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대학생들, '불턱'에서 평화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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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학생들, '불턱'에서 평화를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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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환경과 섬 연구소, 우도서 '평화 불턱법정' 개최
한-중-일-폴란드 대학생들 '세계평화' 주제 열띤 토론

제주어로 '불을 피우는 자리'를 뜻하는 '불턱'. 돌담을 둘러 만든 공간으로, 1980년대까지 해녀들이 옷을 갈아 입거나 물질에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는 곳으로 쓰였다.

지금은 불턱이 있던 자리에 현대식 탈의장이 들어서면서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제주도내 해안가 마을 곳곳에는 불턱이 제주 해녀문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19일 오후 12시40분 제주시 우도면 삼양동에 위치한 불턱.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폴란드 등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이 이 불턱을 찾았다.

평화불턱법정 참가자들이 우도 불턱을 둘러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평화불턱법정 참가자들이 우도 불턱을 둘러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평화불턱법정 참가자들이 우도 불턱을 둘러보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그들은 제주대학교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소장 고창훈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가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후원을 받아 개설, 운영한 '제5회 세계환경과 섬 하계대학'의 학생들로, 내리쬐는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턱 주위를 둘러보며 불턱의 모습을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

해녀문화를 상징하는 '불턱', 그리고 '환경'을 공부한 이들이 조우한 까닭은 무엇일까.

불턱 탐방에 이어 오후 1시께 이들은 우도면사무소를 찾았다. 이 곳에서 제주대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 세계섬학회가 주관한 세계환경과 섬 하계대학의 '제4회 세계 평화불턱법정 결선대회'가 열렸다.

평화불턱법정은 '세계환경, 평화, 해양의 평화섬에서의 만남'을 주제로 해 마련됐다. 제주의 불턱 문화를 브랜드화하고, 이를 학생들의 환경 교육과 연계해 섬지역의 평화를 되새겨보는 취지다.

제주대와 카이스트, 일본 호카이도 대학의 학생들이 4개팀을 꾸려 참가했다. 

불턱법정은 각 팀별로 하나의 주제를 영어로 발표한 뒤, 이 주제를 놓고 참석자들과 토론을 벌이는 방식으로 해 진행됐다.

발표 과정과 방법,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승팀을 가리는데, 심사위원으로는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무츠사미 쿠마란 교수, 일본 호카이도 대학의 요시다 쿠니히코 교수, 제주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안나 힐티 박사 등이 참석했다.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 <헤드라인제주>

본격적인 발표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불턱법정을 주관한 고창훈 교수는 "세계환경과 섬 학회의 틀 속에서 세계의 학생들이 환경, 평화를 주제로 해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돼 뜻 깊다"며 "이 자리를 통해 불턱문화를 브랜드로 키우고, 환경 교육과도 연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일본 소수민족과 미국 원주민 고통 덜어줘야"

첫번째 팀으로는 호카이도 대학팀이 나섰다. 아카네 키도 학생은 '미국 원주민과 인디언 보호구역의 역사'를 주제로 해, 일본 소수민족인 '아이누'와 연관지어 발표했다.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에서 일본 호카이도 대학팀이 발표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그는 "미국을 방문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대부분이 아프리카, 스페인계, 중국인 등과 피가 섞인 혼혈 미국인들이었다"며 "미국 원주민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을 단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디언 보호구역 제도로 인해 고통 받은 삶을 살아야 했던 미국 원주민을 보며 일본 소수민족인 '아이누'를 떠올렸다는 그는 "아이누들은 그들의 땅, 독특한 삶의 방식, 언어, 전통적인 의식을 일본인 이민자에 의해 빼앗겼다"고 말했다.

