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장애인의 고충..."타봐야 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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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장애인의 고충..."타봐야 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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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휠체어 이동로 '엉망'...전동휠체어도 '무용지물'

평범한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5cm의 턱은 넘지 못할 산이다. 약간 좁은 듯한 보도는 함부로 올라서려면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대형사고가 날 위험성도 상당하다.

정부는 복지예산을 늘린다며 이리저리 뛰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들의 이동편의는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 지체장애인협회가 실시한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대로 설치된 보도 경사로는 불과 13.6%에 그친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지원책에 차마 고마워할 수는 없겠고, 그렇다고 마냥 불만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직면한 장애인들이다.

보도의 턱이 높아 휠체어로는 올라갈 수 없다. <헤드라인제주>

# "타보면 압니다" 휠체어 다니기 너무 어려워

'설마 13%밖에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법한 이들을 위해 선정 기준을 설명하자면, 12m길이의 높이가 1m 이상인 경사로를 포함, 보도의 입구에 2cm정도의 턱만 있어도 그 보도는 이용할 수 없는 보도로 구분된다.

기준이 너무 박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장애인들은 한 입으로 이야기 한다. "실제로 휠체어를 타보면 압니다."

아무것도 아닐듯한 2cm의 턱을 넘는 것 조차 너무 힘든 것이 휠체어 장애인들의 현실이다.

턱 뿐만이 아니다. 보도상에 움푹 패인 구덩이, 경사면이 가로로 기울어지며 차도로 향하게 조성된 보도 또한 큰 난관이다.

구덩이에 바퀴라도 빠지게 되면 자력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아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차도쪽으로 기울어진 경사면에 의해 자칫 방심하면 휠체어가 차도로 내려간다.

차도로 경사가 진 도로. 중간에 구덩이까지 파여있어 휠체어로 지나가기에는 쉽지 않은 길이다. <헤드라인제주>
인근 상가의 물건들이 보도를 자리해 휠체어가 지날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 <헤드라인제주>

편의시설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통약자가 통행가능한 보도는 약 70%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길을 가던 도중에 갑작스레 만난 높은 턱에 지나갈 수 없으면, 그 길은 그냥 갈 수 없는 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시 동문로터리에서 용담로터리까지 휠체어로 이동한다고 가정했을때, 아무리 동문로터리 인근 보도가 잘 조성돼 있고, 용담로터리 보도가 잘 조성돼있다 한들 중간에 끊기는 길이 있다면 목적지까지 갈 수 없게된다.

물론 갈수야 있다. 보도로 올라서지 못해 위험천만한 차도로 바퀴를 틀며. 이것이 제주도내 휠체어 장애인들의 현 모습이다.

# 비싼 돈 들인 전동 휠체어 "집에 모셔두는 이유?"

그러다보니 자가 차량 없이 수동 휠체어를 끌고 거리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한 두번 이상 혼쭐이 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그러면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전동 휠체어.스쿠터'다. 아무래도 수동 휠체어보다는 힘을 덜 들이고 탈 수 있어 많은 장애인들이 선호하고 있다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 같은 기구를 지원하기 위해 등록장애인에 대해 보장구 구입비용의 80%를 부담하고 있다.

기준액 범위가 있어 더 비싼 품목에 대해서는 자부담이 적용되기 때문에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보통 200만원에서 250만원 정도선의 전동휠체어를 구입하고는 한다.

80%를 지원받는다고는 해도, 자부담으로 들여야 하는 비용 50여만원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움직이고자 전동휠체어를 마련한다.

하지만 그렇게 구입한 전동휠체어를 집안 구석에 고이 모셔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막상 타고나가보니 보도 사정이 그다지 다를게 없다는 이유다.

앞서 밝혔던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지원책'이란 이 같은 경우를 뜻한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 전동휠체어를 마련해 준다 한들, 보도가 제대로 조성되지 않고서야 이용할 수가 없다.

# 차도로 내몰린 전동 스쿠터 '아찔'

전동휠체어는 덩치도 수동 휠체어보다 훨씬 크다. 좁은 보도에서 마주오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까봐 괜히 망설여진다. 결국 휠체어는 차도위를 달리게 된다.

