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삶을 양윤모 형에게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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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삶을 양윤모 형에게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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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12) 쓰다만 편지를 다시

윤모형께!

그 안에서도 여여(如如) 하신가요?

며칠 전, 그러니까 지난 4월 6일날, 지인에게서 ‘강정마을 양윤모 경찰에 연행 업무방해 혐의인듯’이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순간 속으로 ‘아이고, 이번에 제대로 가겠구나!’라고 겁이 덜컥 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형은 영장 실질심사 끝에 다시금 구속되고야 말았습니다.

사무실 일을 접고 당장 형에게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작심하여 실행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가 저녁에 술만 퍼 마셔대고야 말았습니다. 형이 연행되면서 탈진한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 안에서 단식까지 한다니 건강이 악화될까 심히 저어스럽습니다.

지난 4월 초에 출간된 「제주작가」 32호의 ‘강정에게 길을 묻다’라는 특집에 강정마을 해군기지 관련 글들을 싣기로 해서 준비를 했었습니다. 그때 교도소에 수감 중인 형에게 쓰는 편지를 저가 쓰기로 했는데 며칠 후 형은 석방되어서 글을 마무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석 달만에 다시 편지를 이어가려 합니다.

형이 강정마을 중덕 해안가 천막생활을 하면서부터 한달에 두세 번 주말마다 형을 만나러 가는 일정이 생겼습니다. 중덕사(重德寺, 중덕바당의 ‘천막’을 형은 이렇게 부르더군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고요. 감귤 선과장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형이 술을 산 날에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기도 했었지요.

‘문예소풍’이나 제주작가회의 시화전, 탐라미술인협회의 미술전 등이 중덕바당에서 열릴 때마다 형은 항상 거기에 있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해군기지의 부당성을 설명하며 혼신의 열정으로 형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원주민이 아닌 형은 동네에서나 사회단체에서도 오해를 받고 좀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나 봅니다.

강정마을 총회 자리에 앉아 있는 형을 보고 어떤 이가 ‘강정 주민이 아닌 이는 나가라!’고 했을 때, 형은 당당하게 ‘민증을 까’며 강정 주민임을 확인했습니다. 주소지가 강정으로 되어 있는 것을 저도 봤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강정마을 고 누구의 집에 얹혀사는 걸로 되어 있는데 거기가 무슨 본부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엔가 형은 난데없이 저에게, ‘경훈아, 나 선계를 보았져!’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저는 ‘성게? 붉은발말똥성게? 또 하나의 멸종 위기종?’ 이런 생각을 하는데, 형의 말은 ‘선계(仙界)!’였습니다. 중덕바당 천막생활을 하다 어느 해무(海霧)가 자욱한 날 새벽에 형은 강정 앞바다의 선계(仙界)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걸 본 이후로는 ‘절대로 이 바다를 떠나지 않겠다고 새삼 다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윤모형!

그곳에서도 선계(仙界)를 그리고 계십니까? 그 안에서도 또 해군기지 반대싸움의 당위성을 동료들에게 열변을 토하고 계신가요? 아마도 형은 그 선계에 대해서 동료들에게 자랑삼아 말하고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형은 지난 번에 들어갔을 때도 동료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형에게 ‘독립투사’라는 별명을 붙여주더라며 웃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양윤모 영화평론가. <헤드라인제주>

공公을 사(私)로이 여기는,
밭 갈 수고 없이 여물만 탐내는 경박한 소처럼
비우지 않고 채우려만 드는,
쉰밥에 달려드는 쉬파리 떼처럼
여름 뜨거운 햇볕에 단련되지 않은 열매는
스스로 낙과하거나 기껏해야 파치다
--중략--
혁명을 하자면 인민을 먼저 위하고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인가 불 본 나방 떼처럼
피도 없이 덤벼드는 오만과 탐욕의 배후는
- 졸시, 「이공위상(以公爲上)」 부분

그렇습니다. ‘여물만 탐내는 경박한 소’나 ‘쉰밥에 달려드는 쉬파리 떼’ 같은 이들만 판치는 이 경박한 시대에,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호치민은 이공위상(以公爲上)이라 하여, 혁명을 하자면 인민을 먼저 위하고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정신을 실천한 사람이 형입니다. 그런 의로운 삶을 형에게 배웁니다.

위의 시는, 별로 한 일도 없으면 제주4.3의 성과물만을 따먹으려고 ‘불 본 나방처럼’ 덤벼드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질타로 쓴 시입니다. 진정을 다해 일을 한 사람들은 결코 요란을 떨지 않습니다. 강정마을에도 제주4.3 당시 주민들을 많이 살린 의인(義人)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어 진창 속에서도 연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주4.3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공동체가 파괴되는 참상을 다시는 겪지 않기를 우리는 바랐습니다. 해군기지 문제에 있어서도 누구 하나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해군기지 찬반 문제로 이미 마을공동체는 또다시 붕괴되었습니다. 많은 수의 주민들이 벌금형을 받았고 이번에 형이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강정마을회의 성명서를 읽습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죽음을 각오하고 막아내고자 합니다’ 라는 말에 벌써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4.3영령들의 염원인 생명평화의 불씨가 제주 땅에서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에 동참해달라’는 눈물의 호소문은 제주4.3 당시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외침이 되어 저의 가슴을 후벼팝니다.

윤모형!

형은 이런 강정 주민들과 함께 부단한 싸움을 해왔습니다. 이미 형은 강정입니다. 형 안에 있는 강정이 당당하고 굳건히 싸우고 있는 한, 형 밖에 있는 강정도 그 싸움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형! 우선은 제발 건강하십시오. 조만간 모습 뵈러 가겠습니다. 「제주작가」 32호와 제주4.3관련 책자를 넣겠습니다.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2011년 4월에
경훈 드림

추신,
저번에 형이 선과장 일을 해서 저에게 술을 사줬던 것처럼, 저도 원고료가 나오면 형께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지요. 어서 영어(囹圄)의 몸에서 나오십시오!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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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킹이 2011-04-14 14:54:13 | 61.***.***.112
강정에 돌킹이 몇 방울만 보지마랑 세상 전체를 넓게 보벙 살라.
국가방위시설은 외부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한 우리집 울타리와 같은 꼭 필요한 사업임을 무사 몰람신고. 전쟁을 못 느낀 어린애 같은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국가방위에 해가되는 이념적인 글은 그만 쓰길.....

서국 2011-04-14 10:48:43 | 59.***.***.65
가슴이 먹먹해집니다.넉넉한 경훈이성의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일침이라 봅니다.윤모성이 몸은 갇혀있어도 영혼이 자유롭다면 우리는 밖에 있어도 갇혀있는 참반성이 요구되는 족속들입니다.윤모성의 건강과 경훈이선배의 건필은 빌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