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둥이' 순경...4.3의 '의(義)'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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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둥이' 순경...4.3의 '의(義)'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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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10> 4.3의 의인(義人)

바야흐로 4・3주간입니다. 제주4・3 63주기를 맞아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마다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넘실대는’ 그런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희구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4・3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고정되다시피한 문구를 담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제주4・3의 의미를 되새길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화해나 상생’, ‘평화와 인권’의 의미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개념들은 제주4・3특별법 제정 전후로 형성된 하나의 담론(談論)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항쟁론’이나 ‘폭동론’이 아니라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개념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롭게 정립해야 할 제주4・3의 담론은 바로 ‘의(義)’입니다.

옳은 일을 옳다고 하는 것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하는 것
그것이 의(義)다

그 중간은 없다

옳은 일을 옳지 않게 하는 것들에 맞서
옳지 않은 일을 옳게 만들어간 죽음들
그것이 4·3이다

그래야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의(義)다
- 졸시, 「의(義)」 전문

그 의(義)를 실천한 사람들이 제주4・3평화기념관 의인 코너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집단광기 속의 의로운 바람’ 코너에 ‘대량학살이라는 광풍이 몰아치던 집단 광기 속에서도 무고한 희생을 막으려 온몸을 던졌던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을 막기 위해 힘썼던 독일인 ‘쉰들러’가 있었다면 제주4·3사건 때에는 ‘김익렬 연대장’과 ‘문형순 경찰서장’이 있었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독립군 출신의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6·25전쟁 직후 예비검속된 주민들에 대한 군 당국의 학살 명령을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이라고 하며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성산면 지역의 예비검속자들만은 거의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문형순 서장은 모슬포경찰서 재직 때에도 무고한 희생을 막아 모슬포에 그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북지십년 만주십년 경찰백지 일자무식 문도깨비 문형순!’
어느 경찰 출신은 문형순을 그렇게 음률을 맞추어 기억했다

왜 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라는 거야?
안 돼!

광복군 출신으로, 친일 군경과 맞짱 뜰 수 있는 배짱과 용기

너희 놈들이 하는 짓거리가 이게 뭐야?
부당함으로 불이행!

말년엔 여느 독립 운동가들처럼 쓸쓸하게 죽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지십년 만주십년 경찰백지 일자무식 문도깨비 유방백세(流芳百世) 문형순!’
- 졸시, 「부당함으로 불이행」 전문

문형순 경찰서장의 묘.<헤드라인제주>

제주4・3평화기념관의 의인 코너에 등재되지 않은 또 한 분의 의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지미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경찰입니다. 제주4・3 당시 조천읍 신촌리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그 상황을 짤막하게 연극 대사로 표현해 봤습니다.

주민 1 : 무장대들이 신촌리에 습격와서 동산에서 막 연설을 하더라고. 연설을 한 후에 마을에 서 식량을 털고 가버렸어. 그 다음엔 함덕리에 있는 9연대 군인들이 왕창 달려들었어.

주민 2 : 군인들이 주민들을 신촌국민학교 뒤에 있는 밭으로 집합시켰어. 기관총 탁 매가지고 다 죽이려고 한 거야.

주민 3 : 그때 신촌리에 파견온 순경이 었었는데 육지분이라. 목 주위 얼굴에 기미가 많이 있 어서 지미둥이라고 불렸어. 그 순경이 기관총 앞에 딱 막아 선거라.

주민 4 : 그 순경이 하는 말이, ‘우리 총 들은 순경들도 무서워서리 폭도들에게 대항을 못했는 디, 집에서 잠자는 주민들이 어케 폭도들과 대항할 수 있갔습네까?. 우선 나부터 죽여 놓고. 이 사람들 죽이라요!’

주민 5 : 그렇게 하니까 군인들이 기관총을 치우게 된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신촌사람들 도 북촌리 사람들처럼 수백명이 한꺼번에 죽을 뻔 했어.

주민 6 : 우리 어릴 때 보면, 그 사람을 보며 ‘최주임님, 최주임님’ 하면서 제사 때는 제사 떡 안 가져갔던 사람 없어. 그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갔을 거라.

우리는 이 이야기들에서, 불타버린 억새밭에서도 끝내 살아남아서 다시 푸르게 새잎을 피워내는 억새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주4・3이 무참한 살육만의 역사가 아니라 희망과 상생의 역사가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명인 것입니다. 죽을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살려준 이야기들은 진흙탕 속에서 고운 연꽃처럼 피어,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주4・3의 정신인 의(義)를 구현하는 일은 바로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과 같은 의인’분들을 찾아내서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새기는 일부터 시작입니다. 또한 불의(不義)나 비의(非義)로 저지른 이들을 가려내어 제주4.3역사의 법정에서 속죄하게 하는 일 역시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상생’ 되고 ‘평화와 인권’이 구현되어 ‘다시는 이 땅에 제주4.3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의(義)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객원필진.<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 4.3 일본어 시집 「불복종의 한라산」도 최근 출간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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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댕이 2011-03-31 09:56:38 | 49.***.***.31
글이 노무 좋습니다 감동

서국 2011-03-31 09:15:25 | 119.***.***.181
항시 감명깊게 읽고 있습니다.어제 서천꽃밭 시는 국문과 까페에 올렸습니다.건필허십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