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내몰린 전동휠체어, 그리고 유니버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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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내몰린 전동휠체어, 그리고 유니버셜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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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고수희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빠앙-”

경적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꽂혔다. 쳐다본 곳엔 전동휠체어 한 대가 위태롭게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 나름 인도와 가장 가깝게 붙어서 지나가고 있었지만 인도에 걸쳐 무단으로 세워진 차량이 전동휠체어의 이동을 막고, 도로에서 인도로 이어지는 턱의 높이, 평탄하지 않은 보도블록이 전동휠체어를 도로로 밀어내고 있었다.

▲ 고수희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헤드라인제주
도로교통법상 전동휠체어는 보행자로 분류되므로 인도로 다녀야 한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당사자들도 인도로 안전하게 다니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며 도로로 갈 수 밖에 없다.

물론 교통약자들을 위해 전동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장애인콜택시가 운행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기자가 많으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데에 택시까지 불러야 하나 고민이 된다.

지난 2월 말, 전동휠체어를 탄 아들이 밤늦게 일이 끝난 어머니를 무릎위에 태우고 오르막길을 가던 중 택시와 부딪혀 어머니가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언론에서 공개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며,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택시기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동휠체어에 탄 모자가 역주행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함께 느껴졌다. 이처럼 인도를 포기하고 차도로 다닐 수밖에 없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상황은 비단 장애인당사자에게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조카가 탄 유모차를 밀며, 제멋대로 경사지고 울퉁불퉁한 인도를 걷고 있자면 짐 없이 다니는 비장애인만 인도 위를 걸으라는 걸까 의문이 생기곤 한다. 심지어 심한경사나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발목을 삐끗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러한 환경문제를 모두를 위한 환경으로 개선하기 위해 유니버설디자인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주도는 유니버설디자인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지역구 중에 하나다. 매년 유니버설디자인 확산 사업을 진행하고, 관련된 정책들의 논의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편이다. 다만 관심과 논의에 비해 도민들이 체감하는 유니버설디자인은 많이 미흡했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장애인들만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장애인에게만 필요한 디자인이 아니다. 유니버설디자인의 진정한 목적은 어린이,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 외국인, 결혼이주여성 등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나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높낮이가 다양한 버스의 손잡이, 한글을 몰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픽토그램, 턱을 없앤 출입문, 왼손 오른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가위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과 조건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근본이다.

단순히 장애물을 없애고, 평탄한 인도를 만들어 놓아도 편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해줘야 할 노력이 끝이 없다. 제주도 전체가 유니버설디자인화 되기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속화되는 고령화와 늘어나는 장애인 인구를 보며, 조금이라도 빨리 모두가 안전한 제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에 불을 지피게 된다.

그동안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던 유니버설디자인 사업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는 듯하다. 서귀포초등학교 주변의 보행환경 개선, 보건진료소의 접근성 개선, 장애물 없는 관광환경 조성 사업 추진 등 언론 홍보를 보면 그렇다고 느껴진다.

물론 접근성을 개선하고,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의 궁극적인 실현이 될 수는 없겠지만 더 넓은 개념으로 보았을 때 유니버설 디자인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체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더 많은 휠체어와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 엄마 손을 잡고 뛰어노는 아이들과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모두 편하고 안전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수희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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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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