈 수 없었던 주민들은 천연동굴이 산재해 있는 선흘곶자왈로 찾아들었다.

반못굴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25명이 피신했으나 나흘 뒤 토벌대에 발각돼 18명은 곧바로 총살당하고 나머지는 함덕 대대본부로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다. 이튿날에는 목시물굴도 토벌대에 발각돼 피신해 있던 주민 40여명이 총살당했다.

사람들이 임시 피신처로 만든 듯한 구조물. 4·3 당시 주민들이 피신했던 곳은 아닌지…

습지를 포함해 다양한 자연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동백동산은 물장군, 왕잠자리 등 수서곤충류와 쇠살모사, 제주도롱뇽, 참개구리 등 양서류의 산란장소이기도 하고, 노루, 오소리 등 포유류와 동박새, 제주휘파람새, 큰오색딱따구리, 각종 여름철새와 겨울철새의 안전한 서식처이기도 하다. 희귀식물 뿐 아니라 동물 생태의 핵심적인 공간으로 중요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상배 박사는 람사르습지 등록과 관련해 철새도래지인 하도와 성산 일대의 갯벌이 보호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습지의 규모가 훨씬 작은 동백동산의 경우 산림청 소유로 지정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반면, 하도나 성산의 경우 주민들의 민원과 소유권 문제 때문에 습지 등록이 어려워 손 쉬운 쪽을 택한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우리는 동백동산을 떠나 퇴직교사 부부가 조성해놓은 꽃동산 '선흘꽃밭'을 방문했다. 제주의 신화에 등장하는 '서천꽃밭'을 재현해 제주의 신화를 알리고 싶은 생각에 400여종의 꽃을 심어 만든 꽃밭이다. 사계절 내내 꽃이 피는 동산. 매년 봄 친지들을 초청해 꽃잔치를 베풀 생각이었지만 지난 5월 첫 꽃축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3천여명이 몰려드는 바람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

 

제주신화의 서천꽃밭 꽃감관으로 떠난 아버지를 찾아가는 한락궁이 이야기가 곁들여진 선흘꽃밭

김형식 오순덕 선생 부부는 퇴직한 뒤 꽃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면서, 형편이 닿으면 상설 전시공간 정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에 기대어 사는 삶이 인간으로서 가장 의미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전시공간은 묻혀있는 예술작품들을 발굴해 전시할 수 있으면 제주의 문화수준을 높이는 일이 될 것이었다.

부부는 1천여평의 규모에, 동산 맛이 나도록 굴곡이 있고, 오래된 고목에다, 자연석 돌무더기가 있는 땅을 찾아나섰다. 10여년을 헤매 다녔지만 이런 조건에 맞는 땅을 찾지 못해 포기할 즈음, 면적만 기대보다 두배 넓고 나머지 조건을 모조리 충족시키는 땅이 나타났다. 감귤밭이었다. 주변의 삼나무를 베어내니 동백동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감귤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돌과 흙을 져 나르며 꽃동산을 조성하는 데는 6년의 세월이 걸렸다.

2천평의 동산 한 가운데 정자를 중심으로 4백여종의 꽃이 활짝 핀 선흘꽃밭.

이렇게 심고 가꾼 꽃들은 대부분 1년초들이어서 매년 꽃이 지고 나면 모두 뽑아내 다시 모종을 심어야 한다. 다년생 꽃들은 장미, 모란, 작약, 국화 등이 고작이니 매년 다른 꽃밭이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부부는 새벽 5시면 꽃밭으로 나가 끼니도 잊은 채 꽃밭을 가꾼다고 했다. 배 고픈 줄도 모르는 이유는 꽃밭 일이 엄청난 엔돌핀을 생성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행복한 선흘꽃밭의 '꽃감관' 부부가 내년 봄에는 수백종의 어떤 꽃들과 함께 서천꽃밭 신화의 두번째 이야기를 우리에게 내놓을지 기대해볼 일이다. <헤드라인제주>

<고희범(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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