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캐스팅' 주민과의 대화..."뻔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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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캐스팅' 주민과의 대화..."뻔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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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한림읍 주민과의 대화, 부자연스러웠던 이유는?

25일 제주시 한림읍을 방문해 지역 주민과의 대화시간을 가진 우근민 제주도지사.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70여명의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제기된 건의사항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제주도의회 회기가 진행중이고 제주도정의 굵직한 현안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이러한 와중에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읍면지역에 눈길을 돌려 소통 창구를 마련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날 주민과의 대화 시간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우 지사는 발언 중간중간에 재미있는 예화와 농담을 섞어가며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게끔 대화를 곧잘 유도했다.

그러나, 너무나 평화로웠던 이날의 대화시간은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주민과의 대화'라는 타이틀이 다소 무색한 모습이었달까.

자리를 차지한 참석자들의 20~30%는 공무원이었고, 그 외 상석에 자리한 대부분의 주민들도 우 지사와 친분이 있거나 안면을 튼 이들이었다. 소위 말해 친 도정을 표방하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우 지사는 참석한 이들의 이름과 직책은 물론 무슨 직업을 갖고 있는지, 최근 근황이 어떻게 되는지까지 꿰차고 있었다. 심지어 가족사항이 어떻게 되는지도 거론할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제시된 의견들은 다소 무뎠다. 시작하는 자리에서 우 지사의 입으로 직접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한 '옛 관행'스러운 제안도 더러 있었다.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가 포인트다.

발표자도 직접 우 지사가 마이크를 쥐어준 이들이었다. "OO 회장도 한번 이야기해봐야지"라는 식으로 참가자들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작정하고 건의를 해야겠다고 나선 참석자는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사람만 더 짧게 이야기해봅시다" 코너에서 겨우 발언권을 얻은 협재리장 정도였다.

지역에 기반을 둔 행정은 좋다. 특히 우 지사는 6.2지방선거 당시부터 지역 네트워크를 살리겠다고 강조해 왔던 터라, 이를 활용하면 충분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강점이다.

하지만, 옛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가 아니고서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이날 대화시간에는 정말 힘들게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앞서야하지 않았을까.

단체장과 기관장들을 전면 배치시켜야 할 뚜렷한 명분도 없다. 진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라면 돼지 몇마리 키우면서 고생하는 농장주나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을 앉혔어야 하지 않나.

최근 제주시청 앞에는 꽹가리를 치며 제주시장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한림읍 주민이 있다. 길거리 노점상을 제주시가 철거해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제기하는 민원의 타당성을 떠나, 억울함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라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꽹가리를 쳐대는 주민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날 행사뿐만은 아니다. 매 해마다, 또는 매 분기마다 진행되는 방문일정도 사정은 비슷하다. 결국 뻔한 배역, 뻔한 스토리의 밋밋한 드라마를 본 것 같아 입 맛이 쓰다. <헤드라인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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