"미국 원주민의 슬픈 역사를 알고 나서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들의 땅 뿐만 아니라 문화, 언어가 모두 빼앗기고 파괴됐는데 정부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문제가 조금씩 풀리고는 있지만, 충분하지 않은 게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선 이들 원주민에 대해 충분한 재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더불어 다른 시민들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며 "그것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해군기지는 누구 좋으라고 짓나? 환경 보전이 중요"

다음으로 발표에 나선 제주대 팀(정창훈, 김지희, 임다빈)은 '세계 환경수도와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에서 해군기지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제주대팀. <헤드라인제주>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에서 해군기지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제주대팀이 강동균 마을회장의 인터뷰를 보여주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헤드라인제주>

정창훈 학생은 "미국이나 남한, 북한, 일본, 중국 누구도 또 다른 군사적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지난 세기 전쟁의 아픔을 아직까지 치유하지 못해 분단 국가로 나뉜 한국은 특히 그렇다"며 말문을 뗐다.

그는 "그런데 정부는 해군기지를 건설해 안보를 강하게 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며 "그러나 해군기지는 결국 강정마을의 해안 관경을 파괴하고, 농부나 해녀, 어부들의 삶의 환경을 파괴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다빈 학생은 "해군기지가 굳건한 안보를 가져다 줄 것이라 하고 있지만, 역사가 말해주듯, 군사력은 결국 섬에 피해를 가져오고 지역주민들을 떠나게 만들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군기지가 꼭 필요한지 △강정마을이 최고의 선택지였는지 △강정마을 선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졌는지 △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 있는지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 등의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호카이도 대학의 요시다 쿠니히코 교수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이 해군기지를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임다빈 학생은 "일자리와 경제적 이유를 들고 있으나, 우리는 제주의 보물과도 같은 강정마을의 환경을 지켜야 한다"며 경제적 이익보다, 환경 보전에 무게를 뒀다.

이어 호카이도 대학의 쿠즈마사 카쿠모토, 리 웬징, 히 티안홍 학생은 '일본의 중국 침략에 따른 배상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 "4.3사건에 미국 개입 정황 뚜렷...미국 사과해야"

끝으로 제주대와 카이스트 학생들로 구성된 네 번째팀(김성구, 강수한, 정주현, 신희선)은 '제주4.3사건의 비극과 미국'을 주제로 해 발표에 나섰다.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에서 제주대팀이 4.3사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에서 제주대팀이 4.3사건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이들은 4.3관련 자료를 조사 분석한 결과, 미국이 군사기지로서의 제주 가치를 높게 본 점, 미국이 4.3사건 당시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 비상경비 사령부를 설치한 점, 그리고 비상경비 사령부로 인해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점 등을 제기했다.

이를 비춰볼 때 4.3사건에 미국이 개입했기 때문에 미국이 이제라도 제주를 상대로 공개 사과에 나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미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1993년 하와이를 불법적으로 전복시킨데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하와이 사람들에게 사과했고, 호주의 케빈 러드 총리가 2008년 백인들이 어보리진(호주 원주민)을 박해한데 대해 사과한 사례를 제시했다.

김성구 학생은 "이처럼 과거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사과한 전례가 있었던 만큼, 4.3에 대한 개입 정황이 분명한 미국은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며 "더불어 미국은 이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침묵을 지킨다면 미국은 결코 세계 평화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라며 "4.3에 대한 사과는 세계 평화와, 4.3사건으로 고통받은 이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화'를 주제로 한 네 팀의 발표가 끝나고, 참가자와 청중들의 투표를 모아 1위 팀을 가렸다. 1위는 첫 번째로 발표한 호카이도 대학 팀에게 돌아갔다.

순위가 나뉘기는 했으나, '평화'를 고민하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에게 순위는 중요치 않았다.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에서 안나 힐티 박사가 발표에 대해 총평하고 있다.<헤드라인제주>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에서 1위를 차지한 일본 호카이도 대학팀.<헤드라인제주>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를 주관한 고창훈 교수.<헤드라인제주>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의 평화불턱법정.<헤드라인제주>

고창훈 교수는 "세계 평화의 섬 제주에서 섬 속의 섬 우도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학생들의 생각 하나하나가 모아질 때 비로소 세계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며 법정 폐막을 알렸다.

한편 세계환경과 섬 연구소는 내년에는 세계자연보전총회(WCC)와 연계해 불턱법정의 규모를 우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파도, 법환동 불턱 등지로 넓혀 나갈 계획이다. <헤드라인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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