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차 외면해도, '보리농사' 포기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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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차 외면해도, '보리농사' 포기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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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올공동체 보리농사 백경호씨, 왜 '보리'에 집착하나
'6만평' 재배..."상황 어려워도 '보리' 해야 하는 이유 있죠"

어려운 시절에는 긴요한 식량작물이었지만, 지금은 정부조차 외면하는 보리.

5년 전부터 보리재배 면적을 축소 조정해온 정부는 올해부터는 보리 정부수매를 전면 중단키로 했다.

면적도  5년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을 뿐만 아니라, 수매제도 마저 폐지키로 하면서 보리농사는 더욱 힘들어진 상황이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5일 '정월대보름 보리밟기'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보리밟기 행사가 열린 곳은 올해 20만㎡(약 6만평) 규모의 보리가 재배되고 있는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지역.

한 마을에서 6만평의 보리농사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특히나 요즘과 같이 보리농사가 더욱 힘들어진 시점에서는 의아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이곳의 보리농사는 지역농업의 새로운 틀과 변화를 추구하고, 지역순환형 친환경 경축(耕畜)농업을 추구하는 생산자 모임인 '한올공동체'에서 주도하고 있다.

한올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리재배 농가 백경호씨(51.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그는 정부의 '거꾸로 가는 정책' 속에서도 보리농사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정부의 보리 수매제도 폐지가 농업생산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에 대한 대안의 성격이고, 두번째는 앞으로 농업구조를 '지역순환농업'으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 측면이다.

보리농사를 하고 있는 한올공동체의 백경호씨 <헤드라인제주>

#"정부 보리 수매제 폐지는 '답'이 될 수 없죠"

무엇보다 정부의 보리수매 중단에 대해 그는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귀중한 잡곡 '식량작물'에 대한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농림수산식품부는 보리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년전인 2006년에 보리재배 면적 감축과, 보리 수매가의 2012년 전면 중단이란 계획을 마련해 이미 실행해 왔다.

이 결과 2006년 당시 3만3000ha에 달하던 재배면적은 절반에 가까운 49% 정도 축소됐다. 재배되는 보리의 양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수매해 가격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올해부터는 시장원리에 따라 시장가격과 매입가격을 맞춰 나간다는 구상이다.

백경호씨는 이러한 정부의 보리 수매 폐지가 불러올 앞으로의 '작물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수매 중단으로 인해 보리를 재배해왔던 농가에서 보리 대신 다른 작물을 지으려 고민한다면, 대체작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뻔한 겁니다. 무와 같은 월동 채소류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죠. 그렇게 되면 지금 과잉생산으로 유통처리난을 겪는 월동무 파동과 같은 악순환은 계속되겠죠."

그는 "정부의 수매제 폐지는 '시장원리' 운운하지만, 알고보면 기초식량작물을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보리재배 농가들에게 너희들이 알아서 먹고 살아라 하며 정책을 포기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나"라며 분개해 했다.

수매제 중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뻔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농가들 마저 스스로 포기해버린다면 농업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포기를 못하는 거죠. 우리라도 뜻있는 농가들과 서로 얘기를 해서 보리농사를 계속 지을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역설하고 나서야죠."

그는 정부수매제 포기는 절대 '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초식량작물의 정부수매는 반드시 이행돼야 하며, 그 속에서 대안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지역순환농업, '답'은 이걸로 찾아가야죠"

두번째 이유로 제시한 친환경 지역순환농업의 실현은 말이 좀 어렵게 다가왔다.

그는 '한올공동체'라는 생산자 모임이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지역순환농업' 때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외국산 수입사료와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유기농업과 유기 한우사육이 결합된 체제의 '경축(耕畜) 농업'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들어 친환경 유기농업을 하게 되면 볏짚 등 농업 부산물들이나 한살림 생협의 두부가공공장에서 나오는 비지 등을 사료로 활용해 한우를 키우게 되고, 한우 사육과정에서 나오는 소똥을 다시 지역의 밭농사 퇴비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해 유기적인 지역순환 고리를 완성한다는 의미죠."

그가 설명하는 이 일련의 순환과정의 경축농법이 바로 '지역순환농업'이다.

