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옥의 요양원일기](2)일상
상태바
[박금옥의 요양원일기](2)일상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고 배야 ~ "
 

오만 인상을 쓰시며 모 어르신이 쭈구리고 앉아계신다. “탁배기 한잔만 먹으면 배가 안 아플껀디... 금옥아! 탁배기 한잔만 사오라”

간암말기 판정을 받아 6개월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하는 할머니의 간절한 부탁이다. 입소하기 전 집에서 술을 즐겨 드셨기에 모든 병에 약은 술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전보다 더 심한 통증을 호소하시길래 곰곰이 생각을 하다 ‘2%’ 음료수를 소주라고 하여 사다 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00리터 한 병을 주무시기 전에 마셨는데 그 후 일주일이 지나고는 하루에 3병씩 마셨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젠 소주를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막걸리를 원하셨다. 고민을 하다 이번에는 아침햇살음료수를 막걸리라고 하여 1.5미터를 사다드리기 시작했다. 그 음료수를  건내자 그 자리에서 컵에 따르시곤 한숨에 쉬지 않고 벌컥벌컥 ‘원 샷’을 하신다. 그리곤 활짝 웃으시며 ‘캬~~을’ 하시며 “이제 살아지켜... 역시 배 아플 땐 탁배기가 약이주”하시며 말씀하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한다. 지금은 어르신이 치매를 앓고 계셔서 고통을 덜 느끼신다고는 하지만 아마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이 아프실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다.

모 어르신이 큰 보따리와 가방을 들고 나를 찾는다. “금옥아! 이거 가지고 이시라잉 밥 먹엉 제주시 갔다오게...”

치매를 앓고 있는 또 다른  어르신이다.

이 어르신은 항상 보따리를 싸고 집에 가시겠다고 하신다. 식사를 마치신 어르신은 다시 나를 찾아 사무실로 오셨다. 어르신과 함께 건물 한 바퀴를 돈다. “제주시까지 택시 얼마니?”매일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오만원이우다” 역시 매일 똑 같은 내 대답이다.

갑자기 어르신은 바닥에 주저앉으시더니 신발과 양말을 벗기 시작하신다. 그리곤 양말속에 숨겨 놓았던 꼬깃꼬깃 구겨진 이만원을 건내며 “나 이거 밖에 어시난 니가 돈 더 보태주라”하시며 다시 양말과 신발을 신으신다. 나는 어르신을 달래고는 다시금 요양원 안으로 들어간다.

‘띠리링’ 사무를 보고 있는데 3층 생활관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하고 대답하자, 생활지도원 선생님 왈 “예~  거기 000어르신 댁이지예~, 어르신이 통화하고 싶다고 하니 받아보세요” 너무나 자연스런 연기다.

이제부터 나는 모 어르신 딸이 되어야 한다. 어르신은 욕부터 시작하여 욕으로 전화를 마무리 하신다. 그리곤 전화를 끊으신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우리 선생님들은 어르신들의 며느리, 딸, 아들 역을 하곤 한다. 늘 반복적인 일상이라 모두들 수준급 연기자다.

어떤 분들은 이 행동에 대해 이해를 못 하실 것이다. ‘그냥 보호자와 연결 시켜주면 되지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호자를 생각하는 부분도 요양원의 또 다른 몫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어르신을 떠올리고 마음이 다시 급해진다. 배 아플 땐 탁배기가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어르신이 날 눈이빠지도록 기다리고 계실테니까 ...
<헤드라인제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박금옥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박금옥 복지사 그녀는...
 
   
 
  ▲ 박금옥 위미에덴실비노인요양원 생활복지사
 
 
박금옥 생활복지사는 고등학교 때 평소에 집 근처에 있는 성 이시돌재단 양로원에 어머니가 봉사활동을 하러 가실 때마다 따라 다니면서 자연스레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된다.

그러다 전공과목도 사회복지과를 선택하게 되고 아예 직업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외길을 걸은 지 어느덧  6년째다.

그 동안 그녀는 아동, 노인, 장애인을 두루 다 경험하던 중 노인시설에서도 근무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중증의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그녀의 삶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게되면서  현재 위미에덴실비노인요양원에서 근무하게 된지 1년 7개월째다.

위미에덴실비노인요양원은 지난 2005년 9월 2일 봄이 가장 먼저 오는 따뜻한 남쪽 서귀포 남원읍 위미리에 자리잡고 현재 50명의 어르신과 20명의 직원들이 가족처럼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함께 도움이 되는 세상이야기를 공유하고 싶다"며 글을 올리고 있는  그녀를 통해 바로 이 곳 요양원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애독과 성원 바랍니다.<편집자 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