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생에 '특별한 배려', 그것이 정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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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생에 '특별한 배려', 그것이 정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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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10) 박성문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정책기획팀

박성문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정책기획팀.<헤드라인제주>
어느 날 업무 차 대전을 다녀오기 위해 제주국제공항으로 가서 일행들과 합류 후 탑승수속을 하고 탑승구 쪽으로 이동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듯한 아이들이 교복을 갖춰 입고 한쪽 자리에 무리지어 있었다. 큰 가방을 하나씩 가지고 서 있는 것을 보니 수학여행을 다녀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학생들은 피곤해보였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여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학생들을 보다보니 나도 문득 내 고등학교 학창 시절 때가 생각이 났다.

나는 조그만 시골동네에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제주시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진학하기는 했지만, 모두 다른 반에 배정되어 자주 볼 수는 없었다.

학기 초라 같은 반 친구들과도 가끔 어색한 대화만 오갈 뿐 빠르게 친해질 만한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다리가 불편해서 걷는 것이 쉽지 않아 다른 친구들처럼 운동을 하면서 친해지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중 수학여행 신청서를 받게 되었다.

나는 기대를 하며 일정표를 보았지만 일정이 너무 많고 바빴다. 걸어서 이동해야하는 구간도 너무 많았고 길 또한 험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별것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여행이 아닌 훈련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시간 여유라도 많으면 모르겠지만 내 걸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게 느껴졌다.

학기 초, 서로 아직 이름도 다 모르는 친구들과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일 것이란 생각에 왠만하면 힘들어도 같이 참가해 보려고 했었다. 이런저런 고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신청서에 불참한다고 표시하고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친구들은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예상했던 것처럼 친구들은 모두 친해진 것처럼 보였다. 교실 분위기도 수학여행 이전에 비하면 훨씬 밝아졌다.

친구들 사이에는 많은 얘기들이 오고갔고 그사이에 껴서 얘기하며 나 또한 많이 친해지기는 했지만 수학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할 때면 말수가 적어지고 왠지 소외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 학창시절 얘기를 할 때면 수학여행 때 얘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곤 한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추억들을 떠올리면 누구나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친구들의 추억을 나만 빠져있다는 느낌에 아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교내 교과활동에서도 이러한 일들은 많았다. 학생들에게 제일 좋아하는 시간 뽑으라면 대부분 체육시간을 뽑을 것이다.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수업만 듣다가 탁 트인 운동장으로 나와 친구들과 운동을 하며 쌓였던 스트레스와 긴장감에서 해방되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체육시간은 오히려 더 긴장되고 답답한 시간이었다. 텅 빈 교실을 지키고 있거나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 모두가 참여하는 수업에서 혼자 그 앞에 앉아 있을 때의 창피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수행평가라도 보는 날이면 더 걱정이 앞섰다. 보통 수행평가하는 운동은 달리기, 줄넘기 등의 운동들이다. 누가 보기에도 다리가 불편한 내가 소화하기엔 힘든 운동들이다.

시도한다고 한들 배점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 할 것이다. 동등한 경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체육활동에서 나는 늘 구경꾼이었고 가만히 있다가 선생님께서 주시는 점수에 만족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넌 가만히 있어도 선생님께서 점수 주실거니까 좋겠다!”

선생님께서 기본점수보다 좀 더 높은 점수를 주시긴 하셨다. 몸이 불편한 나를 배려해서 주신 점수겠지만 감사하다는 마음 한켠에 불편한 맘이 있었다.

마치 내가 특별한 사람인냥 그냥 점수를 받았다는 생각에 친구들의 눈치를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점수의 배려가 아닌 기회의 배려가 있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또는 시도해볼만한 기준에서 친구들과 동등하게 경쟁하여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거나,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내가 스스로 받아낸 점수에 떳떳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의 한 부분이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학창시정을 보내고 있을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교외.단체활동에 참가를 못한다던지 아니면 체육시간에 활동을 못해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고, 하고자 하는 의욕만은 누구보다 높을 것이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에 맞춰진 기준에 맞춰진 내용으로는 참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참여와 포기 중에 선택하라기 보단 그냥 포기하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포기하는 순간 그 수업 및 활동에서 철저히 배재되어 버린다.

장애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참여하는데 있어서 많은 돈이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외.단체활동을 나갈 땐 활동보조를 지원, 수행평가의 경우 장애유형에 따라 참여가 가능한 내용으로 바꾸거나 평가과제를 여러 개를 두고 장애학생들이 선택 참여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또 배점 기준에서는 기준을 낮추어 장애학생들도 다른 학생들과 대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바꾸어주면 참여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학생들이 바라는 것은 과정을 무시한 결과의 배려가 아니라 과정의 배려를 통한 공평한 기회 제공인 것이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학교진학을 포기하고 또는 학교생활 내에서 이루어지는 소풍, 수학여행, 체육활동 등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좌절감과 실패감을 심어주기보단 모두같이 할 수 있게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동등한 기회를 줌으로써 자신감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곳이야 말로 모두가 원하는 학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헤드라인제주>

<박성문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정책기획팀>

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장애인인권포럼 심벌마크.<헤드라인제주>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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