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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통역 필요할땐 저를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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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제주] (14) 필리핀 출신 '동문시장 쇼핑 도우미' 그레이스
"꽉 막힌 의사소통 해결할 때 보람...결혼이주여성 선배 노릇도 톡톡"

각종 해산물과 과일, 야채, 반찬, 옷가지 등이 즐비한 제주동문재래시장.

서양인 관광객 서너명이 과일 가게 앞에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서로의 표정에서는 답답함과 아쉬움이 묻어난다.

대화의 장벽이 서로를 갈라놓고 있어 물건을 사기도 팔기도 어려운 이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온다.

동남아 계열로 보이는 이 여성은 서양인 관광객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과일 가게 주인에게 옮겨주고, 다시 주인의 대답을 관광객들에게 전해준다.

거래가 무사히 성사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그리고 나서 이 여성의 목에 걸린 이름표를 살펴봤다. 제주동문시장 영어통역 쇼핑도우미 로나 그레이스 이림시아코(30, Rona Grace E.Limsiaco).

이름표를 들어 보이는 그레이스. <헤드라인제주>

외국인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요즘 그는 이 곳 동문시장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제주 생활 7년만에, 쇼핑도우미 근무 2개월만에 동문시장을 휘어잡은 그의 활약상을 들어봤다.

# "영어통역 도우미, 그리고 결혼이주여성 선배"

그레이스는 한국 생활 11년차인 필리핀 이주 여성으로, 지금은 동문시장에서 영어통역 쇼핑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쇼핑도우미로 근무한지 두달째에 접어들었다는 그레이스는 평소에는 동문시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때를 기다린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올 때가 있어요. 가게 주인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통역 좀 도와달라 그러죠. 그때 제 활약이 시작돼요."

타갈로그어(필리핀어)와 영어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는 필리핀 출신답게 그는 주로 서양인 관광객을 상대한다.

"별거 다 물어봐요. 이 구두는 무슨 가죽이냐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튼튼한지, 얼마나 오래 신을 수 있는지, 가게 위치는 어디인지 이것 저것요. 아, 가격은 기본이죠."

그의 활약상은 동문시장 뿐만 아니라, 근처에 위치한 지하상가까지도 뻗쳐있다. 지하상가에는 중국어, 일본어 통역 도우미만 근무하고 있어 긴급히 영어 통역이 필요할 때면 그레이스를 찾는다고.

"한번은 지하상가에서 저에게 전화가 걸려와 잽싸게 달려가 통역을 도운 적이 있어요. 누군가 저의 도움이 필요해서 저를 찾을 때면 굉장히 뿌듯해요. 그게 이 일의 맛이죠."

그레이스는 외국인 관광객들만이 아니라 동문시장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필리핀 이주 여성들에게도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그레이스가 그의 필리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필리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레이스. <헤드라인제주>

제주로 결혼 이주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한국어도 가르치는 등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주에 시집온지 한 달된 이주 여성이 장을 보러 동문시장에 왔었어요. 한국어도 서툴고 어쩔 줄 몰라하기에 이것저것 알려주고 도와준 적도 있죠.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때면 보람을 느껴요."

# 욕심 많은 그녀...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제주에서 동문시장 쇼핑도우미가 되기까지 그는 어떻게 지냈을까?

그레이스는 필리핀에 여행을 온 남편 박창엽씨(40)와 연애결혼을 통해 지난 1999년 한국에 왔다.

처음 결혼을 하고 3년 동안 그는 남편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엿장수 일을 했다.

그 후 전라남도에서 생활하다 제주에는 2003년 내려왔다. 슬하에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아들 행복이는 초등학교 3학년, 딸 지혜는 1학년이란다.

제주 생활 초반에는 남편과 함께 재활용품을 수거하러 다니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고.

"처음엔 고생도 했지만, 힘들게 모은 돈으로 지금은 집고 사고 땅도 사고 애들을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어서 행복하답니다."

제주 생활에 어느정도 기반이 잡힌 것 같으면서도 아직까지 욕심이 많다는 그레이스. 물질적 욕심이 아니라, '배움의 욕심'이다.

그 때문일까. 필리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또 다시 입학했다. 결혼이주 여성 가운데 방통고에 입학한 사례는 그가 아직까지 유일하다.

그레이스. <헤드라인제주>
"배우는데 욕심이 많아요. 통역, 디자인, 외국어, 제빵 제과 등 많이 배우고 싶어요. 방통고를 졸업한 뒤에는 대학까지도 갈 생각이에요.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배우고 싶은데, 아직까지 (배우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모르겠어요."

욕심의 끝은 없지만, 꿈이 하나 있다고. "필리핀에 우리 가족들이 모두 머무를 수 있는 집을 한 채 짓고 싶어요. 그래서 필리핀에 여행 갔을 때 그 곳에서 함께 지내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꿈 이야기를 전하고는 다시 동문시장에서 헤매고 있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도움을 주러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던 그레이스, 아니 개명 예정인 '임은혜'씨의 표정에서는 강한 의지와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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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梁씨 2010-12-08 09:28:29 | 220.***.***.3
이 분! 저희 동네 사시는 분인데ㅋ ^^ 동문시장에서 활약하고 계시군요!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