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률아! 4.3영령들은 왜 너를 부르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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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률아! 4.3영령들은 왜 너를 부르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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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의 시(詩)로 전하는 세상 이야기] <47>끝나지 않은 세월, 그 이후

경률아!
네가 간 지 이제 6년이 지났다. 지난 11월 25일날, 너의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에 출연했던 제주4・3유족회 양영호 김두연 어르신들과, 영화를 하는 너의 후배 고혁진과 오경헌 등과 함께 너의 얼굴을 보고 왔다. 제상에 올려진 너의 영정 사진은 옛날 모습 그대로 소박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또 울컥 눈물이 나서 쓸데없이 소줏잔만 더 탐하고 말았다.

6년 전, 그날, 2005년 12월 2일, 너의 생일날, 몹시도 추웠던 그날, 너는 추운 몸으로 그렇게 서럽게 홀연히 가버렸다. 너를 땅에 묻는 그날 아침도 눈발이 날리고 살을 도려내듯이 추워서, 영화평론가 양윤모 형은 ‘우리 경률이 추우키여….’라며 입었던 옷과 목도리를 너에게 덮어주기도 하였다. 나는 전날 밤 추모시를 구상하면서 처음 생각나는 것이 4・3영령들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으로, 장지로 가는 차 안에서 쓰고 낭송한 것이 바로 다음의 시다.

무사 불릅디가
무신 경 헐 말이 많읍디가
아직 살아 헐 일이 많은데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인데
무신 경 골을 말이 하그네
무신 경 외로와그네
젊은 아이 말벗 허젠 데려 갑디가
살아 백년
죽어 천년 아니우꽈
아직 살아 반 백년 아니고
아직 죽어 반 천년 못 채워수다
지가 산 인생
지가 정한 평생
꼭 이만헌 길이로 살게 허지 안해수꽈
무사 그만헌 길이로 살게 허지 안해수꽈
무신 미련
무신 원망 그리 하그네
오늘은 추운 날
영 언 아이 데려가수꽈
- 졸시, 「오늘 벗 하나, 4・3 영령들 곁으로 보내며」 부분

시를 낭송하면서, 아니, 낭송하기 전부터 절대로 울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무사 불릅디가’라고 첫 행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이 나서 낭송하는 내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너를 차가운 땅에 묻고, 와산 굿당에서 이정자 심방의 집전으로 귀양풀이를 할 때에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4・3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만들었다고, 4・3영령들이 너를 부르신 것일까. 왜, 더 잘 만들라고 기회를 더 주시지 않고, ‘젊은 아이’ 말 벗 하려고 데려가’ 버린 것인지 나는 지금도 영령들의 뜻을 올곧게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경률아. 너의 영화 얘기를 해야겠다. 4・3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을 만들기 전에 너는 ‘설문대할망, 큰 솥에 빠져죽다’라는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너는 나에게 영화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작품을 좀 다듬어달라고 했었다. 그때는 작품의 몇 몇 장면에 대해서 얄팍한 조언을 해주었지만, 정작 작품으로 만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너는, 정말로 놀라운, 무대뽀의 추진력으로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작품보다는, 너의 그 엄청난 열정의, 저돌적인 추진력이 나에게 새삼 괄목상대하게 다가왔다.

4・3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 -
어쩌면 너의 죽음을 불러왔을, 너의 모든 것인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기어이 해내고야마는 너의 추진력에 또 한번 압도당하고 말았다. 지금도 나는, ‘최초의’ 4・3장편영화라는 그, ‘최초’에 방점을 찍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최초’라는 말을 내새워 작품의 내용이나 수준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짙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최초’라는 의미를 제대로 쓰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 ‘끝나지 않은 세월’은 제주도민이 주체가 되어 만든 ‘최초’의 영화이자, 4・3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다룬 ‘최초’의 4・3장편영화라고.

“사실 ‘끝나지 않은 세월’은 부족하고 불편하고 답답한 영화이다. 누구 말마따나 조악하기도 하다. 어떤 이는 김경률 감독이 항상 아마추어 정신상태로만 일을 진행한다고 후원을 해주지도 않고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 항상 대책없이 일만 벌 인다고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다들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정공철 님의 말, ‘김경률이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겁 없이 4・3영화를 찍을 수 있겠느냐!’고 한 말이 생각난다. 누구나 이것저것 재면서 조건 다 갖춰지면 멋지게 시작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사람들은 많다. 경률이형은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영화 하나를 만들어놓고 갔다. 돈 벌 수 있는 영화도 아니고, 뛰어난 예술영화도 아니지만 영화를 통해서 묻고 싶었던 인간의 양심의 문제를 죽음으로써 되묻고 있다.”
-너의 벗 고혁진의 회고담, ‘제주문화예술’지 2005년 12월호 중에서

영화를 만들 예산이 부족해서 너는 여러 번 제주도청에 나를 찾아왔었다. 그때 나는, 다른 4・3영화 작업을 하는 중이어서, 너를 전적으로 돕지 못했다. ‘기획이나 대본, 배우나 스탭 등 아무 거라도 해줍서!’라는 너의 간절한 요구를 나는 하나도 들어주지 못했다. 그러기를 몇 달 후, 너는 그 끝간데 없는 열정과 고집으로 기어이 영화를 만들어냈지만, 나는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고지식한 순수절정의 불꽃으로 살다간 너에 비하면 나의 삶은 초라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지금도 너를 데려간 영령들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땅히 데려가야 할 사람들은 놔두고, 왜 일을 더 해야 할 사람을 데려간 것인지, 나는 아직도 진정, 영령들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네가 남겨두고 간 유산은 어차피 우리의 몫이다. 이제 눈물을 닦고 앞길로 가야한다. 너나 나나 머리 긁적이지 않고 당당하게 두 손 마주 잡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당당히 살아야 한다.

2010년 12월 8일
경훈 씀

추신,

지난 달 25일 너의 뒤를 이어 오멸 감독과 고혁진 프로듀서가 제주4.3 장편영화 ‘꿀꿀꿀’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이 영화는 너의 유작遺作 ‘끝나지 않은 세월’의 정신을 계승한 작품이다. 총제작자로 너의 이름이 올라 있다. 오멸 감독은 너의 ‘망치’정신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망치’ 하나면 된다는 그 순수한 뚝심 말이다.
이번엔 가능하면 나도 어떤 방법으로든 참여할 것이다. 배우로 써주면 좋겠지만, 나의 연기가 워낙 일천한지라 뒤에서 조용히 돕는 정도라도 해야겠다. 너와 항상 함께 한다는 그 마음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걸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심 기대 많이 해도 좋다. 잘 지내길 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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