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유니버셜 디자인' 트렌드가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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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유니버셜 디자인' 트렌드가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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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7>김재훈/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코디네이터

1999년 10월 가을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마냥 내 것만 같았던 그 젊음의 시절.

그때 나는 교통사고라는 폭풍우를 만났다. 지금에 와서야 그 폭풍우가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어렵게 혼란 속에서 보내야했다.

그리고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라는 변화를 겪으면서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에는 장애인이 TV에서만 볼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나의 생각은 장애인들도 인권을 가진 소중한 존재이며 그 인권이 살아 숨 쉬는 바로 나의 이야기임을 느낀다.

벌써 장애인으로 11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 시간동안 나도 달라졌고 세상도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들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고 딱 그만큼은 주변의 환경도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편의시설이다. 하지만 아직도 편의시설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오래된 속담의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휠체어를 이용하게 된 후 음식점부터 영화관까지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곳을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전에는 아무 생각도 관심도 없던 계단과 수많은 턱이 내 휠체어를 가로막는 것을 일상으로 겪다보니 내가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중요한 판단 기준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즉 음식점을 갈 때도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들어가기 편한 곳인가 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서글프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근무하고 다른 도시, 다른 나라의 좋은 사례들을 알게 되면서 서글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저 음식점과 영화관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것은 나의 휠체어 때문이 아니라 그 휠체어가 다닐 수 없게 만들어진 시설들이 문제라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고대하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이제는 인터넷상의 정보접근에 대한 권리까지 법으로 보장받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거리고 나가보면 법이 제정된 지 3년이 지났음에도 그다지 바뀐 것이 없다.

여전히 나는 식당을 메뉴가 아닌 경사로가 있는가 없는가, 테이블이 있는가 없는가로 결정해야만 한다. 매일 같은 식당, 같은 음식은 자연스레 내 생활의 폭과 마음의 넓이를 좁아지게 만들어왔다.

어디선가 본 “나는 살기위해서 먹어야만 한다. 그것에 대한 부정 또한 할 수 없다.”라는 문구가 정말 어떠한 과장의 느낌 없이 문자 그대로 내게 받아들여진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모든 일상의 어려움들이 장애로 인해서 참아내야 하는 나의 사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왔었지만 결코 그것이 아니었다.

11년 동안 내가 빼앗긴 것은 특별한게 아니라 지금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면 나도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러기에 요즘 일각에서 한창 이야기가 되고 있는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유니버셜 디자인(이하 UD)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문구가 있다.  '유니버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 개념이 아닌 모두가 이용하는데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 개념이다'가 그것이다.

즉 장애·성별·연령·국적·문화적 배경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하는 디자인인데 작게는 일상용품에서 크게는 내가 사는 지역 전체에 그런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자는 보편성에 관한 운동이다.

김재훈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보조코디네이터.<헤드라인제주>
우리 집 현관 손잡이를 예로 들어보고 싶다. ㄱ자로 되어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나는 물론 손잡이를 돌릴 때 힘이 훨씬 덜 들어 어린 아이들도 쉽게 열수 있다. 그리고 손이 불편한 사람은 팔꿈치나 손목으로, 팔도 쓰기 힘든 사람은 다리나 심지어 턱으로도 열 수 있다.

가끔 집으로 놀러오는 친구는 내 부탁으로 생활용품을 양손에 가득 쥐고도 팔꿈치로 간단히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편리한 UD가 우리 일상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정착된다면 굳이 편의시설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면 휠체어를 탄 나도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쓴 정도로 인식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성급한 바람도 가져본다. <헤드라인제주>

<김재훈/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보조코디네이터> 

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장애인인권포럼 심벌마크.<헤드라인제주>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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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벌레 2011-06-08 10:13:08 | 121.***.***.98
참 좋은 글입니다 우연히 보게 되면서 공감합니다

권리쟁취 2011-03-12 14:38:47 | 110.***.***.77
이런 글 하나하나 쌓여가고 서로 공유하는 날이 오면 장애인 권리 크게 향상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동행못지않게 언론의 공익적캠페인 을 통한 권리쟁취노력이 보기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