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폼 잡지 않는 '우아한 막창'의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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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폼 잡지 않는 '우아한 막창'의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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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 시집 <우아한 막창> 발간

"이를테면, 불빛 없는 곳에서 구워 먹었던 새까맣게 탄 돼지고기,
목숨걸고 썰어 먹었던 복쟁이회,
제사 음식 남은 거 이것저것 다 쓸어 모아 끓인 잡탕찌개 같은 것, 농사지을 때 점심 대신 먹었던 물외 두개,
라면 살 돈도 떨어져 눈물로 말아먹던 누룽지,
또는 그냥 밥, 국, 반찬.
이런 것들이 모두 나의 시(詩)다."

시인 김경훈이 시집 <우아한 막창>을 펴냈다.

김경훈 시인 시집 <우아한 막창>. <헤드라인제주>
식욕은 대지를 삼키고
사막을 토해내지만

배설은 폐허를 삭혀
존재의 숲 일군다

낮추되 비굴 않고
비우되 과시 않는

도도한 저자세의
우아한 영구적永久的 혁명

어떤 누구도
막창 속엔 똥이 들어 있듯

어느 누구도
막창 먹을 땐 똥폼 잡지 않는다


김 시인을 일컬어 겉으로 빛나지 않는 시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정말 '똥폼'잡지 않고 박제되지 않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이번 <우아한 막창>은 그런 평에 걸맞는 시들로 엮어졌다.

고관대작들이 읽기에는 해악(害惡)일 수도 있으나 필부필녀에겐 읽는 즐거움을 주는 그런 시. 그러면서도 '언어유희'가 아니라 '언중유골'의 시.

우아한 막창은 퇴근 후 시인으로 돌아와 다시 세상을 비트는 선전선동의 슬로건이다.

'가름도새기 가름을 돌다', '취하고 미치고', 허겁지겁, 헐레벌떡, 허우덩썩', '부대찌개론論', '한라산 소주 안 시원핸 걸로', 이레 뵈려봐!', '술의 항변' 등의 시는 이런 평에 쏙 들어맞는다.

동문시장에서 산 바지 1만원
오일장에서 산 개량한복 윗도리 1만2천원
마트에서 산 운동화 1만4천5백원
허리띠 6천원
빤스 3천원
난닝구 2천원
양말 1천원

내 몸을 걸치고 있는 표피의 값은 4만8천5백원이다
그건 나에 의해 규정지어진 외부의 평가 값이다

하지만, 옷을 주워다 입고 기워서 입는
전 선생에 비하면 나는 아직 부르주와지다

유행을 따르면 자만심이 커지고 동료의식은 줄어든다
나의 값은 더욱 싸져야 하고 내 속은 더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 '나의 값' 전문


여기 강아지 데려가신 분
잘 키우세요
먹지 말고
이 개도둑놈아!
  - '점유이탈물횡령죄를 묻다' 전문

승국 형은
'가끔' 시인,


덕환 형은
'거의' 시인,

게믄 난?

형은
'반만' 시인!
 - '강호진 식의 시인 판별법' 전문

말 많기로 소문난 진웅이가, 죽어 나무 아래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나무는 무슨 죄냐? 너 말 다 들어주다간 나무도 중이염 걸리겠다!"
"나무도 나와 말하다보면 심심허지는 않헐 거 아니우꽈?"

"나무 하나 새로 심는 게 좋겠다. 나무도 적응기간이 필요하니까."
"아, 좋수다. 새 인연으로 평생 죽어서까지 대화할 수 있으니까."

악수를 청하곤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 나무 그림자 길게 걸렸다
  -'진웅이의 수목장(樹木葬)' 전문


소위 '딴따라'의 후배라 자칭하는 한진오씨는 시인을 가리켜 "삽질하는 세상을 거부하다"라고 표현했다.

"지난 날 총질의 아련한 추억을 영원히 파묻기 위해 삽질과 세뇌를 감행하는 이들과 그들이 던져놓은 '덤블랭이' 토막에 곧 죽을 줄 모르고 모여드는 '지름깅이'들이 있는 한 형님의 시는 그들의 거룩하신 삶에 대한 찬영과 기도로 충만할 것이다."

시인 김경훈은 "저급한 식탁의 언어가 아니라 우아한 막창의 배설인, 이 시집이 지친 사람들의 술 한 잔, 담배 한개비, 차 한 모금이었으면, 그들의 삶에 쌓인 상념들을 단 한 순간이라도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이라고 바람을 피력했다.

김경훈 시인.<헤드라인제주>
시인은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도서출판 각. 값 8,000원. <헤드라인제주>

  

<원성심 기자/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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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꾼 2013-10-23 09:34:24 | 175.***.***.128
데모할 껀수 없나....
데모하자, 데모해.....ㅋㅋㅋ

우아한 막창 2011-05-20 17:08:35 | 14.***.***.51
똥폼잡지 않고 진솔하게 써 내려간 시는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든다...우아하게.

푸하하 2011-05-20 16:52:44 | 211.***.***.50
양김진웅 시가 걸작이다
요즘 볼만한 글은 헤드라인제주가 최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