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창조성 가득한 섬...'시상(詩想)'이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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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창조성 가득한 섬...'시상(詩想)'이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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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제주] (21) 도내 외국인 문학 모임 설립인 조쉬 피셔
"문학 작품 공유는 성장의 밑거름...도민과 함께 하길 희망"

모처럼만에 겨울 햇살이 내리쬔 19일 오후. 한 카페에서 서양인 청년이 노트북도 아니고 휴대폰도 아닌 생소한 기계 위에서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손놀림을 멈추지 않던 그 남자는 뒤늦게야 인기척을 느낀 듯, 멋쩍게 웃었다.

그가 그토록 집중하고 있었던 곳은 최근 출시된 태블릿 PC로, 그는 그 위에서 손가락을 놀리며 작문을 하고 있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청년 조쉬 피셔(Josh Fisher, 24)는 제주도내 외국인들의 문학 모임인 '워드스미스(WordSmiths)'의 설립인이다. 조쉬와 워드스미스, 그리고 제주에서의 글짓기에 대한 한 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쉬가 태블릿PC로 작문을 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 의학 공부 접고 문학의 길로..."후회 안해요"

문학 모임을 만든 조쉬답게 그는 오래된 '글쟁이'였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당시 나이에게는 내용이 난해한 책 한권을 얻었어요. 선생님은 제가 그 책을 읽지 못할 거라고 장담했었죠. 오기가 생겼고, 집에 가서 밤새 읽었어요. 무척 자랑스러웠죠. 그 때부터 무엇인가를 읽고, 쓰는 일에 도전했던 것 같아요."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문학에 관심을 기울였던 조쉬. 그에게 있어 그의 할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할아버지는 조쉬를 만날 때마다 시 한 편을 읊어줄 것을 바랐고, 조쉬는 그 때마다 미리 써 둔 시를 읊조리곤 했다.

어느 덧 대학에 진학하게 된 조쉬는 집안의 바람으로 의사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문학 소년'이었던 그에게 의학 공부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관련 학과에 지원했는데, 지루한 나날의 반복이었어요. 강의실에선 강의가 지루해서 졸기 일쑤였죠. 어느 날 수업이 끝난 강의실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로 의학을 포기했어요."

의사의 길에서 벗어나 그가 향한 곳은 어릴적부터 그의 곁에 있던 문학이었다. 결국 문학 창작 관련 학과로 전과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세계를 돌아보고 싶던 조쉬는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접했고, 제주도라는 섬에 꽂혔다. '한 번 가보자'는 심정으로 찾은 제주에 머문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지금은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후회하지 않냐고요? 지금 제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저보다 수학을 잘해요. 이런 제가 의학을 계속 했어도 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저는 문학의 길을 택한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주에서 문학의 길을 이어간 조쉬는 뜻이 통하는 문학 동료들을 하나 둘 모으게 되고, '워드스미스'라는 모임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 "문학을 좋아하는 누구나 워드스미스 회원이죠"

블랙스미스(Blacksmith)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 대장장이란 뜻인데, '워드스미스'도 그와 비슷하다. 철자, 단어, 문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말을 잘 하는 사람 또는 언어를 잘 다루는 사람, 즉 '명문장가'를 칭한다.

조쉬가 조직한 워드스미스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단, 언어나 문학을 '잘' 다루는 사람만이 아니라, 문학을 읽고 쓰기 좋아하는 모든 이가 워드스미스와 함께 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지만, 모두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디어를 알아주지 않으면 헛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주에 사는 외국인들이 글로 풀어낸 생각을 서로 나누기 위해 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외국인 문학 모임 '워드스미스'에 대한 얘기를 풀어내고 있는 조쉬. <헤드라인제주>

현재 회원은 25명 정도로, 교수, 소설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 구성의 다양성 만큼, 작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시, 소설, 에세이 등 생각나고 펜 가는대로 쓴 모든 것들이 워드스미스의 작품이 된다.

워드스미스는 매월 첫째주 일요일에 모임을 갖는다. 모임에 앞서 회원 너댓명이 글짓기를 해 오면, 모임에서는 그 작품들이 낭송된다. 이를 경청하던 회원들은 작품들에 피드백을 건넨다. 어느 대목은 훌륭했다거나, 그 대목에서는 다른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거나하는 식이다.

"냉철한 비판을 가하기도 하고, 열렬한 호응을 보내기도 하면서 서로의 작품을 함께 공유합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셈이죠. 이를 통해 생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고, 문학가로서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공유를 통한 성장, 이게 바로 워드스미스의 목적입니다."

# "우리네 인생은 시(詩)...셀 수 없이 썼죠"

워드스미스에서는 특정 장르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학을 다룬다. 조쉬는 어릴적 할아버지의 영향인지,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시를 가장 선호한다.

"한 8-9년 정도 시를 써온 것 같네요. 그보다 더 오래 됐을 수도 있고요. 몇 편이나 썼냐고요? 후...셀 수 없을 정도라면 답이 될까요?" 셀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인생이 바로 시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시가 보이기 때문이죠."

조쉬는 TV나 영화를 볼 때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항상 시를 생각하고 시상(詩想)을 얻는다고 했다.

"버스에 노인과 어린이가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도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연인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는데, 커피잔의 커피는 줄어들지 않고 말 한마디 않는 것도 시가 됩니다. 연인 간의 긴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같은 장면을 봐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는 점이 조쉬의 '다작' 비결이었다. "시각을 바꾸면 됩니다. 한 장면을 보더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려는 시도가 중요하죠."

그리고 하나 더. 무언가 생각날 때마다 적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홱 날아가버리기 일쑤라고.

조쉬 피셔. <헤드라인제주>

# "제주는 창조성 가득한 나무...작품 열매 얻어요"

다른 시각, 적는 습관 말고도 조쉬는 '제주 섬' 자체에서 시상을 얻는다고 했다.

"제가 사라봉 인근에 사는데, 앞으로는 바다가 있고 뒤로는 산이 있어요. 앞에는 항상 변화하는 바다고, 뒤에는 항상 우두커니 서 있는 산이죠. 그 중심에서 '변화'와 '정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시상을 얻곤 합니다."

제주 섬이 가진 자연 자체가 시상이 된다는 말이다. 옛스러움을 간직한 자연, 차분한 분위기(대도시에 비해) 등이 제주를 '글짓기 최적의 장소'로 만들어 준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제주는 가능성과 창조성으로 세워진 한 그루의 나무라고 봅니다. 우리는 그 나무에서 문학 작품이라는 열매를 얻는 거죠."

조쉬는 제주라는 섬에서 딴 열매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인터넷 상에 출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워드스미스를 외국인만의 모임이 아닌, 제주도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으로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외국인과 한국인이 만나 문학적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면 정말이지 놀랍고 기발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모임이 이뤄질지는 모르지만 저에겐 아직 1년이란 시간이 남아있으니, 꼭 해낼 겁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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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트리스 2011-01-29 20:55:40 | 122.***.***.76
올....... 여기 시청커피숍이네요 적는습관은 무엇보다 중요하죠 ㅋㅋ전 외국어가 필요한데 ㅋㅋ 태블릿pc 흥미로운듯

스마일 2011-01-21 12:45:13 | 119.***.***.210
와~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네요. 그 소망이 꼭 이뤄지기를 바랄게요. 파이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