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은 천천히 오고, 화禍는 쌍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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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은 천천히 오고, 화禍는 쌍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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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2>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요

 설날 아침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큰절을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옛말에 ‘복(福)은 저 혼자 천천히 오고 화(禍)는 쌍으로 온다’고 하였습니다. 저가 아무리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해도 아주 느릿느릿 천천히 오는 복을 어찌 주머니에 성큼 담을 수 있겠습니까. 복은 스스로 쳐들이는 것이고, 스스로 쟁취하고, 스스로 짓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저의 새해 덕담도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라고 정정해야 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

 어둠이 빛을 이기는 시대에는
 마지막 타다 남은
 한 점 불꽃이라도 키워야 한다 다만
 이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하여
 더 큰 사랑으로 보복하기 위하여
  - 졸시, <새해를 맞으며> 전문

 위의 시 <새해를 맞으며>는 이십 몇 년 전, 이른바 군사독재 시절에 썼던 시입니다. 하도 암울한 시절이라 이렇게 상징으로 썼습니다만, 이 시가 요즘 상황에도 꼭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생각에 또 암담해지기도 합니다. 이 궂은 현실을 ‘더 큰 사랑으로 보복하기 위하여’ 이제 우리 모두가 스스로 만복(萬福)을 쳐들일 때가 아닌가 합니다.

 뭐 그리 파묻을 것이 많은지 올해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려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제주4.3 시절에도 느닷없이 멸치가 많이 들거나 냉이가 난데없이 엄청 돋아난 것을 보고 어른들은 ‘숭시(凶事)’가 날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과연 그대로 제주섬에 큰 참사가 이어졌습니다. 바라건대 이 눈이 제발 큰 흉사를 가져오지 않고, 대신 온갖 추악한 것들을 싹 덮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앨곤퀸 족(族)은 1월을 ‘해에게 눈 녹일 힘이 없는 달’이라 하고, 아라파호 족(族)은 ‘바람 속 영혼들처럼 눈이 흩날리는 달’이라 한답니다. 아마 그쪽 동네도 우리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모양입니다만, 2월을 ‘오솔길에 눈 없는 달’이나 ‘강에 얼음이 풀리는 달’로 부르는 걸 보면 결국 눈은 녹아 없어지고 신록의 계절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마냥 어둠만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다만 어둠이 빛을 이기고 있다고 보일뿐 그 어둠 속에는 이미 빛의 기운이 자라고 있습니다. 겨울이 제 몸 안에 이미 봄을 예비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지막 타다 남은 한 점 불꽃’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빛이요 봄이요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들의 복(福)입니다.
 

 몇 해 전 세모(歲暮)에 한라산 어승생오름에 다녀왔습니다. 눈발이 흩날리는 오름의 정상에는 그야말로 백설분분(白雪紛紛)하여 사방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순간, 운무가 걷히며 한라산 정상의 그 얼굴이 슬그머니 드러났습니다. 아, 그 장관이라니! 엎드려 넙죽 한라산신께 절을 올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제발 우리 제주 섬에 온갖 궂은 것들 다 몰아내시고 온통 좋은 일만 가득하게 해주소서!”

 그 감동을 뒤로 하며 내려오면서 시 한 수를 구상했습니다. 다음의 <새해에는>이란 시입니다. 새해에는 제발 ‘배가 터지도록 복을 받’기 위해 ‘머리 손발 가슴’ 다해서 복을 짓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그 복(福)이란 곡식이,

 곡식이 무겁게 자라서 이랑까지 숙여지기를
 굵게 자라서 백 명의 청년들도 벨 수 없기를
 너무나 무거워서 백 명의 처녀들이 나를 수 없기를
  - 라다크의 <씨 뿌리는 노래> 중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을 받은 다음에는, ‘지지리도 복 없는’ 저 같은 이에게도 조금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福)도 평등하게 고루고루 나누는 그런 복된 공동체가 도래할 수 있도록, 올해에는 이렇게 서로서로 복을 많이 짓자고 덕담도 이렇게 서로 나누기를 바랍니다.

 “신묘년(辛卯年) 새해 복 많이 지으십시오!”


 새해에는
 배가 터지도록 복을 받고
 입이 찢어지게 좋은 일만 생기고
 머리 손발 고생 덜하고
 가슴 가득 벅찬 나날 되소서

 새해에는
 온갖 내장기관 편안하고
 신체발부 상하지 않게 하소서
 눈엔 눈물 없게
 들숨날숨엔 한숨 없게
 좋은 소리 귀에 달고 살게 하소서

 일년하고도 열두 달 만복은 백성에게
 잡귀 잡신은 물알로 만대유전을 비옵네다

 새해에는
 나로부터 힘이 되어
 식솔들 별 탈 없고
 이웃들 떨지 않고
 내 나라 내 민족 내 동포
 드디어 하나이게 하소서
  - 졸시, <새해에는> 전문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4.3관련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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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맨 2011-02-07 00:15:20 | 112.***.***.227
읽으면서 내내 배시시 웃음이 납니다. 덕분에 제게도 복이 굴러올 것 같네요^^

행복 2011-02-05 10:26:54 | 112.***.***.100
새해에는 정말 입이 찢어지도록 행복한 일만 생겼으면 합니다.

복 마니마니 지읍시다 2011-02-04 19:42:40 | 1.***.***.255
시로 전하는 이야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졸시가 아니라 멋진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