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밭 갈아엎는 농민들..."농사 잘 짓고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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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밭 갈아엎는 농민들..."농사 잘 짓고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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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월동무' 유통대란, 농민들은 왜 무밭 갈아 엎었나
"가격폭락에 수확하면 되레 손해"...'산지폐기' 확대 촉구

날씨도 따뜻하고 비도 적당히 내려 준 올해 월동무는 유난히 생육이 좋았다. 수분도 많고 맛도 좋아 농민들의 기대감을 더해갔다.

그러나, 막상 수확철이 다가오니 기껏 길러놓은 무를 재배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년 같았으면 출하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임에도 농민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부의 농업 정책이 애먹은 제주지역의 농민들을 벼랑끝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유통문제로 가격이 폭락한 월동무밭을 농민들이 트랙터를 동원해 갈아엎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트랙터를 이용해 월동무밭을 갈아엎는 것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농민들. <헤드라인제주>
지난해 월동무의 가격이 높게 형성되자 올해 육지부의 무 재배면적이 크게 증가했다. 따뜻한 날씨로 인해 아직까지도 육지부의 물량이 다량으로 출하되고 있다.

결국 월동무의 가격은 폭락했고, 제주의 농민들은 무를 수확해봤자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제 시기에 출하되지 못하고 있는 무들은 멀쩡한 밭에서 썪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22일 오전 서귀포시 표선면 소재 월동무 밭. 농민들은 약 1만㎡(3000평)의 월동무 밭을 그대로 갈아버리면서 기댈 곳 없는 상황을 항변했다.

"마음이 많이 아프죠. 보통 마음이 아니에요. 자식을 잃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5대의 트랙터가 휘저은 무밭은 삽시간에 쑥대밭이 되어갔다. 농민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현장의 일부 농민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 해가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생겼습니다. 심정이 어떠냐니요."

직접 땀을 흘려가며 애지중지 기른 무가 쓸리는 광경 앞에 선 그들에게 심경이 어떻냐는 질문은 씁쓸함을 더 할 뿐이었다.

제주의 월동무는 제주의 천연적 기후와 환경만이 재배할 수 있는 대표적인 월동채소다.

특히 제주 동부지역 농민들의 주요 소득 작물로 꼽혀왔다. 동부지역의 경우 토양의 특성과 재배작형, 고령화 등의 이유로 2모작 농사는 고사하고 1년 농사를 월동무에 의존하고 있다.

제주의 농업은 감귤과 월동무로 먹고산다는 소리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들이닥친 유통대란은 평생을 농사만 지어 온 농민들을 코너로 몰아세웠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육지부에서도 월동무가 출하된 탓도 컸다. 무 농사를 권장한 정부의 농업정책도 현 상황을 부추겼다.

농민들은 지난해 무 가격이 높게 형성되자 행정이 무 농사를 권장했다고 주장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정책으로 인해 유통비를 배 이상 들여야하는 제주의 농가들만 울상을 짓게됐다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무 가격이 높게 형성될때는 농산물이 물가인상의 주범이라며 무차별적으로 가격을 깎아놓은 행정은 막상 가격이 폭락하자 시장에서 가격이 호전되기만을 방관하는 모습이다.

결국 월동무 재배 농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인건비, 유통비 등을 생각할때 재배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유통문제로 가격이 폭락한 월동무밭을 농민들이 트랙터를 동원해 갈아엎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유통문제로 가격이 폭락한 월동무밭을 농민들이 트랙터를 동원해 갈아엎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유통문제로 가격이 폭락한 월동무밭을 농민들이 트랙터를 동원해 갈아엎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작년에는 20kg들이 한 봉지에 5000원 정도에 팔렸어요. 올해는 1000원을 받으면 잘 나올까 모르겠네요." 일대에서 무 농사를 짓고있다는 강병무씨(55)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치상으로 전국 월동무의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약 19%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가격의 하락세는 이에 비할 바 아니었다. 절반의 절반도 채 안되는 출하가격에 손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파종하고 밭갈던 수고는 둘째고, 지금은 재배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게 생겼어요. 무 수확하는 인건비로 1인 5만5000원정도에 50명을 고용해야하는데, 재배한 무를 팔아도 본전도 못찾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씨는 마음속에 깊이 삼켜왔던 행정에 대한 울분을 토해냈다. "멋대로 농산물 가격을 억제하더니 지금 정부가 하는게 뭡니까. 그야말로 농민들을 우롱하고 말살시키려는 정책이 아닙니까."

고광덕씨(41)도 아픈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품질이 나빠서 출하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잘 자란 무를 폐기하려니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겨울철 수확 하나만 보고 길러왔는데......"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농민들은 멀쩡히 버리게 된 월동무 밭에 대한 산지폐기를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대책을 마련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동부지역 농민들이 산지폐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이와 연계해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의장 김장택)은 이날 오전 11시 표선면 성읍리에 위치한 한 무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월동채소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제주도와 농협이 월동무 가격에 대한 대책회의를 했지만 전수조사만 진행하고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데 따른 것이다.

현재 산지폐기의 범위는 농협과 계약을 한 농가의 물량으로 제한하고 있다. 농민들은 이를 '생색내기'라고 비난하며 일반 농가에 대한 산지폐기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름만 늘어가는 농민들은 이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손해를 안 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적자야 어쩔수 없다하지만 적어도 내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는 조치해줘야죠."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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