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해볼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모양새를 갖춰 생색내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28일 발족한 '제주특별자치도 노사민정 협의회'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명칭만 보면 노동자와 사용자, 민간, 정계가 함께 모여 무언가를 논의하는 기구인 것처럼 보인다.
이 기구는 지난 1월18일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노사민정 협의회 조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조례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실제 구성된 협의회의 역할은 뭔가 일치하지 않는 느낌을 갖게 한다.
조례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노동시장 안정이고, 두번째는 노사관계 안정에 관한 것이다.
언뜻 보이기에는 전자의 노동시장의 안정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의 고용문제로 받아들이게 한다. 후자의 노사관계 안정은 갈등이나 노동현안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제주특별자치도노사민정협의회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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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제 협의체는 이와는 방향이 확연히 다르다.
제1차 회의에서 제시된 내용만을 놓고 봤을 때, 노동시장의 안정은 정규직화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노사관계의 안정' 부분은 배포된 보도자료에서도 아예 빠져있다. 대신 '노사협력방안'이란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사관계의 안정이란 말과 노사협력방안이란 말은 큰 틀에서 비슷하다 할 수 있으나, 지향하는 방점은 엄연히 틀린 것이다.
결국 이번에 출범한 노사민정 협의체는 노사갈등이나 노동자들의 불안한 고용 문제 등을 의제로 삼기 보다는 일자리 창출 내지 추상적 구호로 그칠 수 있는 '협력'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조례의 본 취지와는 엇나가는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협의체를 구성한 제주도당국의 진짜 생각은 무엇일까. 제주도 관계자는 "노사갈등 문제를 해결한다기 보다는 노사협력방안에 대해 협의하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데 주안점이 있다"고 말했다. '노사갈등'은 우선적 의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그렇다. 조례 제3조에서는 '협의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따라 제주도는 이번에 우근민 제주지사를 당연직 위원장으로 해 22명의 위원을 구성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사용자와 노동자를 대표하는 인사는 각 1명에 불과하다.
조례에서는 △근로자를 대표하는 사람 △사용자를 대표하는 사람 △주민을 대표하는 사람 및 노사관계, 고용, 경제, 사회문제에 관해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지방자치단체 및 고용노동관서를 대표하는 사람을 위촉해 도지사가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조례의 목적에 부합하는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노사에 속한 사람은 22명 중 단 2명에 불과하다.고형범 한국노총 제주지역본부 의장이 노동자 대표로, 윤태현 제주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사용자를 대표해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노총 대표자는 빠져있다.
이외 임명된 위원들을 보면 △하민철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강미선 제주도여성단체협의회장 △고순생 한국부인회제주도지부 회장 △고창실 전 제주산업정보대 학장 △김동욱 제주경실련 대표 △김태성 제주YMCA 사무총장 △박경린 제주대 취업전략본부장 △서경림 제주대 법학부 명예교수 △송문현 광주지방고용노동청장 △양은석 변호사 △엄준철 폴리텍대학 제주캠퍼스 학장 △임찬규 제주한라대학 인력개발원장 △한종길 관광대학 취업지원센터 소장 △고창근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공영민 지식경제국장 △오홍식 제주시 부시장 △이명도 서귀포시 부시장 등이다.
당사자는 2명인데 반해 학계인사 등이 넓게 포진해 있다. 이러한 위원구성으로 앞으로 노동현안이 발생해 설령 의제로 상정된다 하더라도 제대로운 해법이 제시될지가 의문이다.
조례를 보면 이 협의회는 정기회가 단 1회 개최하도록 하고 있다. 필요시 임시회를 소집할 수 있다. 또 회의는 과반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러한 협의체 운영 규정을 현 위원 구성 현실에 비춰보면, 어떤 노동현안이 상정되더라도 실제 사용자 의견과 노동자 의견은 '소수 의견'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협의체 구성에서 드러낸 한계로 인해, '노사갈등' 현안이나 고용문제 등은 의제화될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제주도당국의 말마따나 일자리 창출문제를 논의하고 '듣기에 좋은' 노사협력방안에 대해 협의를 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례에서 규정한 바와 같은 당면한 노사관계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협의체는 아닌 것이다.
일자리 창출문제를 논의하자면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 전략회의' 등을 통하면 될텐데, 제주도당국은 가뜩이나 수많은 각종 위원회의 난립 속에서 왜 이 협의체를 만든 것일까. <헤드라인제주>
위원 감투준다고 덥썩 받아든 사람들은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