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부부 농사꾼의 고민, "참 깝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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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부부 농사꾼의 고민, "참 깝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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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486세대' 대학커플 고광덕-부경미씨의 '농사 20년'
"요즘 농촌 정말 힘들어요"..."농사 지으랴, FTA도 막으러 달려가랴"

한미FTA협정 발효가 임박하면서 농민들의 항의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FTA 저지 집회나 문화제가 열릴 때마다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고광덕씨(42)와 부경미씨(42).

제주시 구좌읍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을 하는 동갑네기 부부로, 고광덕씨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을 지냈고, 부경미씨는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맹에서 활동하고 있다.

며칠 전 제주시청 앞에서 있었던 한미FTA 저지 문화제에 참가한 고광덕, 부경미 부부. <헤드라인제주>

지난해 한미FTA 협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때부터는 이들 부부는 더욱 바빠졌다. 농사일을 하랴, 농민문제 현장을 가랴 눈코뜰새가 없다.

여기에 무 등 월동채소류 유통처리난을 비롯해 농민문제가 터지면 부부 중 한명은 현장으로 곧장 달려가곤 한다.

이들 부부가 농사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대학을 막 졸업할 즈음인 1993년.

농사일을 시작한 지 이제 꼭 20년이 지났다.

동네에서는 이미 후덕하고 부지런한 젊은 농사꾼이란 말을 듣지만, 20년전만 하더라도 이들 부부가 농사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둘다 제주대학교 출신으로, 고광덕씨는 해양과학을, 부경미씨는 사학을 전공했다.

당시 대학 졸업하면서 보통 기업체나 사무직 직업쪽으로 진로를 택하곤 했는데, 둘다 전공과는 무관한 '농업'을 직업으로 택했다.

그것도 당시에는 새로운 품목의 전문농업도 아닌 일반적인 밭작물 농사로 시작했기에 마을 어른들의 의아스러운 눈길은 더했다고 한다.

# 대학졸업 앞두고, 왜 '농사' 택했을까

이들은 왜 농사에 뛰어들었을까.

한미FTA 집회현장에서 만난 후, 이들을 다시 만나 그 사정을 들어봤다.

이들 부부가 처음 농사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대학졸업을 앞둔 1992년.

당시 둘다 대학내에서는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학생운동권이었다. 고씨는 제주대 총학생회와 제총협 투쟁국장을 맡고 있었고, 부인 경미씨 역시 투쟁국에서 활동했다.

그해 고광덕씨는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 경찰에 체포돼 투옥됐다.

이 때 그의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결심이 바뀌었다. '486세대'의 한결같은 고민이었던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그 역시 치열하게 고민해 왔던 것이다.

"졸업 후 평범하게 전공을 살려 해양과학 분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재야단체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인지 고민을 무척 많이 했죠. 그런데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도와 해온 농사가 정말 좋더라구요."

출소 후 그의 결심은 곧바로 실행됐다. 졸업을 하고 시작하더라도 늦지 않았을 터인데, 1년치의 졸업학점을 남긴채 그는 농사를 짓겠다며 고향으로 향했다.

학위를 받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졸업장'은 그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한 듯 했다.

마음 속은 온통 시국문제에 고민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설령 졸업장 받더라도 진로는 뻔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당시 486세대의 졸업 후 투신은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재야운동 등이 주를 이뤘는데, 그는 이중 '농민'을 택한 것이다.

그의 '농사 결심'에 당시 학내 커플이었던 경미씨도 '같은 길'을 가겠다고 했다.

다만 합류시점이 조금 늦어졌다. 경미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말쯤 광덕씨의 고향으로 가 함께 농사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 좋아할 부모가 어디있겠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 나온 사람이 농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도 없었고, 속된 말로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 선택이 농사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농사짓겠다며 왔으니..."

#"처음엔 정말 좋았어요. 며칠 일해서 15만원 받았는데...적금 들까나?"

농사를 시작한 이들의 첫 재배품목은 콩과 감자.

많은 돈은 벌겠다는 욕심 자체가 없이, 농사일이 좋다라는 소박함으로 시작한 농사였기에 첫 시작은 '즐거움'이 매우 컸다.

