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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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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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31>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오늘의 글은 ‘산다는 것’의 의미 즉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 나름의 고민의 조각입니다.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살암직이 산다(사는 것처럼 산다)’, ‘살암시믄 살아진다(살다보면 살아진다)’는 제주의 격언에 그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살암시믄 살아진다’는 말에는 제주사람들의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고통과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살암직이 산다’는 말은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면서 궁핍하지 않게 산다’는 의미가 될 겁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 할 것입니다.”

폴 발레리의 말입니다. 이 말이 저에게 와서 확 꽂혔습니다. 이 말처럼 저의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간 헛 살아왔다는 자괴감이 들기에 충분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겨우 깨달았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간 살아오면서 저는 ‘돈을 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서부터 돈에 대한 개념이 희박해지기 시작합니다. ‘벌진 못하고 쓸 줄만 알았던’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 ‘벌지 못 하니 쓰지도 말자’는 주의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니 옷이나 자동차 그리고 모든 의식주에 대한 집착에서도 서서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별로 내세울 게 없고 사람 사이의 계산에도 어두우니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접받는 것조차 신경 끊어버리면 마음은 점점 편해집니다.

그릇이 커야 대접을 받잖아요
그래요 나 그것 밖에 안 되어요

내 대접이 줄 땐 작지 않나
내 그릇이 받을 땐 크지 않나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잖아요 존재는

그릇이나 대접이나 허공만큼
그래요 채우거나 비워내면 그만
-졸시, 「대접과 그릇」 전문

이렇게 마음이 조금 편케 되자 숨 막히게 살아가는 각박한 도시생활이 점점 염증이 납니다. 그래서 시골로 들어가 막사리라도 지어서 마음 편하게 살아보자는 음모를 점점 꾸미게 됩니다. 집은 좀 허름해도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으면 되고, 구들에는 온돌을 놓고 마루에는 나무 난로를 놓아서 추위도 제법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집을 상상합니다.

집 주위로는 텃밭을 일굴 겁니다. 고추 상추 등 온갖 제철 채소를 기르고, 감나무 밤나무 등 유실수들을 심고 차나무도 한 1백 주 정도 심어 찻잎을 직접 따서 마셔보려고 합니다. 누가 찾아오면 과일과 차를 나누고 텃밭의 채소로 부침개를 만들어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려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뜻이 맞는 지인들 한 열 명 정도 모아서 공동체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를 같이 이야기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작은 공동체를 말입니다. 개인적인 부와 영달을 위한 삶이 아니라 생산과 나눔을 함께 하고 필요한 만큼만 아주 작게 소비하는 공동의 터전을 말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말하면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아메리카 인디언 호피족의 격언

적게 갖고 적게 쓰는 단순 소박한 삶이 영원한 진보임을 확신하며 여든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 「생명평화경」 중에서

그렇다고 해서 그 공동체가 사회와는 단절된 ‘그들만의 공간’은 아닙니다. 이 야만의 시대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또한 그것을 딛고 일어설 새로운 대안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그런 공동체를 꿈꿉니다. 그러기 위해선 추한 노욕 없이 말년을 평화롭게 맞을 준비를 해야겠지요. 그것은 ‘참된 삶’이란 거대담론을 저 나름대로 소박하게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삶이란 먼 훗날 느닷없이 생겨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상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겠지요.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끊임없이 던지고 실천하는 것일 겁니다, 하루 하루의 참 삶의 뿌리가 대지에 깊고 넓게 뿌리박고, 참되게 살려는 노력들이 곁가지로 자라서 참된 삶이란 큰나무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을 원수처럼 정복의 대 상으로 여겨 자연의 리듬에 거슬리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 양 우쭐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 연의 리듬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역사의 흐름도 막으려 들고 민심도 깔아뭉개려 들어 요.
- 전우익,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중에서

그렇습니다. 자연과 역사와 민심을 거스르는 참된 삶에 대한 고민은커녕 약속마저도 아주 쉽게 저버립니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술자리의 약속도 약속’이라고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하는데요. 그들은 버젓이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서 한 약속마저도 완전히 깔아뭉개버리는 짓을 아주 능수능란하게 해댑니다. 그들에게 있어 대중이나 국민은 그야말로 그들의 발 아래 있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들인가 봅니다.

그들, ‘맨 위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아래를 보지 않습니다. 더 높은 위만 바라보며 발아래 쫓아오는 놈들을 발길질해댈 뿐입니다. ‘알맞게 나누려는 사람들’의 것도 약탈을 해서 자기 것으로 챙겨야만 직성이 풀릴 것입니다. 소유는 더 큰 소유를 낳는 것이니까요. ‘탐욕과 탕진’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유 습성대로 굴러갈 뿐인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참된 삶의 기조인 이 ‘소유’의 개념부터 달리 체득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되새겨 생각해볼 일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의 소유물은 그 일에 방해가 됩니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 험한 시대에서 ‘참된 삶’의 의미는 뭘까요? 아무리 돈이 많게 잘살아봐야 누구만 못할 거고, 아무리 권력 있게 잘살아봐야 또 누구만 못할 거 아닙니까? 아니, 그들은 욕을 무수히 쳐 들으니까 더 오래오래 잘살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방식, 그들의 이념대로 말입니다. 아니, 그들에게 무슨 이념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이념이라기보다는 ‘더’ 잘살기 위한 경쟁의 논리 정도일 겁니다. 그들에게는 ‘더’만 있을 뿐이지 ‘더불어’는 없습니다. 항상 빠르게 정보를 가져야 하고 그 정보의 중심에서 자신의 값을 최대한 높여야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불어’라는 말은 경쟁에서 뒤쳐지게 하는 패배의 말에 다름 아닐 겁니다.

그들은, 그들이 지배하는 이 세계의 현실은 이런 저의 ‘더불어’ 살려는 소박한 꿈을 용남하지 않으려는 듯합니다. 현실은 참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참된 것을 능멸하고 있습니다. 그 참되지 않은 것들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이 세상을 농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참된 삶을 위하여 참되지 않은 것들과의 매정한 결별을 위해 부단히 애써나가는 것만이 참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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