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는 안돼, "천연잔디 왜 깔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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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는 안돼, "천연잔디 왜 깔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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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잔디 보호 차원 체육활동 제한에 학생 '볼멘소리'
학교 측 "불가피하게 제한"...교육청, '선 조성-후 관리?'

여름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가 시작된 5일 오후의 제주시내 모 초등학교.

푸른 천연잔디가 깔린 운동장 한 켠에서는 이 학교 학생 3-4명이 수업을 마치고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드넓은 운동장이 아닌 '구름다리'를 골대 삼아 공놀이를 하고 있었을까.

"축구화 신으면 잔디 망가지니까 축구화 신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여기서 놀고 있어요."

이처럼 수억원을 들여 학교에 천연잔디 운동장을 조성하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이 잔디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격한 운동을 하면 천연잔디가 파손돼 유지.관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잔디가 있음에도 운동장 구석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학생들. <헤드라인제주>
천연잔디가 깔린 초등학교 운동장. <헤드라인제주>
현재 제주도내에 천연잔디가 깔려 있는 학교는 초.중.고교, 특수학교를 통틀어 모두 79개교. 올해 사업이 완료되는 31개교를 더하면 110개교로 불어난다.

천연잔디는 인조잔디의 유해성 우려를 덜고, 관리만 잘 되면 인조잔디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녀 조성되기 시작했다.

또 학교 1곳당 인조잔디 운동장은 약 5억원이 소요되는 반면, 천연잔디는 약 3억원이 들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된다.

문제는 천연잔디는 살아 있는 식물로,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 이에따라 일부 학교에서는 천연잔디 운동장을 조성해 놓고도, 유지.관리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학생들의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조성을 마친 한 학교는 학생들의 다른 체육활동은 허용하되, '축구'는 제한시켰다. 축구는 격한 움직임이 많아 잔디가 쉽고 빠르게 손상된다는 이유다.

이 학교 교장은 "잔디가 아직까지 빈공간이 많아 완전히 자리 잡는 앞으로 2년까지는 축구 등 심한 운동은 불가피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잔디를 깐 지 1년 된 다른 학교는 축구화 착용을 금지시켰다. 마찬가지로 잔디 손상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쓰지 못해 활용에 제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이 학교 교장은 "더구나 잔디가 성장을 쉬는 '휴지기'에는 사용 못하는 불편도 따른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잔디 위가 아닌 운동장 한 켠에서 공놀이를 즐기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천연잔디가 깔린 초등학교 운동장. <헤드라인제주>
이 학교 학생 이모군(13)은 "축구화도 못 신게 할 거면 뭣하러 잔디를 깔았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학교 현실이 이런데도 교육청 당국은 '천연잔디 관리는 학교장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더구나 교육청 차원의 잔디 관리 지침은 따로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다.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잔디를 조성해주는 게 우선"이라며 "관리 지침은 모든 학교에 대한 조성이 끝난 뒤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수억원을 들여 천연잔디를 조성해 놓고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짙어지고 있어, '유지.보수'와 '학생 만족'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헤드라인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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