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우리가 아는건 '빙산의 일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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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우리가 아는건 '빙산의 일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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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37>들꽃과 4.3

제주의 들과 바다를 쏘다니다가, 문득 ‘제주4․3이 제주의 자연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과 들과 바다에서 자라는 풀이며 나무, 모든 생명체들을 우리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주4․3도 너무 넓고 방대해서 감히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아는 것처럼, 제주4․3도 ‘빙산의 일각’만을 안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평생을 식물이나 동물 하나만을 연구하는 사람도 끝내 그 생명의 정체를 다 알지 못했다고 고백하는데, 평생을 바쳐도 제주4․3을 다 알 수 없는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 일부의 일부분만이라도 알아나갈 수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일일 겁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 중에서 특히, 요즘 우리 주변에서 들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간 화려하고 예쁜 꽃들 속에 묻혀 작고 보잘 것 없는 들꽃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입니다.

순남 언니나 창집 선생은 들꽃 박사다
도무지 모르는 것이 없다

나도 한번 따라한답시고
몇 개 이름 외우다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의미는 자신을 관통하는
마음 떨림에 주파수를 공명한다

가치는 그것이 내 심장에
각인된 파동에 정비례한다

문득 내 이름이 잊혀질듯
이름 잊은 들꽃에게 부끄러이 들켜버린다

도대체 아는 것이 없다
들꽃이나 들꽃 닮은 이들을 닮아야겠다
(졸시, 「들꽃이름 외우기」전문)

장미라든가 백합이라든가 코스모스 같은 꽃들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머릿속에 새겨져서 그 이름과 향기까지 저절로 기억됩니다. 그건 학습을 통해 오랫동안 우리들의 머릿속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꽃’은 그 이름을 아무리 외우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꾸 잊어버리게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짧은 기간에 외우는 것은 그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꽃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그 꽃이 주는 의미를 우리가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굳이 이름을 외우려 들지 않아도 저절로 이름이 새겨집니다. 아는 것 중에서도 각인된 것은 내 가슴에 의미로 다가온 것들일입니다

4․3을 겪으신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분들은 4․3때의 기억이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그분들에게 지울 수 없는 각인의 자국으로 너무나 또렷하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억은 후유장애로 다가오기도 하고 유전되어 대를 이어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아직도 4․3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4・3을 이야기 할 때, ‘김달삼, 이덕구’ 또는 ‘이승만, 조병옥’ 같은 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인물들은 4․3의 대표 인물들로 가령 무궁화나 백일홍, 장미나 백합같이 잘 알려진 꽃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외 거명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4․3영령들은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질경이나 쑥, 민들레나 억새’ 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들불 놓아 다 태워도 마른 땅에 뿌리까진 못 죽여 봄이면 악착같이 피어나는 억새’처럼 말이지요. 또, 4․3의 의인義人이라 칭하는 김익렬, 문형순 같은 이들은 아마도 ‘수선화나 백리향’ 등으로 볼 수 있겠지요. ‘유사자연향 有麝自然香 하필당풍립 何必當風立’이라고, ‘스스로 향기를 품고 있어 구태여 바람 앞에 서지 않아도 되는’ 그런 분들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쉰들러 리스트’가 되어 이제 우리 앞에 감동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제 그 억새와 같은 4․3, 그런 사람들의 피맺힌 육성이 훌륭한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대자연과 같은 4․3 중에서도 들꽃 같은 4․3의 이야기가 빙산의 일각을 뚫고 나와야 합니다.

이제 ‘이것이 자연이다!’라는 총론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졌듯이, 자연을 이루고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 들꽃이라도 제대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4․3이다!’라는 4․3의 거시사가 조금은 정리되었듯이, 이제 그 드러나지 않은 4․3의 미시사, 각론적이고 구체적인 진상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수수꽃다리’라는 우리꽃이 ‘미스킴라일락’이 되는 왜곡만은 막아야 하겠습니다. 북한산에서 자생하던 이 수수꽃다리를 미국인이 가져가서 개량한 품종이 ‘미스킴라일락’이 되었다고 하잖아요. 이를 다시 제대로 이름을 붙이면 ‘서양수수꽃다리’ 정도가 될 것이지요.

이렇게 작은 것 하나 제대로 조사하고 지켜내지 못하면 ‘반동’은 늘상 허점을 파고듭니다. 그래서 왜곡하고 세뇌해서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을 막는 길은 ‘구체적이고 명백한’ 진상조사이자, 우리들 마음속에 들꽃 향기의 4・3을 심는 일입니다.

4․3을 겪으신 어느 유족은 ‘4․3이후 아무 꽃이나 함부로 꺾을 수 없다’고 저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꽃들이 4․3영혼들 같아서’ 그렇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들꽃을 꺾지 않고 오히려 하나씩 더 심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들꽃의 마음으로 4․3을 대합시다. 들꽃은 화려하거나 요란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다 했다고 나대지 않습니다. 자신이 제일이라고 으시대지 않습니다. 4․3을 이용해서 영달을 꾀하거나 기고만장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꽃을 피우는 사람은 절대로 자만하거나 교만하거나 오만해지지 않습니다. 다음 시의 ‘시로미나무’처럼 말입니다.

좌지우지하려 않는다
중심만 잡을 뿐

그렇다고 흔들지도 않는다
바람은 벗일 뿐

높이 오르려 않는다
눈 닿는데 뿐

그렇다고 많이 손 벌리지도 않는다
이 정도 그늘이면 충분할 뿐

다만 비슷한 것들끼리 어깨 걸고 월동하며
하늘 숨 편히 들이쉴 뿐

땅 샘 마르지 않게 이슬 품으니
저절로 푸른 우주가 영글 뿐
(졸시, 「시로미나무」전문)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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