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공사중단 강력 촉구 특별결의문 채택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귀포항쟁을 주도했던 당시 20대 청년들.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그들은 경찰의 삼엄한 원천봉쇄망을 뚫고 시민항쟁을 이끌어냈다.
'독재타도'의 함성으로 그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서귀포항쟁은 6월항쟁이 제주에서, 그리고 국토 최남단인 서귀포에서까지 촉발되면서 마침내 독재정권으로 하여금 무릎을 끓게 했다.
서귀포시 선비치호텔 연회장에서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당시 활동했던 주역들이 자리를 함께 하며 24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항쟁의 의미를 되새겼다.
당시 서귀포지역 시위를 주도하는데 함께 참여했던 김미리씨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김창수씨의 경과보고, 이영일 준비위원장의 인사말, 위성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의 축사 등의 순으로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항쟁 당시 경찰의 원천봉쇄망 속에서 시위가 시작되기 직전의 긴장된 순간,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다 연행됐던 윤춘광 제주도의회 의원, 그리고 이석문 교육의원도 참석했다.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을 준비하다 여의치 않자 독자적 성명을 냈던 고창훈 제주대 교수를 비롯해 고성화 한민족통일 제주도노인회장, 양금석 고문, 고상호 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제주연합 공동의장, 김성용 서귀포농민회장, 김옥임 민주노동당 서귀포위원장,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지경호씨와 함께 투옥됐던 현맹수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중 김옥임씨는 당시 제주대학교 졸업을 일주일 앞둔 1985년 2월,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광양초등학교에서 열린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에 들어가 오옥만씨(현 국민참여당 최고위원), 장은심씨와 함께 반정부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이다 연행됐던 장본인이다.
뒤늦게 고창후 서귀포시장과 김용범 의원도 참석해 인사를 나눴다.
그는 "그러나 6월 민주항쟁의 승리를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이 자리가 가슴 한편에 채 가시지 않은 응어리가 우리들 마음을 슬프게 한다"며 "그것은 바로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해군과 정부당국의 반민주적인 태도에 오는 분노와 아직도 진정한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구나 하는 자괴감에서 오는 마음의 아픔"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초 함께 자리를 하기로 했던 강정마을 주민들이 현지 상황 관계로 참석하지 못한데 대해 아쉬움을 피력했다.
6월항쟁 당시 학생운동진영에서 활동했던 위성곤 의원은 "6월항쟁 당시 대학생으로 활동했는데, 오늘에 이르러 6월항쟁의 정신은 대학생들의 등록금 반값 투쟁으로 이어지면서 의미를 더한다"고 말했다.
행사 마지막에는 이날 민주주의 밤 행사 참가자들의 '특별결의문'이 채택됐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에서 "강정 해군기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인 각계각층의 공사중단요구마저 묵살하고, 군사적전 펼치듯 밀어붙이는 해군과 정부당국은 이성을 잃었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지역주민과 멱살잡이나 하는 해군은 더 이상 국민의 군대가 아니다"며 "이제 우리는 6월민주항쟁을 통해 사회 곳곳에 확장되던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 출범과 더불어 위기에 처해 있음을 직시하고 강정 해군기지를 밀어붙이는 해군의 태도 역시 이와 문과한지 않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정부와 해군당국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해군과 정부당국은 국책사업이라는 미명하에 밀어붙이는 군사기지 건설 공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선(先) 공사중단' 조치 후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책을 지역주민과 도민들에게 제시하라는 촉구도 이어졌다.
한편 25일 오후 6시에는 서귀포 올레매일시장 어린이놀이터에서 '서귀포6월민주항쟁 기념상징물 제막식'이 마련된다.
이곳 어린이놀이터는 24년전 시위가 처음 촉발된 상징적 장소다. 이곳에 당시 항쟁의 뜻을 기리는 기념상징물이 세워지는 것이다.
이 기념상징물은 24년전 대학교가 없는 서귀포에서 1000여 명의 서귀포 청년들과 시민들이 벌였던 민주항쟁의 뜻을 기리기 위해 기념물 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윤춘광)가 제작, 당시 투쟁 현장이었던 서귀포올레매일시장 어린이놀이터에 세워지면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