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서로 보는 조선후기의 농업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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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서로 보는 조선후기의 농업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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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21) 역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1600년대에는 실학의 풍조가 성숙하기 시작하여 이것이 농업연구면에도 반영되고 적지 않은 농정서와 농업기술서가 저술되었다. 조선후기 농업에 대하여 발간된 농업서적을 연대별로 구분하여 3차에 걸쳐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실학(實學)의 학풍이 성숙하면서 실학자들의 농정론(農政論)이 농업기술론과 아울러 강력히 대두하였다. ‘반계수록(磻溪隨錄), 농포문답(農圃問答) 같은 제도론적 저술, 색경(穡經), 산림경제와 같은 소백과서(小百科書)를 겸한 농서들이 나왔다. 그리고 계속되는 흉작은 식량정책에 심한 압력을 주어 여러 가지 구황서적이 간행되었으며, 1763년 조엄(趙曮)이 고구마(甘藷)를 들여온 뒤 고구마의 재배·저장·가공의 연구가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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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유형원의 반계수록>, <홍만선의 산람경제>.

강씨감저보, 감저신보(甘藷新譜), 종저보(種藷譜) 등이 그 예이다. 영조·정조·순조 대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풍과 사조가 팽배해진 가운데 인접국 특히 중국(명나라 말기∼청나라 초기)과의 교류의 영향이 농학에도 크게 미치게 되었다.

북학파(北學派)라는 실학의 한 흐름에 속하는 학자들의 저술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박지원(朴趾源)의 과농소초(課農小抄)와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이다. 이 두 책에서는 다같이 농업정책·토지제도·농업기술이 비판, 논의되었으며, 특히 농업기술론에서는 서양농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던 중국농법의 소개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두 농서는 정조가 권농시책의 하나로 전국에 널리 농서를 구하여 응모한 40건 중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러한 실학자들의 농학은 해동농서(海東農書), 농정회요(農政會要), 수차도설(水車圖說) 등을 거쳐 ‘임원경제지’로 집성되었다.

‘임원경제지’는 별칭 ‘임원십육지’라고도 하는데, 16개 부문 중 7개 부문이 농업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음식, 가옥, 복식, 섭생, 의약, 관혼상제, 취미, 지리, 경제 등을 논술한 것이다. 임원경제지는 농업을 우선으로 논술하면서 실용적인 모든 사항을 덧붙여 포함시킨 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농업에 해당하는 7개 부문 기술에서는 곡류재배, 화초 및 약초재배, 과수류 관리, 섬유작물 경작, 잠업·기상·축산 등으로 분류해 논술하였다. 이로써 전근대 농학의 총결산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선시대 초기부터 우리 나라 농학은 움텄고, 전반기의 농학은 ‘농가집성’으로 마무리되었으며, 그 뒤 실학자들에 의한 농학은 농업정책과 토지제도의 개혁을 강조하면서 경작기술의 개선을 논하였던 것이다.

북학파 이후 실학자에 의한 농학은 서양의 문물이 다분히 가미된 중국의 농학서들, 이를테면 태서수법(泰西水法). 농정전서(農政全書), 천공개물 (天工開物)을 많이 참고하고, 또 실제로 중국농업을 견문한 경험에 입각하여 논술을 펼치고 있다.

1611년 문인 허균이 우리나라 팔도의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개설서인 허균(許筠)이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의 관계부분과 다른 농서들을 참고해 당시의 채소류 및 과일류의 재배상황을 살펴보면, 채소류로는 오이, 가지, 마늘을 비롯하여 무, 아욱, 부추, 염교, 미나리, 배추, 갓, 토란, 생강, 파 등이 많이 재배되었고, 고려 때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수박과 참외 등도 각기 명산지를 이루고 있다. 

