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와 삽겹살
상태바
슬레이트와 삽겹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현인철 서귀포시 생활환경과 사업장폐기물팀장
121.jpg
▲ 현인철 서귀포시 생활환경과 사업장폐기물팀장. ⓒ헤드라인제주
슬레이트에 삼겹살을 구워먹던 시절이 있었다. 삽겹살을 몽글 몽글하게 익히면서도 자연스레 기름을 흘려보내는 멋진 굴곡으로 인하여 그 시절 슬레이트는 최고의 야외용 석쇠였다.

뿐만 아니라 단열 효과가 뛰어난 슬레이트는 1970년대에 지붕의 건축자재로서는 최고였다. 정부에서는 보조금을 지급하며 초가 지붕을 슬레이트로 개량하는 것을 적극 권장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비오는 날 슬레이트 지붕에서 줄을 맞추어 떨어지는 빗줄기의 숫자를 세어보던 기억이 있고, 한겨울 지붕에 내려오는 고드름을 꺽어 칼인양 휘두르며 놀았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슬레이트는 일상에서 흔한 친근한 것이었다.

하지만 슬레이트는 해로운 물질이 된지 오래다. 슬레이트가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슬레이트에는 석면이 함유되어, 석면은 아주 유해한 물질이다. 세월이 흐르고 슬레이트가 낡아 부서지면 함유된 석면이 먼지로 배출될 수 있다. 그래서 슬레이트는 석면과 거의 같은 의미가 되었고 지금은 건축자재에 석면의 사용은 전면 금지되었다.

인터넷으로 슬레이트를 찾아보면 바로 석면으로 연결되고, 석면은 '1급 발암물질', '죽음의 먼지', '소리없는 살인자' 등 섬뜩한 단어로 표현된다. 위험성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반론이 있지만 석면을 포함한 슬레이트 가루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것에는 다른 의견이 없다.

지금도 도심을 벗어나면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집에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건강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당장 지붕을 바꾸고 싶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철거는 전문업체만이 할 수 있어 철거비는 평방미터당 3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주택 면적이 66평방이라면 육백만원이 훌쩍 넘는다. 선뜻 나서기가 쉽지는 않은 금액이다.

철거비용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슬레이트 지붕 철거의 당위성에 대하여는 다른 의견은 없을 것이다. 이런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행정에서는 슬레이트 철거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읍면동에 신청을 받고 있으며 무허가 주택도 가능하다.

슬레이트 위에 삽겹살을 굽던 시절이 그리워도 그 고기를 어린 자식들에게 먹게 할 사람은 지금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석면 철거 비용이 많이 든다고 자식들과 이웃들에게 그 가루를 마시게 해선 안될 일이다. 아직도 슬레이트 철거를 주저하고 있다면 석면에 대한 섬뜩한 표현을 다시 읽어보길 바란다. <현인철 서귀포시 생활환경과 사업장폐기물팀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