경미씨는 첫 애를 임신했을 때 기뻤던 일을 지금도 기분좋게 들려준다.

"애 아빠가 처음 농사일을 시작하고 이웃에서 경운기로 당근밭을 갈아달라고 해서 며칠 일해주고 왔는데, 하루에 2-3만원씩 해서 며칠 만에 15만원 정도 들어왔죠. 그때 우리에게는 그게 너무 많아서 적금을 들어야 하나 하고 고민할때도 있었어요."

이 말을 하면서, 경미씨는 그 때 일이 다시 떠오르는지 여러번 웃었다.

광덕씨 역시 처음 농사일은 정말 좋았다고 했다. 소규모로 밭작물을 재배하는 일이었지만, 몸과 마음은 편했다고 했다.

"그 때(1994년 전후)만 하더라도 힘이 덜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농사이고, 또 젊으니까 여러 농기계를 갖춰 할 수 있으니까 한해 한해 농사 규모도 늘려갈 수 있었죠."

한미FTA 저지를 위한 농민집회에 참가한 고광덕씨. 그는 무슨 생각인가에 골똘히 잠겨있었다. <헤드라인제주>
며칠전 제주시청 앞에서 열렸던 한미FTA저지 농민 집회. <헤드라인제주>
부경미씨가 하우스시설에서 일을 하다 잠시 멈추고, 요즘 농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태풍 피해 농사 연거푸 망치면서 절망도 했죠"

처음 몇년은 농사가 순탄했다. 그러나 1999년쯤 부터인가 갑자기 힘들어졌다.

"아마 그때부터 해서 태풍이 유난히 많았다. 애써 지은 농사가 태풍 한방에 다 날라갔으니. 한두번이 아니었다."

태풍 피해가 연이어 겹치기 시작하면서 때로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고 했다.

"농사 한두번 망치는 문제가 아니나, 그럴때마다 당장 갚아야 하는 영농자금 등의 부채 이자 상환이 큰 걱정이었죠."

광덕씨는 농민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바로 '부채' 문제라고 했다.

"농사짓는 사람치고 은행이나 금고에 돈 안끌어다 쓰는 사람 있나. 영농자금 대출받고 그 빚의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농사 한번 치면 이자 물기도 허덕거린다. 결국 다른데서 돈을 다시 꾸어서 그 이자 물고, 새로 돈을 꾼 곳에 이자를 물곤 하다보면 빚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죠."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갈수록 농사짓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뭔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경미씨는 마을에서 이사무장을 맡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부가 5년전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한 것이 바로 지금의 1000평 규모의 깻잎 시설재배다. 경미씨도 이사무장 일을 그만두고 이때부터 하우스 시설의 깻잎 농사에 올인했다.

경미씨는 "다른 밭작물과 달리 시설채소 재배는 안정적인 편"이라며 "눈이나 비가 내리더라도 매일같이 가서 일을 해야 하지만, 자연재해에 대한 걱정이 덜하고, 또 자기가 일한 만큼 어느정도의 수입은 나오니 이전 농사보다는 훨씬 좋다"고 말했다.

시설채소와 함께 무 등 밭작물 농사도 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밭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러한 부지런함 때문에 마을에서는 이들 부부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믿음도 크다. 이웃의 일도 척척 알아서 도와주는 '싹싹한 젊은 농사꾼'으로 정평이 나있다.

#"요즘 농촌 정말 힘들어요. 정말 깝깝하죠"

그러나 시설채소 재배를 시작하면서 큰 돈은 벌지 못하지만 농촌현실은 그들을 편하게 놔두질 않는다.

지금은 월동 무 처리난 때문에 근심이 크다. 얼마전 성산 농경지에서 농민들이 애써 재배한 무를 갈아엎는 현장에 광덕씨도 갔었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에도 그의 눈시울 붉힌 얼굴이 잡혔다.

"정말 답답하죠. 깝깝하기도 하구요. 한미FTA에도, 이제 곧 한중FTA까지 하게 되면 제주에서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지. 월동채소는 연례행사처럼 처리난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지..."

