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엔 너무나 고귀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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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엔 너무나 고귀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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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25) 개천에서 용 나자!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셰익스피어, 「존 왕」 5막 2장)


제주작가회의 김모 형과 술을 마시다가 ‘우리 집 아이들은 공부를 잘 못해서 다행이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형은 며칠 후에 바로 시 한편을 써서 보내왔습니다.


우리 딸 애비 소망대로
공부 잘 하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한
김경훈의 말은 맞다
그도 썩 잘 하진 못했지만
인간적으로 살고 있다
제대로 된 시인도 됐다
- 김모 형의 시,「누가 누가 못하나」전문

그런데도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집안일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고 자기공부가 최우선인 줄로만 압니다. 감귤밭에 데리고 가서 일을 시켜도 하는둥 마는둥입니다. 힘든 일 어려운 일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어쩌면 경멸하는 것도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요즘 아이들 거의가 그럴 거라고 미루어 짐작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먼저 해야 나중에 스스로나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일년에 한 번씩 농촌이나 공장에 가서 일을 하도록 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서 땀 흘려 일을 하고 노동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교육 커리큘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헨리 D 소로우는 「소로우의 일기」에서 ‘교육이란 자유롭게 굽이치는 시내를 밋밋한 도랑으로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아이들 개개인의 창의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인 전문기계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아이들이 그나마 자기 시간이라는 것을 가져도 대부분을 연예와 게임과 통신 자본가들에게 저당잡혀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에게 자기 영혼이라는 것이 들어설 틈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 딸들이 이럴진대 소위 있는 집안 아이들은 어떨까요? 그야말로 공부만 하다보니 사회를 제대로 알기나 할까요?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알기나 할까요? 90%의 아이들 위에서 군림하는 상위 10%의 아이들, 제주의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이 아이들에게는 여름에도 냉방 쾌적한 공부방을 제공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찜통 더위 속에 버려두고 있지 않습니까?

제주가 이 정도인데, 소위 강남 공화국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부의 대물림은 교육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이제는 외교부 장관 아이들은 외교부로 특채되는 직장의 대물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명문이라는 학교는 부모의 재력을 보고 학생을 선발하니,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사어死語가 되고 만지 오래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알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서 더 뺏어낼 게 없나고 실눈을 뜨고 궁리하는 분들이 법을 잡고 권력을 잡고 금력을 잡고 그 모든 힘을 대물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빌붙어서 살아남으려는 분들이 또 밑에 하부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니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썩어빠진 천박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조장하고 주입하는 것이 이 시대 교육의 역할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가정교육이 문제겠는데요.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힘든 일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의 갸륵한 입장은 결국,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서 그 위에 올라서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스스로 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로버트 풀검은 그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제대로 아는지, 실천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가 보기에는, 우리의 성장과정은 유치원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어겨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배웠으면서도 실제로는 ‘친구와 경쟁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참되게 살자’고 배우지만, '참되게 살지 않아야‘ 더 출세하고 더 높은 곳에 먼저 오르게 되는 경우를 너무도 흔하게 보아왔습니다.

누가 누가 잘하나
유치원에서 배우는 이 한 마디에
코피 터지는 경쟁의 이치가 담겨있음을
안 것은 커서도 한참 뒤였다
공부도 기술도 싸움도 시詩마저도
아무 것도 잘하는 게 없는
난 그 말이 평생 미웠다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단 하나의 깨달음,
칭찬은 못하는 이들이 더 누려야 할 특권이다
- 김모 형의 시,「누가 누가 잘하나」전문

현재의 교육은 학생들을 좋은 기업에 입사해 돈 많이 벌도록 하는데 집중돼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딸들에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지 않습니다. 누굴 이기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간세농법인 저는, 교육도 방치교육입니다. 제주도 말로 ‘두르쌍내부는’ 겁니다.

다만, 자기 영혼을 가지고 자기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상위 10%의 들러리가 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기를, 참된 삶을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경쟁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천에서 지렁이도 나오고 이무기도 나오고 용도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각자 어느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충복이나 도구’가 되지 않는, ‘너무나도 고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지시를 받기에는,
또 어느 잘나가는 재벌의
쓸 만한 충복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우아한 막창」,「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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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을 기다리며 읽다 2011-07-14 11:52:32 | 112.***.***.165
시인님의 글을 잘읽고 있는 열혈 팬입니다. 우리가 자라날 땐 부모님들이 두르쌍내불어도 정말 잘 클 수 있었는데... 저는 좀 더 고상한 말로 방목하듯이 자식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야생성이 부재하는 현실,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확신으로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