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의 전율, "아, 영령들께서 오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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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의 전율, "아, 영령들께서 오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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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 <8>산전야행(山田夜行)

네가 지금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그런 세상인가
우리가 목숨 바쳐
이루고자 했던
그 세상이 되었는가
그런 세상이라면 죽어서도
춤이라도 추련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 다시 시작하거라
그것이 나와
우리 제주도 인민들이
바라는 일이다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들을
헛되이 말아다오
졸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전문

지난 3월 12일 야간에 ‘이덕구 산전’에 다녀왔습니다. 제주4・3다큐를 찍겠다는 어느 미술작가 일행과 동행한 길이었습니다. 평일 낮에 올레꾼들로 붐비는 사려니숲길의 밤은 인적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그 적막한 고요 속을 아무 말 없이 걸었습니다. 발걸음 소리만 일행들의 귀에 스며들었고 멀리서 노루 울음소리나 들개가 짓는 소리만 적막을 깨고 있었습니다.

‘이덕구 산전’은 속칭 ‘시안모루’라는 곳으로 제주4・3 당시 1948년 겨울부터 1949년 봄까지 봉개리 등의 주민들이 피신해서 지냈던 곳입니다. 이 겨울 동안 이덕구 부대가 이곳에 잠시 주둔했었고, 이곳이 이덕구 최후의 장소라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제4・3유적지 중에서 지명(地名) 앞에 인명(人名)이 붙는 경우는 ‘이덕구 산전’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덕구 산전’에는 거의 서른 번 이상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모두 아침이나 낮에만 갔다와서 이번 산전야행(山田夜行)은 설렘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낮길도 제대로 못 찾는 ‘알아주는 길치’인 저로서는 밤길이 여간 두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 두려움을 뒤로 하고 영령들께 어떤 형상으로든지 당신들의 모습을 드러내 주십사고 마음 속으로 빌었습니다.

산전의 움막 터에서 일행들과 조촐한 제를 지냈습니다. 절을 하고 음복을 하는데 움막 터 옆의 나뭇가지가 바람도 없는데 저절로 바르르 몸을 떱니다. “아, 영령들께서 오셨구나! 같이 계시는구나!” 이런 느낌에 저의 몸도 바르르 떨립니다.

주위는 여전히 고요하고 밤하늘엔 반달이 나지막히 떠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별들은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천연히 빛을 냅니다. 동화(同化)의 시간입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덕구 산전의 움막 터. <헤드라인제주>

우린 아직 죽지 않았노라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
내 육신 비록 비바람에 흩어지고
깃발 더 이상 펄럭이지 않지만
울울창창 헐벗은 숲 사이
휘돌아 감기는 바람소리 사이
까마귀 소리 사이로
나무들아 돌들아 풀꽃들아 말해다오
말해다오 메아리가 되어
돌틈새 나무뿌리 사이로
복수초 그 끓는 피가
눈 속을 뚫고 일어서리라
우리는 싸움을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노라
졸시, 「이덕구 산전」 전문

‘박박 얽은 그 얼굴 덕구 덕구 이덕구 장래 대장고심’, 이덕구! 제주4・3의 대명사이면서도 제주4・3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인정은 커녕 유족들이 희생자로 신고도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금기시된 인물. 일가족이 전멸되고, 남과 북 그리고 제주도에서조차 완벽하게 버림받은 가장 처연한 비운의 혁명가. 그는 1949년 6월7일 오후 4시쯤 속칭 작은 가오리오름 부근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배신한 부하들이 끌고온 경찰들과의 교전과정에서 자결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것을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맹세가 하나둘씩 무너져갈 때마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배신감보다도
차라리 가슴 저미는 슬픔을 느꼈다
누군들 힘겹고 고단하지 않았겠는가
누군들 별빛같은 그리움이 없었겠는가
그것을 어찌 세월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비록 그대들이 떠나 어느 자리에 있든
이 하나만은 꼭 약속해다오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한줌도 안되는 독재와 제국주의 착취자들처럼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 하지는 말아다오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그 슬픔만큼은 참을 수 없구나
- 체 게바라의 시, 「먼 저편」 중에서

이덕구의 시신은 제주시 관덕정 광장에 전시됩니다. 역사적으로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의 장두들이 효수되어 내걸리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전통을 잇게 됩니다. 시신은 하루 정도 전시되었다가 인근 남수각이라는 내창에서 화장되었으나 다음 날 큰비가 내리는 바람에 유골이 빗물에 떠내려갔다고도 합니다.

제주4・3 당시 토벌대들은 제주시 회천 지경에 있는 이덕구 증조모의 비석에 총질을 해서 반토막을 내버렸습니다. 2011년 오늘, 조천읍 신촌리에 있는 그의 생가터는 새로 뚫리는 해안도로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폭력이라는 이름의 파괴와 개발이라는 이름의 매장이 과거와 현재에 걸쳐 두루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덕구 산전’에서 다시금 되새깁니다. 제주4・3은 이제 좌우(左右)의 문제가 아니라 시비(是非)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또한 이덕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박헌영이나 이현상 같이 누군가에 의해 이덕구 평전도 나와야 한다고. 그 ‘누군가’가 저라면 기꺼이 그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말입니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MBC 라디오 제주4.3 드라마 10부작「한라산」을 집필했다.

제주4.3 연구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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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국 2011-03-21 18:59:37 | 112.***.***.53
기꺼이 쓰는 그 치열함에 먼저 숙연해 집니다.이덕구 평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