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 시(詩), 가슴앓이는 누가 풀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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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시(詩), 가슴앓이는 누가 풀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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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11>총리의 시(詩)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거기에 안개까지 자욱하였습니다. 제주4.3 63주년 위령제 날 말입니다. 일기예보로는 오전에 조금 내린다던 비가 하루 종일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 전날과 그 다음 날은 날씨가 아주 맑고 포근했습니다. 유독 위령제 날 날씨가 그런 걸 보고 어떤 이는 영령들께서 통곡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정말로 영령들께서 슬퍼서 그런 날씨를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날의 날씨는 영령들께서 분노하신 것입니다. 슬퍼서 흘린 눈물의 비가 아니라 분노해서 내지른 통한의 눈물이고 한숨입니다. 영령들께서는 당신들의 마음을 그 날씨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의미를 졸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냥 슬퍼한다고만 여기고 있습니다.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라고 슬픔 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고 노무현 대통령이 영령들과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했던 그날의 위령제 날씨는 전에 없이 좋았었습니까? 그날만은 왜 영령들께서 슬프지 않고 화창한 마음을 표현하신 것입니까? 영령들께서도 모두 작금의 현실을 읽고 있습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그때 당신들의 마음을 그것이 날씨든 아니면 다른 어떤 표상이든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제대로 영령들을 위무하는 행사여야 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분들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정성을 다해서 행사를 준비하고 조직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제주4・3을 바라보는 현 정부의 시각 때문입니다. 단언하건데 지금 정부는 제주4・3에 대해서 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 위령제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가지고 온 선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4.3사건 제63주기 희생자 위령제 <헤드라인제주>
현 정부의 제주4・3에 대한 홀대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닙니다만,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위령제에 참석한 김황식 총리의 추도사를 아무리 뜯어봐도 제주4・3의 국가 추념일 지정이라든지 뭐 하나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없습니다. 대신 다른 자리에서 그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영리병원 도입에 대해서 아주 확실하고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제주4・3영령들께서 죽어가면서 본 세상이 이런 세상입니까? 군사적인 폭력과 자본의 독점만이 만연한 이런 세상을 원하셨습니까? 고운 바다를 매립해서 해군기지를 만들고 대자본의 이윤을 위한 병원을 지으라고 그래서 군산복합체의 국제자유도시 제주특별자치도를 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취임 후 6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제주를 방문한 김황식 국무총리가 제주 예찬 시(詩)를 쓰고 낭독해서 제주도민들에게 ‘깜짝 선물’을 했다고 합니다. ‘시(詩)를 소개한 김 총리는 "제주의 문제가 국가의 과제이고, 국가의 문제가 제주의 비전"이라며 "대한민국과 제주는 하나인 만큼, 앞으로 이런 생각으로 제주와 관련된 국정 과제들을 챙겨나가겠다"고 말했다’<헤드라인제주>고 합니다.

총리의 일에 대해 일개 범부인 저가 이렇다 저렇다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 ‘시(에 대해서는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 하면 저는 시(詩)를 좀 쓰는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시(詩)를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자유영역에 해당됩니다. 다소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지라도 그것 또한 시인의 직업병일 뿐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그 시(詩)를 봅시다!

웅혼한 대륙을 달려온 반도의 끝자락
푸른 바다를 넘어 우뚝 솟은 한라의 영봉
그 아래 펼쳐진 우리의 삶이 낙원의 삶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제주를 그저 우리 대한의 사랑스런 막내라고 하는가
누가 그저 제주가 없었더라면 대한이 얼마나 허전했으랴 하는가
아니다
제주는 저 넓은 대양을,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파수꾼이다, 얼굴이다

이른 봄이면 서귀의 꽃소식으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늦가을이면 한라 영봉의 눈소식으로 우리를 숙연케 하는 제주
제주가 노래하면 반도도 노래할 것이오

제주가 가슴앓이하면 반도도 가슴앓이할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는 희망・평화・번영의 섬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희망과 평화와 번영의 땅이기 위하여
- 김황식 국무총리의 시

총리가 시(詩)를 쓰는 분인지 또는 어릴 적부터 문학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뭐라 말을 하진 못하지만, 어쨌거니 위의 시는 누가 봐도 제주를 예찬한 시(詩)로 읽힙니다. ‘제주가 노래하면 반도도 노래하고 제주가 아프면 반도도 아프다’고 하면서 ‘제주의 삶이 낙원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가 없었더라면 대한이 얼마나 허전했으랴 하는가’라는 시행을 뜯어 봅시다. 제주가 없어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제주4.3 당시 제주도민을 다 없애고 대신 다른 지역 사람들로 채운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4.3입니다. 제주민이 없는 제주도는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대한민국을 ‘제주사람들의 살과 피와 뼈로 공구리 된 나라’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대한민국을 위해서, ‘대한민국이 희망과 평화와 번영의 땅이기 위하여’ ‘제주는 희망.평화.번영의 섬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주도가 자체로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복속된 섬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풍깁니다. 그래서 영리병원 도입을 통해서 제주가 희망.평화.번영의 섬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대한민국의 희망과 평화와 번영이 된다는 논리에 닿습니다.

‘제주는 저 넓은 대양을,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파수꾼이다, 얼굴이다’라는 시행을 보면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자연스레 연상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또한 ‘대양 해군’이라는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릅니다. 남방해역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써의 제주 해군기지 설치라는 당위성이 은연중에 비쳐지고 있습니다. 

'4.3유족 및 관계자 간담회'에서 김황식 국무총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살 듯 자신의 시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생활하기를 희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 못할 때 마음이 아프고 몸에 병이 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잘 살기 위해 살아나가는 과정이 곧 시詩입니다. 그래서 좋은 시는 좋은 삶의 바탕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시(詩)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총리가 제주에 대한 예찬을 시(詩)를 통해 표현한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시(詩)로 예찬한 제주에 올 때에는 뭔가 제대로운 선물을 가지고 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주의 아픈 역사인 4・3에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해법과 대안을 가지고 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의 사랑스런 막내’에게 해군기지와 영비병원이라는 일방적인 우격다짐만을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그래서는 위령제 내내 햇빛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제주4・3영령들의 눈물과 한숨이 매서운 비바람이 되어 몰아칠 뿐입니다. 총리의 시(詩) 그대로 ‘제주가 가슴앓이하면 반도도 가슴앓이할 것’입니다. 그 가슴앓이를 풀어줘야 하는 것이 정부의 몫입니다. 그래야 ‘제주가 노래하면 반도도 노래할 것’입니다.<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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