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의 4.3 진혼곡..."하늘도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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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섬의 4.3 진혼곡..."하늘도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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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주기 4.3희생자 위령제, '강풍'에 실내 행사변경 봉행
4.3추모 발길..."이제 한(恨)을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소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수만명의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된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4.3.

64주기를 맞은 3일, 제주섬에는 4.3영령들을 추모하는 진혼곡이 울려퍼졌다.

오전 11시 제주4.3평화공원에 위치한 4.3평화기념관에서는 '제64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봉행됐다.

당초 평화공원 야외광장에서 엄수될 예정이던 위령제는 순간 초속 24m의 강풍이 불면서 사상 처음으로 실내 행사로 긴급 변경돼 진행됐다. 

야외광장에서 거행될 경우 1만명이 넘는 유족과 도민이 참여했으나, 수용인원이 몇백명에 불과한 실내로 장소를 변경하면서 대부분의 유족들은 위령제에 참석하지 못하고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

거센 바람 때문에, 4.3위령공원을 찾은 유족들은 위령제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위패봉안소를 찾아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제64주기 제주4.3희생자위령제에서 분향하고 있는 김황식 국무총리.<헤드라인제주>
제주4.3사건희생자위령제. 사진 왼쪽부터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김황식 국무총리, 우근민 제주지사. <헤드라인제주>
제64주기 제주43희생자위령제.<헤드라인제주>
제64주기 제주4.3희생자위령제에서 분향하고 있는 홍성수 제주4.3유족회장, 오충진 제주도의회 의장, 우근민 제주지사, 김영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사진 왼쪽부터).<헤드라인제주>
'제64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참석자들이 4.3영령들에 대한 헌화.분향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제64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과 도민들. <헤드라인제주>
'제64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과 도민들. <헤드라인제주>
제주4.3평화공원에 위치한 4.3평화기념관에서 '제64주년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위령제는 정부대표로 참석한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김형오 전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와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위령제는 △주요 기관장의 헌화 및 분향 △경과보고 △김영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의 고유문 낭독 △우근민 제주지사의 주제사 △오충진 제주도의회 의장의 추모사 △김황식 국무총리의 추도사 △추모시 낭송 △유족대표인 홍성수 제주4.3유족회장의 인사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먼저 김영훈 제주4.3평화재단의 고유문이 낭독됐다.

"영령님은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봄빛이 무르익으며 새싹이 돋아나듯, 역사의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스러졌던 임들의 고귀한 희생은 제주의 4월 햇살과 바람, 그리고 후손들의 애절한 염원을 받아 곱디고운 평화의 싹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모든 원한과 설움 내려놓으시고, 해원상생의 세상에서 부디부디 영면하소서"라며 영령들의 넋을 달랬다.

#우근민 지사 "국가추념일 지정, 4.3 추가진상조사 필요...4.3해결이 제주 자존 지키는 길"

이어 우근민 제주지사는 주제를 통해 "참혹하고 불행한 역사 앞에 스러져 간 4.3 영령들께 엄숙한 마음으로 삼가 명복을 빈다"며 4.3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우 지사는 "후유장애를 겪고 계시는 생존 희생자 여러분,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눈물이 마를 새 없는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현실을 지적했다.

우근민 제주지사. <헤드라인제주>
그는 "4.3해결을 위해 제주도민의 염원인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희생자 추가신고 등 4.3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데에도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채택돼 4.3진상규명에 크게 기여했지만,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많다"며 4.3희생자 추가 진상조사와 역사적 진실규명을 토대로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4.3현안의 완전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우 지사는 "앞으로 행방불명 실태, 마을별 피해살태, 연좌제 피해실태 및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한 더욱 체계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제주4.3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희생자와 유족과 역사에 죄스러움이 남지 않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4.3은 불행한 역사이지만, 평화와 인권을 중시해온 제주정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며 "제주4.3의 정신을 계승하고 4.3해결이 제주의 자존을 지켜나가는 길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오충진 제주도의회 의장은 추모사를 통해 먼저 "오늘도 우리는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제단에 향을 사르고 제를 올리고 있다"며 4.3영령들의 영면을 기원했다.

