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선 제주를 '꿈의 땅'으로 여깁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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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선 제주를 '꿈의 땅'으로 여깁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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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새터민 제주관광..."이제 여한이 없네요"
제주는 '애증의 대상', "남과북 서로 알아야해요"

"내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고저 감사할 따름입네다."

'새터민'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그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선망의 대상이었던 제주바다를 본 그들은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염원은 북에서도 같았다.

5일 오후 다양한 계층의 관광객들이 몰려 든 성산일출봉에서 유독 튀는 억양을 가진 이들이 눈에 띄었다.

흔히 '탈북자'로 불리는 이들은 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제주여행을 찾아온 사단법인 평화통일탈북인연합회(대표 김태범) 회원들이었다.

성산일출봉을 찾은 새터민들이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제주관광에 나선 새터민들. <헤드라인제주>
제주관광길에 나선 평화통일탈북자연합회 새터민들. <헤드라인제주>

이들은 이날 성읍민속마을과 성산일출봉, 해녀박물관 등을 견학했다.

"수도권 지역에 사는 새터민 중 70~80대 노인들을 선별해서 제주를 방문했어요. 젊은 사람들이야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테고 직접 돈 벌어서 와도 되지만 이 분들은 그럴 수 없는 분들이니까요."

김태범 회장의 설명이다.

북한에서는 현재까지도 제주를 '선망의 땅'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우리가 대한민국 최북단의 백두산에 의미를 부여하듯 북한에서도 대한민국 최남단의 한라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꼽고 있다는 것이다.

"북에서는 제주를 별개의 나라로 생각해요. 국제자유도시 잖아요. 그래서 평소 관광이라는 것은 엄두도 못내는 북한 사람들은 죽기전에 제주도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합니다."

간절하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제주땅은 점점 북한 주민들의 '애증의 대상'이 돼가고 있다.

이번 여행길도 힘들게 성사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터민들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띄게 감소했고, 해마다 치뤄오던 국토순례는 4년째 끊겨있었다.

가뜩이나 이념 등의 문제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새터민들이 경제적인 여유를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 결국 이들이 제주를 방문할 길이라고는 기관이나 정부의 지원프로그램밖에 없는 형편이다.

중단됐던 국토순례를 재개한 것은 새터민 노인들의 열망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었다. 온갖 고초를 뚫고 다다른 한국땅이라 그 열망은 더욱 단단해졌다.

함께온 박모씨는 "죽기전에 제주땅을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감회를 전했다.

북한에서도 최북단인 온성에서 살다가 10년전 남으로 내려 왔다는 이철숙씨(65).

"탄광촌인 제 고향은 갈탄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주식은 옥수수를 먹으면서 사는 동네죠." 그러던 중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보냈다. 4남매를 키우던 이씨는 막막함을 느꼈지만 굶주림을 채울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군대에 보냈던 큰 아들의 사망 소식까지 들려왔어요. 그제서야 이대로 살다가는 남은 아이들까지 다 죽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앉아있다 죽으나 서서 죽으나 어떻겠냐는 생각에 넘어오게 됐죠."

씩씩하게 말을 이어가던 이씨는 잠시 눈가를 훔쳤다. "넘어오는 사람들의 이유는 거의 같아요. 자유를 찾아오거나 배가 고파서. 둘 중 하나에요."

아직도 간혹 고향생각이 난다는 그는 그래도 현재의 상황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제주에 오게된 것도 다 감사한 일이죠. 비행기에서 제주땅이 보이자마자 먹먹해지더니 울음이 나오더라고요.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네요."

또 다른 일행은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나만 이래 좋은 구경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제주관광에 나선 새터민들. <헤드라인제주>
성산일출봉을 찾은 새터민들이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방문단에 대해 설명하는 김태범 회장. <헤드라인제주>

평양에서 나고 자란 김태범 대표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제가 남으로 넘어온 것이 1994년도쯤이었는데, 그 직전에 러시아에서 남한사람들과 4년간 함께 생활했었어요.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방공교육을 받고 자랄때 남한 사람들은 '부익부 빈익빈'이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남한도 비슷하더라고요."

어렸을때부터 받은 교육이 서로를 경계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지금은 또 다른 문제에요. 요즘 아이들은 남과 북의 역사를 너무 모르거든요. 무조건 공산당을 물리치라고 교육받은 나이 든 세대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세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사라진다면, 통일의 염원은 결코 이룰 수 없다는 우려다.

"제주도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땅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역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되거든요. 남한과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아프지만 잊어서는 안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해요."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검은것은 검다고, 흰것은 희다고 해야지 그게 올바른 교육이 아닐까요."

방문단은 내일께 한라산 어리목과 여미지, 도깨비 도로 등을 둘러보고 모레 비행기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던 사흘간의 제주관광. 이들에게는 오랜 꿈을 이룬 날이었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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