일을 하는 중간중간 농민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달려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 농민들이 답답한 마음에 무슨 농사를 해볼까 고민도 많이 하죠. 품목전환 고민해도 답이 없어요. 마땅히 지을만한 농사거리를 못찾는 거죠."
 
그는 "요즘 농촌 정말 많이 힘들다. 비료값이나 기름값, 인건비, 종자비 모두 계속해서 오르는데, 농산물은 그대로이거나 들쭉날쭉 가격이 불안정하니, 마음 편히 농사 한번 지어보는 해가 언제 있을런지"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당국에서는 책상에 앉아 품목전환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물론 그말도 맞죠. 작목반이나 법인, 친환경농사다 하면서 유통방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죠. 그러나 작목전환이 그렇게 말처럼 쉬워요? 토양에 맞는 작물이 있는 법인데."

정부의 영농 정책자금에 대해서도 '현실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 정책자금  나온다고 해도 받지도 못하는 농가가 태반이다. 왜냐하면 신용담보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제주도에서 발표할 때는 마치 큰 생색 내는것처럼 하면서 자금지원계획을 발표하지만, 이 자금이 실제 농가로 지원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신용담보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자기 땅에 농사를 짓는 사람도 이미 담보대출을 받았다면 받기 어렵죠."

광덕씨와 경미씨는 당국이 그럴듯하게 포장해 발표하는 정책적 지원이란 내용물이 농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하우스시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 전화를 받으며 표정이 굳어진 고광덕씨. 이날 비가 내렸으나, 그 시각 그의 또다른 무 밭에서 인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작업 중단여부를 놓고 속상해했다. <헤드라인제주>

#"농사도 지어야 하고, FTA도 막아야 하고, 요즘 정신없네요"

수많은 농민문제 속에 이번 한미FTA 협정이나 곧이어 닥칠 한중FTA는 이들을 더욱 걱정으로 몰아넣고 있다.

"불을 보듯 뻔한거 아닙니까? 한미FTA 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곳이 바로 감귤산업에 직격탄을 맞게 될 제주인데, 농민들의 농성조차도 제대로 못하게 천막을 짓밟고 하는 현실이 말이 됩니까?"

이들 부부는 한미FTA나 한중FTA를 어쨌든 저지시켜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FTA가 제주 농업을 극한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 뻔한 현실적 고민이 크다.

여기에 제주도당국의 일련의 대응도 못마땅하다. 지난해 초겨울, 제주도청 앞에서 농민들이 FTA 반대 농성을 하려 할 때 공무원들이 천막을 강제철거하는 것도 모자로 밤샘 노숙투쟁을 하는 농민들의 '방석'까지도 빼앗아 갔던 기억 때문이다.

얼마전에는 정부의 FTA 추가대책 설명회 때 경찰을 동원해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은 기억,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다할 대책 하나 없이 항의하는 농민들만 격리시켜 놓으려는 듯한 대응에 단단히 화가 나 있다.

웬만한 바쁜 일이 없으면 FTA 반대집회 현장에 곧장 달려가는 이들 부부.

"농사도 지어야 하고, FTA도 막아야 하고, 정말 요즘 정신 없습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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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2012-02-20 23:13:33
금방 쓴 댓글이 사라 졌네..허허 . 정말 상인 따가리 인데.. 사정 잘 알고 글 도 씁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소문대로 명작스토리일세 2012-02-14 00:44:02
광덕아 경미야. 가는길 험난해도 그런 마음으로 살다보면 좋은날 올거다. 힘내서 잘 살암시라
새날이 올때까정!


음... 2012-02-13 10:31:37
스토리 참 좋습네다
광덕 경미님 부럽구먼유^^
FTA반대 투쟁 앞으로 쭉 전지!!

영웅들 2012-02-12 23:33:43
우리의 영웅둘 (119.XXX.XXX.250)
2012-02-12 09: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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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근민 제주도지사-업적은 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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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동주 관광문화국장
그외에도 많은 영웅이 있으나 포함되지 않았다고 서운해 말길
각 게시판에 많이 퍼 날라주세요 우리의 영웅들 홍보해야 되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