한올공동체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농업모델도 이 방식이다. 그들이 이번에 재배한 6만평의 보리는 '찰보리'로 모두 친환경 유기농법에 의해 재배된다.

"이런 방식으로 재배되고 사육된 보리나 한우는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가격은 높지만, 그만한 가치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는 "이 농법은 쇠똥에서 부터 볏짚 등 순환의 고리가 이어져, 버리는 것이 없는 생태 농업"이라며 "지속 가능한 농업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이런 것은 꼭 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양질의 유기 한우를 생산하고, 양질의 보리를 생산함 속에서 소비자에게도 많은 신뢰를 주게돼 결국에는 소비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순환농업을 해야 생산자 입장에서는 생산비를 일정정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소비자들에게는 안전한 먹거리의 신뢰를 높이는 윈윈의 농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두번째 이유로 인해 '6만평 보리농사'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보리농사를 하고 있는 한올공동체의 백경호씨 <헤드라인제주>
정월대보름 보리밟기 행사. 보리를 생산하는 재배농가, 그리고 도시 소비자들이 함께 참여해 마련된 행사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게 했다. <헤드라인제주>
백경호씨가 지난 5일 '정월대보름 보리밟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에게 보리농사를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그많은 보리쌀, 어떻게 다 처리될까?

그럼,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인 6만평에서 재배된 보리는 정부 수매없이 어떻게 판로를 찾아 나설까.

이 물음에 백경호씨는 전혀 걱정없다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보리의 경우 농약과 비료 등을 쓰지않는 '친환경 유기재배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정부수매와는 상관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유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다.

'보리밟기' 행사를 공동으로 기획한 한살림 생협과 이미 약정해 재배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살림 생협의 전국 소비자들이 약 3만가구에 이르는데, 잡곡용으로 구입하겠다고 이미 약정된 상태에서 재배되고 있기 때문에 판로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가격도 오히려 좋다고 한다. 지난해 정부수매가가 40kg들이 한 가마당 보통 3만원 선이었는데, 이곳에서 재배된 보리의 경우 보통 6만원 선에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일반보리에 비해 비싸지만, 믿을 수 있는 유기인증 재배로 생산된 찰보리라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매우 높다고 한다.

정부는 외면을 했지만, 한올공동체의 농가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 그 길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젠 '지역순환농업' 모델로 희망찾기 해야죠"

정월대보름 보리밟기 행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친환경 순환농업을 하는 생산자, 그리고 바른 먹거리와 생명살림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이 함께 모여 지속가능한 농업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백경호씨는 "유독 보리 정부수매제 폐지 문제 뿐만 아니라, 한미FTA협정 등을 놓고 볼 때 제주 1차산업은 정말 큰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정부는 엉뚱한 정책으로 농민들의 뜻에 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지역순환농업'의 모델이 제주에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많은 농업인, 유통인, 생산자, 소비자 등과 지속적인 '희망농업 찾기'를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20대 후반 때인 1989년 신촌리 대섬유원지 개발 반대대책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농사를 처음 시작했는데, 배추와 수박, 참외 등을 하다가 지금은 보리를 중심으로 해 대파와 콩, 무 등을 재배하고 있다.

1991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조천농민회 초대회장을 맡아 농민운동에 앞장서 왔고, 친환경 유기농 재배로 전면 전환하면서 흙살림제주도연합회장, 생드르 영농조합 대표, 친환경단체협의회 대표 등을 역임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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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2012-02-07 18:35:10 | 122.***.***.2
제주지역에서 소비자 직거래 방안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저희도 많이 먹도록 할게요 ^6

doll 2012-02-07 15:25:34 | 119.***.***.126
훌륭하심.제주야말로 순환농업의 메카가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친환경농산물의
소비자는 이미 충분합니다 현재활동하시는 역량으로도 신뢰가갑니다 육지의
꾸러미프로젝트같은 마케팅을 제안합니다 신규회원과 주변에 품목별 전담으로...제주대표 농산꾼입니다. 화이팅.


음.... 2012-02-06 17:17:53 | 112.***.***.11
백경호님, 대단헙니다. 소신과 뚝심 대단허고, 마인드가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