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베릿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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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베릿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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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39> 베릿내 이야기

제주 중문관공단지내 골프장과 토지의 매각작업이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관광공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달 30일자로 중문골프장과 관광단지의 미분양 토지에 대한 일괄 매각업무를 담당할 주간사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공고를 내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민간매각에 대해 서귀포시와 지역주민들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다,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매각에 반대하며 개발사업 시행자 변경을 불허한다는 입장이어서 또다시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2011년 10월 11일자 「헤드라인제주」 기사 중에서


정부에서 추진하고 일에 저가 일일이 왈가불가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뭔가 구린 구석이 있음을 감지합니다. 1987년 지금의 중문관광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당시 정부가 강제수용한 토지는 평당 1만원도 채 안되었는데, 지금은 거의 평당 150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주민들의 피와 눈물을 담보로 그야말로 전형적인 땅투기를 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 피와 눈물 속에 ‘베릿내’마을이 있습니다. 지금 중문관광단지 내에 있는 씨에스호텔 부지가 그곳입니다. 당시 베릿내마을은 중문관광단지 개발과정에서 토지가 강제수용되어 주민들은 정든 마을을 두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분들이 떠난 그 자리엔 관광어촌마을로 탈바꿈되어 관람객들을 맞고 있지만 별로 찾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옛이야기는 전한다
밤이 되면 내려와 반짝거리던
별무리 하도 고와서
이 바닷가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결같이 그리운 바다 쪽으로
문을 낸 낮은 초가집들
모두 떠나고 쓸쓸하다

고기잡고 돌아오는 사랑하는 이
가슴 죄며 기다리던
가무잡잡하고 눈이 맑은 처녀
지금은 어디서 누구를 사랑하나

황근꽃 노랗게 피어나는
돌담에 기대어
해미 자욱한 바다를 보며

이곳에 내려오던 별무리
이곳에 살던 아름다운 사람들
나는 그저 그립다
- 김순이 시인의 시 「베릿내(星川浦)」 전문

이 시를 감상하며 정군칠 시인은 ‘베릿내를 찾아갈 때에는 한 번쯤은 관광단지에 가려 이름마저 잊혀져가는 조근동산 비포장도로를 따라 갈 일이다. 덜컹거리는 길에 오감五感을 맡겨볼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문관광단지에 가려 지금은 찾는 이가 드문, 성천포星川浦 베릿내!

그 아픈 이산離散(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놀이패 한라산은 ‘설운 땅 일어서는 사람들’이라는 마당극으로 만들고 공연을 한 바 있습니다. 제주시 공연에 이어 중문 대포동 현장공연도 했었는데요. 잠깐 소개를 하지요. 다음은 극 중의 한 대목입니다. 변사가 출연해서 극중 인물들의 대사를 하고 배우들은 신파극 연기를 절절하게 합니다. 먼저 변사가 ‘황성옛터’라는 옛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며 등장합니다.

변 사 : ‘베릿내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눈 물 없이는 볼 수 없고, 손수건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 베릿내 이야기. 이 이 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평화롭기만 하던 베릿내 마을에 미친 개발바람이 불어 닥치기 시작할 때였으니, (이때 주정꾼이 비틀거리며 등장한다.)

주정꾼 : 이놈들아. 내 집내놔. 내 땅 내놔 이놈덜아. (술병으로 나팔을 불면서 노래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비틀거리며 주저앉으면, 한쪽에서 아낙 이 남편을 찾는 동작으로 등장한다.)

아 낙 : 요 사람들아. 어디서 술 쳐먹엉 젓엉 뎅기는 하르방 하나 못 봅디가? 그 하르방 봐지 걸랑 저거 누게 서방이여, 저거 누게 아방이여 허멍 내무리지 말앙 잘 달레영 집더레 보내줍서. 그 사람 경해도 옛날엔 첨 속이 좋은 사름이라나신디. 흑흑. (울음, 하르방을 발견하고는) 요 하르방아! 어디서 술 쳐먹엉 젓엉 뎅겸수과? 집에 들어그릅서게. 지 몸 이기지도 못허는 술을 무슨 경 원수같이 먹엄수과?