도로위를 달리는 휠체어, 스쿠터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지난해에 전동 스쿠터로 도로위를 달리다가 큰 사고가 발생하는 사례가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찔했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던 관계자들은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턱이 높아 휠체어로는 보도로 올라갈 수 없다. <헤드라인제주>
좁디좁은 길에 주차된 차량에 의해 공간 확보가 여의치 않다. <헤드라인제주>

원래 휠체어나 스쿠터는 차도가 아닌 보도로 달리게끔 법이 마련돼 있어, 그렇게 사고가 나면 아무런 보상이나 보험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허망하기만한 사고다.

제주도 지체장애인협회 이동지원사업부 한용석 과장은 "아무리 차도로 달리지 말라고 교육을 한다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러 차도로 달리고 싶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보도로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 "차도와 보도사이 경사로, 큰 고역"

1급 지체장애를 안고 있는 고모씨는 비싼 돈을 들여 전동휠체어를 마련했지만 몇번 타보지 못하고 2년째 집안에 보관만 하고 있다.

고씨는 "차도로 다니기도 어렵고, 인도로 다니니까 더 어렵고, 경사진 곳도 많고, 걸리는 곳도 많아 이래저래 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특히 시장이나 인근 상가에 가보려 해도 길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당황스러운 사고를 한번 겪고 나니 다시 휠체어를 꺼내기가 두려워졌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고씨는 일전에 겪었던 일을 회상하며 "쓰다보면 배터리의 방전이 빨라지는 것을 모르고 달렸는데, 갑자기 배터리가 끝나서 길 중앙에 서버렸다"고 말했다.

휠체어의 무게가 워낙 무거워 주변사람들이 도와줘도 쉽사리 움직이지도 않고, 이 정도 일에 119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라 한참을 당황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지체장애를 안고 있는 성모씨 역시 "차도와 보도사이의 경사로, 블록과 블록 사이에 길 등 휠체어가 가기에는 전혀 맞지 않게 돼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성씨는 "특히 미관을 살린답시고 돌이나 잔디 같은 것을 깔아놓은 길은 장애인들에게 큰 고역"이라고 덧붙였다.

휠체어 전용 콜택시. <헤드라인제주>

# 놀고 있는 휠체어 콜택시 "좀 도와주세요"

현재 제주도에서는 자가차량이 없어 원거리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휠체어전용 콜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지체장애인협회가 운행하는 콜택시가 제주시에 3대와 서귀포시에 2대, 최근 사단법인 제주도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가 마련한 콜택시가 5대로 총 10대가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콜택시의 경우도 실용성을 따져보면 장애인들의 가려움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읍면지역의 장애인들은 상대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통 휠체어 콜택시는 이용 하루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 그런데, 보통 장애인들이 콜택시를 사용하는 이유가 병원에 갔다오기 위함이다보니 오전중에 이용객이 몰려 혜택이 제한적으로 돌아간다.

또 이용객들이 한 단체로만 편중되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지체장애인협회를 통해 이용하는 콜택시는 무료지만 교통약자지원센터의 콜택시는 소정의 요금을 받고 있어, 아무래도 이용객들은 무료콜택시로 몰린다.

교통약자지원센터가 받는 요금의 경우 기본요금은 1000원이고, 추가요금은 350m당 100원으로 일반 택시요금의 40%정도에 불과하지만, 이왕이면 무료로 서비스를 받는 것이 좋다보니 이용객의 차이가 나고 있다.

이용객이 없어 비어있는 택시가 주차장을 지키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도 교통약자지원센터의 콜택시는 제주시 동(洞)지역을 중심으로만 운행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기 어려웠던 읍면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오히려 더 도외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도의 지원을 받는 콜택시가 읍면지역까지 커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주장하며 "또 예약 콜 택시 방침만을 고집할 것이 아닌 현재 놀리고 있는 차량을 이용해 이용자가 필요할 때 찾으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에서부터 콜택시까지, 실제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보다 주변 환경으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이들을 위한 순차적인 지원이 좀처럼 뒤따르지 않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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