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찬 열사 추모비 건립..."그를 생각합니다"
상태바
양용찬 열사 추모비 건립..."그를 생각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 추모비 건립...20주기 추모제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 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1991년 11월7일 오후 7시40분께 당시, 서귀포시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 사무실 3층 옥상계단에서 25세의 젊은 청년이 온 몸에 불을 사르고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당시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에서 일하던 청년 양용찬이 바로 그였다.
 
그는 1985년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입학했다가 군복무를 마친 후 복학하지 않고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당시 제주 최대현안은 '제주도개발특별법'이었다. 제주사회에는 이의 반대투쟁 분위기가 크게 확산돼 있었다.

공무원을 동원해 좌석을 선점해 버리는 해프닝을 연출하며 제주도와 정부는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공청회를 연이어 강행했고, 그해 정기국회에 이 법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특별법이 통과되기 바로 한달전, 그는 '특별법 저지'를 위해 온 몸을 사르는 분신항거를 했다.

그의 희생은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투쟁을 더욱 고조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끝내 특별법은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됐지만,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 제주도를 원한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그의 정신은 오늘에까지 이어내려오고 있다.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제.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제. <헤드라인제주>

#20주기 추모문화제...20년만에 세워진 '양용찬 열사 추모비'

그로부터 20년이란 시간이 지난 6일.

서귀포시 매일올레시장 내 놀이터에서는 제주사랑민중사랑 양용찬 열사 20주기공동행사위원회(공동위원장 고광성, 고성효, 고유시, 홍리리)가 주최한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가 열린 이곳은 20년전 양 열사가 투신했던 나라사랑청년회 건물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날 추모제에서는 양용찬 열사 추모사업회의 오랜 숙원이던 추모비 건립에 따른 제막식 행사가 마련됐다.

추모비는 놀이터 동쪽 '서귀포 6월항쟁 기념 조형물'이 세워진 바로 옆으로 해 설치됐다.

20년만에 세워지는 추모비라는 의미 때문인지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참여해 손을 맞잡은 표석 제막의 줄은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땅을 단단히 다지는 의식인 '달구소리'는 민요패 소리왓의 문석범 소리꾼의 선창으로 한참동안 이어졌다.

마침내 추모비를 덮었던 천에 연결된 줄이 당겨지고, 영정 사진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 표석.

1m가 조금 높는 자그마한 표석이지만, 환한 불빛 속에서 '양용찬 열사 추모비'라고 새겨진 글씨는 빛을 내고 있었다.

추모행사를 주최한 단체 대표자들이 먼저 국화를 헌화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문대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윤춘광 의원, 위성곤 의원, 강경식 의원, 김영심 의원 등도 헌화했다.

양금석 전 제주도의회 의원과 고희범 민주당 제주도당 제주해군기지특별위원장, 양윤녕 민주당 제주도당 사무처장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문석범 소리꾼이 달구소리를 선창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추모비 표석을 다지기 위한 달구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추모비 표석을 다지기 위한 달구 의식.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추모비 표석을 다지기 위한 달구 의식.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추모비 표석을 다지기 위한 달구 의식. <헤드라인제주>
20년만에 세워진 양용찬 열사 추모비. <헤드라인제주>
문대림 의장을 비롯한 도의원들이 추모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부친 전날 별세..."제주의 현실에 마음이 무겁다"

이번 추모행사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고광성씨는 표석이 설치되자 '큰 일'을 잘 마무리했다고 안도하면서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전날 양 열사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추모비 건립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이날 제막식에는 친지 중 사촌동생만이 참석했다.

고광성씨는 "양용찬 열사와 가족분들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크다"면서 "양 열사의 삶을, 열사의 뜻을 제대로 새겨나가자고 다짐도 해봤는데, 소홀함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아직도 제주해군기지와 영리병원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오늘 추모제를 하면서도 마음이 정말 무거웠는데, 그나마 20년만에 추모비라도 건립하게 돼 "고 말했다.

양용찬 열사 추모사업회에서 20년동안 줄곧 활동해온 김택진씨, 그리고 끝까지 자리를 함께 지킨 윤춘광 의원의 얼굴표정도 무척이나 어두웠다. 제주의 현실을 돌아보면 답답함은 더욱 커지는 듯 했다.

"당신이 떠난지 20년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했던 세상은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갈 수록 삶의 가치보다는 자본의 가치가 지배하는 제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리병원이 그 상징입니다. 평화를 위협하던 군사기지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택진씨가 추모굿을 지켜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추모제 공동위원장인 고광성씨. <헤드라인제주>
양용찬 열사 20주기 추모제. <헤드라인제주>
# 추모공연 '바람의 역사, 장두'..."다시 웃는 세상 향해"

표석 제막식이 끝난 후에는 이용옥(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이수자)의 20주기 추모 불찍넋들임 굿이 펼쳐졌다.

저녁 7시부터는 이날 추모제의 집체연극 <바람의 역사, 장두> 공연이 선보였다. 이 공연은 민중가수 최상돈이 연출하고, 윤미란이 기획한 작품으로, 제주 한라산을 차지한 막둥이 영감이 나머지 6명의 영감들을 불러모아 오늘 굿을 하게 된 연유를 풀어내는 마당에서 시작됐다.

1901년 제주섬을 흔들었던 신축제주항쟁, 일제강점기 해녀항일운동, 미군정시대의 무자기축항쟁, 새마을운동, 개발의 회오리, 특별법과 양용찬, 그리고 강정에 부는 평화바람 등의 내용으로 7마당으로 구성됐다.

잘 대접받은 여섯 영감이 각각 제주도에 나쁜 것들을 자신들이 타고 온 배에 실어 떠나는 것으로 공연을 막을 내렸다.

"잊을 수 없는 당신의 외침 그대로 다시함께 웃는 세상을 향해 힘을 모아내겠습니다."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