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치고도 모자라 철조망을 쳐? 너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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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치고도 모자라 철조망을 쳐? 너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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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펜스 위 철조망 설치에 모여든 강정주민 '울컥"
"추억의 중덕해안 가는 것도 이젠 해군 허락받아야 돼?"

2일 공권력이 전격적으로 투입돼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서귀포시 강정마을.

결국 구럼비 중덕해안가는 해군이 장악하게 됐다.

승리의 표시라도 하듯, 중덕 삼거리 농성장 뒷편으로 해서 높고 높은 펜스가 설치됐다.

회색의 펜스가 농로를 가로막고 그 위에는 날카로운 철조망이 설치되면서 해안쪽 전경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해군의 허락없이는 구럼비해안에는 갈 수도 없게 됐다.

한차례 격렬한 충돌이 있은지 몇시간 후인 오후 2시쯤.

펜스가 설치된 삼거리 농성장 앞에는 강정주민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모두들 막막한 심정으로 펜스를 처다보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설치된 펜스위에는 누구도 드나들 수 없도록 철조망이 쳐져 있다. <헤드라인제주>
중덕해안가로 진입하는 농로가 펜스로 가로막힌 가운데 강정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대책마련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어릴적 뛰어놀던 추억의 장소...펜스가 가로막고 있어"

강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은 강부언 할아버지(70)는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됐는지 알 수 가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어렸을 적 중덕바다와 구럼비 바위 위를 뛰어다니면서 고기도 잡고 했던 추억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 추억들을 되새길 수도 없게 됐다"면서 "저 펜스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이제는 그 아름답고 편안했던 구럼비 바위가 콘크리트로 덮이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나 안타깝고, 아깝기도 하다"면서 "구럼비 바위와 같은 바위는 제주 어느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올레꾼들도 구럼비 바위를 보면 감탄하면서 극찬을 하고 가는데 이제 그런 구럼비 바위를 볼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군이 강정주민들을 무시하고 밀어붙이기만 하면 공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마을 주민 강부언씨. <헤드라인제주>
"오늘 이뤄진 경찰의 투입은 결국 해군이 요청했기 때문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해군은 마을주민들의 의견은 필요 없고 그저 밀어붙이기만 하면 공사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을주민들이 반대하는 것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까지 오게된 것 아니겠느냐. 이제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마을주민들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강 할아버지는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준비를 해야한다"며 "그래야 저 아름다운 구럼비 해안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지금 강정마을에 다시 4.3이 벌어진 것 같다"

강정마을에서 70평생을 살아온 김모 할머니(70)는 이날 중덕해안가를 가로막는 펜스를 보면서 "이제 다시는 중덕바다 못가는거냐?"고 물으며 안타까워 했다.

김씨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4.3이 벌어졌는데 강정에서도 한사람의 말 한마디로 수많은 주민들이 학살당했는데 지금 이 난리가 난 것도 전 마을회장의 이기적인 판단으로 인한 것 아니냐"며 "그때와 마찬가지로 육지부 경찰이 이렇게 몰려왔는데 이게 바로 4.3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특히 김씨는 "4.3당시에는 마을주민들이 학살당했지만 이제는 강정마을 자체가 없어지게 생겼다"면서 "평생을 강정에서 살아왔는데 해군기지로 인해 변해버릴 강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강정주민 고시림씨(68)는 이날 경찰의 기습적인 대규모 투입에 대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격분했다.

고씨는 "무력충돌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면 오늘과 같은 일은 발생할 수 없었다"면서 "도대체 내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피력했다.

주민들은 앞으로 구럼비 중덕해안가를 가려 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현실에 분개해 했다.

"해안가 가는 것도 해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요?"

펜스가 설치된 바로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 <헤드라인제주>
높은 망루 위에 앉아있는 고권일 위원장. 이따금씩 중덕해안가를 살핀 후 마을주민들에게 현재 해안가의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 "경찰이 마을주민들을 마치 방해꾼 취급...마음 아파"

3일 강정마을에서 개최되는 대규모 평화문화제 '놀자 놀자 강정 놀자'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제주에 내려와 강정에서 생활하고 있는 대학생 진수영씨(27, 여)도 이날 경찰의 기습적인 투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진씨는 '시대여행. 강정 평화지킴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강정마을을 방문, 구럼비 해안에서 생활하면서 평화문화제를 준비하다 이날 새벽 울린 비상 사이렌을 듣고 농로 삼거리로 달려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진씨는 "29일 밤 늦게 내려와서 다음날 새벽에 구럼비 바위를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일출을 배경으로 펼쳐진 구럼비를 보는 순간 왜 이 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되는 것인지를 알게 됐다"면서 "그런데 이날 펜스가 세워지면서 다신 그런 경관을 볼 수 업게 될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진씨는 이날 경찰의 모습에 강한 실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는 마을주민들을 마치 '걸림돌' 취급하고 있는 경찰의 태도 때문이다.

"오랫동안 강정에서 살아온 마을주민들이 자신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경찰에서는 이런 마을주민들의 마음도 몰라주고 단순이 걸림돌 취급하면서 물리쳤는데 마치 경찰이 해군이 시키는 데로 하는 하수인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진씨는 "지금 펜스가 농로를 막고 있는데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면서 "저만해도 이런 상황인데 평생을 강정에서 보내고 4년 넘게 반대투쟁을 해온 강정마을 주민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 "언젠가 펜스가 무너지고 다시 구럼비를 방문할 수 있을 것"

올해 초 강정마을을 방문해 그때부터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선봉에 서온 개척자들의 송강호 박사. 그 역시 이날 펜스가 설치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펜스가 설치된 곳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던 송 박사는 농로에 설치된 펜스가 마치 독일의 '베를린 장벽' 같다고 평가했다.

송 박사는 "지금 설치된 펜스를 보다 보니 마치 독일의 베를린 장벽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지금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지만 언젠가 결국 그 베를린 장벽처럼 무너져 다시 중덕해안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구럼비를 지켜야 한다는 많은 국민들의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빈틈없이 설치된 펜스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철거될 것"이라며 "앞으로는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의 뜻을 모으는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박사는 이날 기습적인 대규모 충돌이 해군측의 초조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척자들의 송강호 박사. <헤드라인제주>
송 박사는 "지금 해군이 이렇게 국민의 뜻에 반하는 강경책을 쓰는 것은 이명박.한나라당 정권 아래서만 자신들이 근거도 없는 해군기지 공사를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기 전에 주민들을 희생시키더라도 있어도 미리 어느정도 공사를 강행해 놓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이같은 강경책에 대해서는 해군기지 공사 찬성과 반대를 떠나 모두 반대하고 있는 만큼 이번 충돌을 계기로 더 많은 이들이 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이른 국민들이 함께해 준다면 해군기지를 막고 아름다운 중덕해안가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입지로 계획되면서 불거진 기나긴 투쟁.

5년간의 투쟁에도 보람없이 이날 경찰과 해군의 기습작전으로 불과 3시간만에 설치된 펜스와 철조망을 바라보면서 주민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헤드라인제주>

<김두영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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