과일류로는 강릉에서 돌연변이종인 배를 얻어 키웠는데 크고 단맛이 있으며 육질이 연하였다는 천사리(天賜梨)와 정선의 금색리(金色梨), 평안도의 현리(玄梨), 석왕사의 홍리(紅梨), 대숙리(大熟梨) 등의 배, 온양의 조홍시(早紅시), 남양의 각시(角시), 지리산의 오시(烏시) 등 감, 황도(黃桃), 반도(盤桃), 승도(僧桃) 등 복숭아, 그리고 당행(唐杏), 자도(紫桃), 녹리(綠李) 같은 자두류가 있었다. 밤, 대추가 각지에서 생산되었음은 물론이다. 고려 때부터 전통이 있던 감귤류로는 금귤, 감귤, 청귤(靑橘), 유감(柚柑), 감자, 유자 등이 제주를 위주로 하여 서남해안에서도 생산되었다. 이들 이외에 우리나라에서는 능금(지금도 있음)이라는 소형 과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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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신속의 농가집성>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1655년(효종 6) 왕명으로 간행된 ‘농가집성(農家集成)’은 증보된 ‘농사직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세종 때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지경법(地耕法)에 있어서 메마른 밭에 녹두를 키워 무성하였을 때 엎어갈면 잡초와 해충이 적어지고 밭이 기름지게 된다고 녹비사용을 권장한 것이 추가되어 있다. 또, 증보된 조도앙기항(早稻秧基項)에서는 영남과 기타 남도의 행법을 많이 소개하되 재와 분(糞)의 용법, 사질토(砂質土)에 대한 유의사항, 앙초(秧草), 즉 참갈, 억새풀 기타 잡초를 외양간즙액, 인뇨 등에 처리하여 퇴적한 것의 사용 등을 논하였다. 그리고 화누법(火耨法)이라 하여 논에 건초를 깔아 태우고 관수하는 제초법도 소개되어 있고, 벼모의 이앙이 늦어 파리오줌병이 생겼을 때에는 건초를 두껍게 덮어 적당히 성장하였을 때에 모종을 하라고 하였다. 기장과 조의 재배에서 줄기(莖節)가 너무 무성하면 우경(牛耕)하여 흙으로 줄기를 덮어주면 새로 뿌리가 나서 열매가 좋아진다는 것도 부가되어 있다. 그리고 ‘농가집성’에는 종목화법(種木花法)이 수록되어 있는데 목화를 참깨, 청태(靑太) 사이에 사이짓기하는 것은 목화에 손해를 준다 하여 전업자(專業者)는 목화를 홑짓기하는 것이라고 논하였다. 목화의 적지(適地)로는 건조한 모래토양을 권하고 있다. 이 밖에도 ‘농가집성’에 수록된 목화재배법의 내용은 상세하여 택지(擇地)·종자처리·씨뿌리기·거름주기·김매기·순치기 등 재배상의 기술이 상당히 진전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경상좌도에서는 습한 밭에도 목화경작을 하고 있다 하였으니 건조한 모래토양 원칙에서 벗어나 진일보된 기술도 있었던 것 같다.

1770년 유형원(柳馨遠) 의 ‘반계수록(磻溪隨錄)’가운데의 전제(田制)를 중심으로 하는 농론(農論)은 그 백미(白眉)에 속한다. 임진왜란 중 또는 난후의 중국·일본과의 통교(通交)에 따라 몇몇 외래작물의 재배가 시작되었다. 아메리카대륙 원산인 고추·호박·담배 등의 세 가지 작물이 선조·광해군 때에 일본 또는 중국에서 도입되어 신속하게 보급됨으로써 전국 방방곡곡에서 재배되었다. 호박은 식량에 보탬이 되는 데다 가꾸기가 쉬우며, 고추와 담배는 일반인의 기호에 맞아 그 재배 보급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의 확산을 가져왔다. 고추는 우리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담배는 전업작물(專業作物)로서 경제적인 위치도 확보하여갔다. 한편, 조선시대 초기의 농서들과 중기의 농서들을 비교해 보면, 농민들의 역생활(曆生活)이 24절기 중심으로 굳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즉, 태양의 운행을 정확히 계산하여 1년의 길이를 정하고, 그것을 24등분하여 24절기라 하고 농경에 필요한 계절변화의 지표로 삼아 농업기술 축적의 근간이 되었다.

참고자료: 사회과학출판사(2012), <조선농업사(원시∼근대편)>; 사계절(2015),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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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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