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도 '문제점' 인정한 일제고사...이젠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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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도 '문제점' 인정한 일제고사...이젠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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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 강봉수 제주대 교수 / 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
제학력갖추기평가에 대한 두 설문결과를 보는 관견(管見)

강봉수 제주대 교수/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헤드라인제주>
지난 15일 올해 마지막 제학력갖추기평가가 끝났다. 제학력갖추기평가는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에 더하여 제주교육과학연구원이 주관 하에 제주의 초중학생만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시험이다.

두 평가는 학업성취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시험이라는 점에서 평가목적이 같고, 학생전수를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라는 점에서 평가방식도 같다. 그러니까 제주의 초중학생들은 같은 취지의 시험을 일년에 3번 치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진단평가가 있고 전국연합학력평가도 있다. 또한 학교별로 수행평가가 있을 것이고, 중간과 기말에 치러지는 총괄평가도 있겠다. 전국적 현상인 고등학생들이 치르는 시험들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지만, 그야말로 제주의 초중생들은 시험에 찌든 학습노예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교육활동에서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평가란 학생들의 학력을 진단하고 성취수준을 가늠하여 그들의 지적ㆍ인성적 성장을 돕기 위한 것이며, 한편으로 교사의 교수-학습활동의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도 제주의 제학력갖추기평가도 이러한 평가목적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과연 이 시험들이 실제로 평가목적을 달성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나는 그동안 잦은 일제고사식 평가가 목적달성보다는 오히려 교육과정의 파행을 가져오고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를 피곤하게 하는 나쁜 평가라고 지적해왔다.

마침 최근에 이와 관련하여 두 기관의 설문조사결과가 나왔다.

하나는 제주교육과학연구원(2011. 9)이 실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교조제주지부(2011. 11)가 수행한 것이다. 조사의 방법적ㆍ기술적 측면을 논외로 하더라도, 먼저 전교조제주지부가 발표한 조사결과는 나의 주장을 다시 한번 뒷받침해준다.

늘 교사들은 일제고사를 염두에 두며 수업을 진행하고(82.2%), 제학력갖추기평가는 자율적ㆍ창의적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성이 없고(61.2%), 오히려 자율적ㆍ창의적 교육과정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39.9%) 학생ㆍ교사ㆍ학교 간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32.9%). 이로 인해 학생들도 피곤하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늘어나고(40.2%), 학원에 가야하고(59.0%), 밤12시 너머까지 시험공부에 매달린다(49.1%). 그리고 점수 때문에 혹은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불안하여 시험 때만 닥치면 좌불안석이다(54.1%). 한마디로, 일제고사식 평가는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에게도 나쁜 평가일 뿐이다.

한편, 제주교육과학연구원(이하 동연구원)의 설문은 “제학력갖추기평가에 대한 타당성 등”을 묻기 위한 조사라는 제하에 응시횟수와 응시과목 축소방안 등을 묻고 있다.

동 연구원의 안은 응시횟수를 2회에서 1회로, 응시과목을 4과목(중 5과목)에서 3과목(중 3과목)으로 줄이려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아 일단 제주도교육청과 동연구원도 제학력갖추기평가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정작 이 설문은 반드시 물어야 할 핵심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 평가를 계속할 필요가 있는지 그 타당성을 먼저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사는 계속시행을 전제로 하고 설문을 함으로써 논리적 정합성이 결여되었다.

동연구원의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다분히 의도성이 있는 조사로밖에 볼 수 없다. 응시횟수를 줄이고 응시과목을 줄이자는 데 반대할 교사나 학생이 있겠는가. 응당 찬성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더, 동연구원은 응시과목을 기존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중 영어 포함)에서 국어, 수학, 영어로 하겠다고 한다. 동연구원은 이 시험의 목적을 “학교급별과 교과별로 제학년에 갖추어야할 학업성취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응시과목을 국어, 수학, 영어로 줄이는 이유를 이들 과목이 기초과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한번 이 평가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고 있다. 기초과목의 성취수준이 높아지면 “교과별로” 제 학년에 갖추어야할 학업성취 수준도 자연스럽게 도달되는 것인가. 국ㆍ영ㆍ수 과목에 성취도가 높은 학생은 다른 과목에도 뛰어난 학생인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다. 학생들의 다양한 자질과 능력을 무시하고 오로지 고입과 대입을 위한 경쟁만능의 비교육적 발상일 뿐이다.

평가가 원래의 취지와 목적에 어긋나면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일제고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설사 국가나 지역교육청이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더라도 일제고사식의 전수조사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학생들의 학업성취정도를 가장 잘 알고 또 그들의 성취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그들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함에도 국가가 혹은 지역교육청이 직접 나서 평가를 하겠다는 의도에는 교사들을 못 믿겠다는 의구심이 깔려있다. 교사를 믿지 못하고 어떻게 교육이 제대로 될 수 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강봉수 제주대 교수 / 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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