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29) 백수건달 놈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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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의 사는 이야기] (29) 백수건달 놈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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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안 버려두었던 것들을 끄집어내어 내 가슴과 대면하는 데까지는
 
참으로 끈질긴 오기와,
도망하고 싶은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버려두는 동안에 대한 이유 없는 죄책감과
한데 어우러진 속시끄러움을 내 손으로 달래야 하는
조금은 우습고, 또 조금은 어색해서 쭈뼛거려지는 자신감 없음이 함께한다.  

내가 아닌 타인의 
아픔엔, 쉽게 연민할 수 있는 선한 가슴이 있다.
욕심은, 익명의 손가락질에 묻혀 쉽게 비난할 수 있음을 편애한다.

내가 아닌 타인의
시시비비는 선명하게 보여서 현명해질 수 있고
고뇌하지 않을 수 있는 냉정한 이성이라는 것이 심장을 편하게 한다.

그렇게 타인의 그 무엇에도 너그러울 수 없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는 무한하게 너그러운 내가 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흐르는 세월 어찌하랴 싶은 너그러움처럼 다 용납할 듯이 대하는 그렁저렁
자유와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입에 발린 무책임한 말들로 나에게 다가오는 책임을 은근슬쩍, 도망하고 만다.
 
그것은,
나에게 너그러운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다가올 책임과 의무를 도망하는 심약한 간사함.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단호하게 하게 되는 것도 아닌 여전한 나의 그렁저렁.

단지,
나는 바라만 보는 세상만사 작파한 하릴없는 시덥지 않은 놈팽이.  

놈팽이가 간다!
나는 놈팽이다.
결혼에도 자유로운 자유연애주의자.
그 어떤 이와도 자유로운 연애를 꿈꾸지만  
내가 타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타인이 날 가리킬 손가락에 지레 가위눌린 내 성욕은
임포텐츠와 오르가즘을 양 옆에 태우고 시소를 탄다.   
 
놈팽이가 간다!
나는 놈팽이다.
직업에도 자유로운 나는 무능한 프리랜서.
언제나 화려한 BMW를 모는 성공한 도시인생을 꿈꾸지만
노동의 절실함보다는 ‘장애’란 핑계 좋은 옷 하나 입고 앉아 ‘몰라요.’
나에게 너그러우려 기를 쓰고 있는 같잖게 후한 인심에 혓바늘이 돋는다.   
 
놈팽이가 간다!
나는 놈팽이다.
불혹의 나이에도 백수인 나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로망 한다.
나에게 나를 책임져야 하는 생계란 것이 등에 무게로 다가오는 게 귀찮아
나에 대한 책임을 슬그머니 뒷짐 지고 누워 하릴없는 만고 땡!

언제나 부족하다 욕심내는 타인에게 일갈하던 내 세치 혀가
‘그건 어쩔 수 없는 특별한 것’이란 허무맹랑한 변명으로 편애하고 있는
그래도 비굴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날 이유를 찾지 않으려
악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고요한 심해 속 난파선의 유령 같은 모습으로
싸늘하게 식어있던 심장이 파르르
울혈을 안고 앉아 더워지려 울컥거리지만
그것은 단지 거리의 어느 인형가게 쇼윈도의 장식들처럼 판에 박힌 소증일 뿐
내 심장은 또다시 아무 일 없는 듯 심해로 떠나간다. 
 
놈팽이가 간다!
나는 놈팽이다.

세상에 속을 다치는 게
때로는 아프고
 
세상이 다가오지 않으니 내가 다가가야 하는 게
때로는 지치고 두렵고
 
세상과 타협해야 하는 게
때로는 자존심 상하고
 
세상의 것들에 욕심나지만
때로는 가질 수 없는 게 더 많고
 
세상과 함께 사는 게
때로는 귀찮고 버거운
 
세상을 그렁저렁
놈팽이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가끔은 놈팽이가 좋다.
 
악을 쓰며 세상과 전쟁하듯 살지 않아 좋고...
욕심나지만 욕심 부릴 수 없으니 욕 안 먹어 좋고....
눈 부릅뜨고 지킬 것 없어 두근거리는 심장병 없어 좋은.....
가진 것 한 푼 없는 백수건달에 놈팽이.

그래서 나는
가끔 놈팽이가 좋다.
놈팽이가 간다! 나는 놈팽이다.

강윤미씨 그는...
 
   
▲ 강윤미 객원필진
강윤미 님은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강의실을 오가는, 하지만 항상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강윤미 님의 모습은 아랏벌을 훈훈하게 해 줍니다.

그 의 나이, 이제 마흔이 갓 넘어가고 있습니다. 늦깍이로 대학에 입문해 국문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분입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움이 항상 직면해 있지만, 그는 365일 하루하루를 매우 의미있고 소중하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강윤미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강윤미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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