주정꾼 : 놔라. 게민 나가 술을 먹지 술병을 먹을 말이냐? 술잔을 먹을 말이냐. 무신거? 집이 들어그릅서? 야! 우리가 집이 어디 있나? 지네 집 뺏기고 겨우 놈의 집 세들엉 사는 주제에 집은 무신 집 말이냐?

아 낙 : 경해도 어떵 살아볼 도릴 찾아봐사 헐 거 아니우꽈? 영 술만 먹엉 뎅기는 걸 보멍 동 네사람덜 비웃는 걸 무사 몰람수과?

변 사 : 술병을 두고 서로 빼앗고 뺐기고 할 때, 이때 골프장에서 돌아온 순이라는 딸은 어머 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것을 보고 애간장이 다 타는구나.

순 이 : 흑흑흑 아버지, 어머니. 무사덜 영 허염수과? 동네 챙피허지도 안허우꽈? 나가 집을 나가든지 해사주 원. 흑흑흑.(울음)아 낙 : 순이야, 무신일 있어났구나. 꼴프장에서 또 무신 일 이서나시냐?

주정꾼 : 일은 무신 일, 그냥 곱게 뎅겨. 그디가 어떵 사정허연 얻은 자린디.

순 이 : 그딘 뎅기구졍허연 뎅기는 줄 알암수과? 사정허연 얻은 자리난 그 괄세주. 그디서 사 람대접 받는 줄 알암수과? 이건 그놈들 몸종도 아니곡.

아 낙 : 순이야, 경해도 어떵허느니. 입에 풀칠이라도 허젠 허믄 그냥 뎅겨사주.

순 이 : 우리가 이게 무신 고생이우까? 우리가 무사 고향 베릿내에서 쫓겨나야 해수과? (회상 하듯) 정숙이, 선주네영 어린시절 꿈을 키우던 진모살 백사장, 고메기영 구젱기영 잡당 백중처서 때면 물 맞이레 가던 그 바당! 아버지 무사 그때 그 개발들어오는거 막지 못 해수과? 이제 포구 입구엔 진입로도 막아부난 성천포구엔 궤깃베도 못 매지 안햄수과!

아 낙 : 순이야. 그만허라. 제발 그만허여. (울음)

주정꾼 : 네 이놈이 새끼들! 그놈들 농간에 집 뺏기곡 땅 뺏기곡, 뭔가 해보젠 해신디. 그놈들 농간에 돈까지 다 날리곡. 그런 놈덜은 죽어야 뒈. 나가 나 손으로! (뛰쳐나가며) 에잇!

아 낙 : 순이 아버지! 어디 감수과?

순 이 : 아버지!

변 사 : 주정꾼의 뒤를 좇아 아낙과 순이가 울면서 나가는구나. 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픈 이야기, 베릿내 이야기!

땅을 빼앗기고 정든 고향을 떠나 정착하지 못한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담은 공연입니다. 하지만 이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박장대소하며 뒤집어
집니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나서는 그 짠한 아픔이 관객들 자신에게 스며들어 눈물을 짓게 하기도 합니
다.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에 강제수용된 후 개발업자들에 의해 돈벌이가 되지 못하자 버려지다시피한 마을. 이 베릿내마을은 국가사업(또는 국책사업)의 장밋빛 환상과 강제적 결정이 얼마나 허황되고 몰지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민들에게서 빼앗아 간 땅을 다시 대자본에 시세보다 싸게 팔아치운다고 합니다.

이건, 이곳에서 쫓겨난 주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입니다. 개발이익의 지역환원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믿고 토지를 헐값에 수용해 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아무리 장사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이러다간 혹, 온 제주섬이 이 ‘베릿내마을’ 꼴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재화財貨는 모두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결국 제주도민들에게는 쭉정이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어느 시점에, 우리 제주도민들 자신이 잃은 터진 위에 자리잡은 외부세력의 궁전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푸념조로 부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래서는 절대로 안되겠지만 말입니다.

제주땅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여 있노라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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