오 의장은 "4.3이 단순히 제주지역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었기에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정부차원의 후속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하고 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의 추가신고, 4.3피해자에 대한 예산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황식 총리 "4.3은 정부가 진상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건"

이어 김황식 국무총리는 추도사를 통해 "씻기지 않을 한(恨)을 세상에 남겨둔 채 유명을 달리하신 희생자 영전에 머리 숙여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면서 "또 긴 세월 동안 사회의 편견과 불명예에 떨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마저 가슴에 담아둬야 했던 유가족 여러분께도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여러분이 느끼기에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정부는 앞으로도 4.3 사건으로 희생되신 분들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에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특히 "4.3 사건은 정부가 진상을 확인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한 사건"이라며 "이 사건이 더 이상 소모적인 이념대립의 희생대 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그동안 보여주신 '상생과 화해'의 정신으로 저 넓은 대양, 그리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관문인 이곳 제주도를 '화합의 섬'으로 가꾸어 주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황식 국무총리. <헤드라인제주>

이어 제주4.3사건 64주기 전국 청소년 문예작품 시 부문 대상으로 선정된 김현경 학생(남녕고 1학년)의 추모시 '입속에 잠든 이'가 낭송됐다.

어금니를 쥐고 잠이 든 밤
출생부터 포로인 섬에서 꾸는 예지몽에 자꾸만 이가 빠졌다.
헛기침하며 일어나는 아침은 생사를 확인하는 오래된 버릇,
죄짓지 않고도 수감된 어금니의 세월은
헤아릴 수 있는 눈과 재회하기엔 불임의 터진, 목이 불온하다.

터진목에서 장성한 이촉이 차례로 허물어지는 총소리에
어미니의 입안은 유황냄새로 폐가가 되었다.
"속솜행 숨어 이시라, 대가 끊기면 끗난 거여"
동굴 속으로 밀어 놓은 못다 한 말의 껍질에 웅크린,
나는 모순이었나
빠방 소리에 경기든 치열은
터진목에 대문만 남겨 놓고 가계의 흔적을 지웠다.

어머니는 물질이 끝나면 인간어뢰가 숨겨져 있던 동굴에서
창백한 집게발만 내민 나를 꺼내고 소라를 씹어 주셨다
덜 여문 내 입에 넣어주시려다 그만, 어금니가 빠져버린 어머니
밀고자의 사구에 빠져 소라껍데기 위에 누워 고문 받다가 고기밥이 되셨다

굶주린 총구에 차라리 요절하고 싶었던
유년의 동굴 안은 귀를 가둔 만조처럼
사자(死者)의 눈발이 날리는, 내내 사월

입속에 자갈 구르는 소리가
돌아누워도 한숨으로 등을 겨누면
두더지처럼 빛을 피해 모래사장에서 헛묘를 찾는다
해무를 건너오시는 어머니,
그림자도 없이 홀로 자맥질하시는 시린 바다의 잇몸에
오래 씹은 이름 하나가, 젖니로 돋는다

홍성수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김황식 총리가 참석한데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홍 회장은 "다시는 영령들의 억울한 희생이 없게 옷깃을 여기며 다시는 이땅에 4.3같은 아픔이 없기를 바란다"며 "제주가 화해와 상생, 평화의 섬으로 우뚝서는데 앞장설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를 향해서는, "4.3의 국가추념일 지정, 유족 복지증진 등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드린다"며 4.3관련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했다.

위령제 의식이 마무리된 후에는 마지막 순서로 헌화 및 분향이 진행됐다. 하지만 실내에서 진행된 관계로, 김황식 총리와 우 지사 등 주요 인사에 한해서만 이뤄졌다. <헤드라인제주>

제64주기 제주4.3희생자위령제가 열린 3일 제주4.3평화공원에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헤드라인제주>
4.3평화공원에서 한 유족이 제를 지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강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 <헤드라인제주>
제64주기 4.3희생자위령제가 열리고 있는 제주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이 위패앞에서 오열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제64주기 4.3희생자위령제에서 분향하고 있는 유족들.<헤드라인제주>
제주4.3평화공원에 마련된 위패봉안소에서 절하고 있는 유족들.<헤드라인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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